4장. 잠을 두려워하던 시절의 기억

— 고요 속에서 비로소 만난 나의 마음 —

by 하율


"평온은 나를 고치려 할 때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순간 태어났다.

그 작은 깨달음이 삶의 방향을 다시 밝히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의 밤은

희미한 불빛보다 내 안의 무게가 더 깊게 내려앉았다.


아이를 재우고 집 안의 마지막

등을 끄면 집안은 갑자기 차분해졌지만,

그 잔잔함은 단순한 고요가 아니었다.
낮 동안 미뤄두었던 생각과 속울림이

밤그늘 속에서 다시 고개를 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잠자리에 누워도 내면은 좀처럼 자리를 찾지 못했다.
무릎을 세웠다 다시 눕고,

반복적으로 자세를 바꾸고,

이불을 펴고,

베개를 손끝으로 두드리는 작은 동작들은
불안이 몸을 빌려 은근하게 드러나는 미세한 언어 같았다.


아이가 겪는 스트레스,

학교에서 들려온 이야기,
그날 시댁에서 스친 말 한마디…
낮에는 사소해 보이던 것들이 밤이 되면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내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나를 두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 했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생각이 많음이 아니라
내 깊은 자리에서 올라오던 속결의 파동이었다.
잠을 밀어낸 건 외부가 아니라 흔들리는 내 안쪽 풍경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내 안쪽 움직임은 속도를 더했다.


평범했던 하루조차도 침대에 누우면 조각난 장면처럼 떠올랐다.


내일 아이에게 챙겨줘야 할 준비물,
시댁에서 오간 표현이 오래 남는 이유,
가계부 속 숫자가 마음 한가운데에 무겁게 내려앉던 순간들…


이 모든 것이 눈꺼풀을 다시 들어 올리며 잠을 멀어지게 했다.


야간대학에 다니던 시절엔 이러한 무게가 더 켜켜이 쌓였다.
늦은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내면은 눌러 두었던 속울림을 한꺼번에 풀어놓듯 흔들렸다.


불을 켜고,

커튼을 조금 열었다 닫고,

다시 누웠다가 또 일어나고…
이 반복은 모두


“내가 지금 어디에 머물러야 할지 모르겠어...”

라는 조용한 신호였다.



밤이 두려웠던 이유는

어둠 때문이 아니었다.


낮 동안 눌러 두었던 감정들이 고요 속에서

너무 선명해지는 그 찰나가 무서웠던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서운함,
친척의 가벼운 표현이 남긴 잔상,
우리 아이가 혹시 마음속에서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

생활의 무게가 쌓여 만들어낸 작은 떨림들…


밤이 되면 이 모든 흐름이 겹쳐져 한 장의 그림처럼 나를 찾아왔다.
그 고요함이 너무 뚜렷해 눈을 감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서 TV를 켜 작은 소리를 만들고,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다 다시 내려놓고,
물컵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흔들리는 속결을 달래 보았다.


그러나 고요는 늘 돌아왔고,

그 정적 속에서 내면의 결은 더욱 명료해졌다.
밤은 나를 겁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진실이 조용히 드러내는 배경이었다.


커피 2잔 1200.800.jpg 부드러움은 말보다 오래 남는 온도다. 사진-탁자 위 두 잔의 커피




자려고 누운 밤마다 안정이 깨지던 시기를 떠올려 보면,
그때는 내가 정서적으로 가장 예민해져 있을 때였다.


아이가 힘들어 보였던 날,
가족 사이에서 오간 표현이 마음에 오래 머물던 날,
통장의 숫자가 계속 자꾸만 신경 쓰이던 때,
야간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며 미래가 불투명하게 느껴지던 밤들.


그런 흐름은 밤이 될수록 더욱 뚜렷해졌다.
그것은 ‘생각이 많아서’가 아니라
내면 깊은 층위에서 떠오르는 정서적 파동이었다.


외면할수록 흔들림은 더 깊어졌고,
불면은 그 파동의 가장 가까운 표면에서 떠오르는 작은 신호였다.


잠들지 못하는 밤은 나에게 늘 비슷한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놓쳐버린 마음결이 아직 남아 있어.”
“이 부분을 잠깐만 바라봐 줘.”


밤의 정적은 두려움이 아니라
내 속에서 올라오는 이야기가 조용히 머무는 자리였다.



잠을 되찾는 과정은

‘숙면 기술’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내면의 움직임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는 작은 태도에서 시작되었다.


아이의 이야기,
가족들 사이의 긴장,
경제적 압박,
야간 공부로 인한 피로…


이 모든 것을 밤의 장막 속에서 잠시 제자리에 두는 연습이 필요했다.


어떤 날은 손바닥 위에 올려두듯 생각을 차분히 정리했고,
어떤 날은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의 나는 어디까지 왔을까”
나는 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 작은 정지 동작만으로도 속결의 긴장은 천천히 풀렸다.
예민함은 나를 흔들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마음결을 더 섬세하게 바라보는 힘이 생겼다.

밤은 마음이 가장 솔직해지는 시간이었다.



살다 보면

지금도 가끔 깊은 잠이 쉽게 오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흔들림이란 나를 힘들게 하려는 파도가 아니라
하루를 살아내느라 놓쳤던 마음의 자리표시라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뒤척임을
‘내가 버텨내지 못한 흔들림’으로 여겼다.


지금의 나는 그 움직임을
내면이 건네는 작은 신호로 받아들인다.


몸이 자세를 바꾸는 동안
속결은 천천히 제 자리를 찾아가고,
그 과정을 따라
수면도 다시 길을 만들어낸다.



밤은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 시간이 아니다.


하루 동안 미처 돌보지 못한 속울림이

조용히 얼굴을 비추는 찰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 정적을 건너고 나면,
다음 날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부드럽고

단단한 새로운 결을 품고 깨어난다.


밤그늘이 걷힌 자리 어딘가에서
작은 변화가 숨을 고르며 기다리고 있고,
그 변화는 조용히 새로운 하루의 모양

조용히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오늘의 명상


불면은 생각의 과부하가 아니라,

외롭다고 속삭이는 미세한 울림이다.




《감정도 잠이 필요하다》 4장. 잠을 두려워하던 시절의 기억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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