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천천히 되찾은 30일 생체 리듬

– 고요 속에서 다시 흐르기 시작한 내 안의 시계 –

by 하율


"내 감정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은
혼란을 가라앉히고 흐름을 되돌리는
한 줄기 잔잔한 회복의 빛이 되어 주었다."



그날, 갑작스러운 등뼈 골절은
내 삶 전체를 붙잡고 있던

속도를 단숨에 멈춰 세웠다.


바쁘게 움직이며 ‘조금만 더’라는 말로

스스로를 밀어붙이던 일상은 흐트러지고,
보정옷의 묵직한 압박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내 안 깊숙이 쌓여 있던 긴장과 통증을 또렷이 드러냈다.


입원 초기 며칠 동안
나는 눕지도, 앉지도 못한 채

쉴 틈 없이 뒤척이며 밤을 보냈다.
벽을 따라 길게 늘어지던 그림자는
마음의 경직된 상태까지 비추며
나를 끝없이 잠들지 못하는 밤 속으로 밀어 넣었다.


잠은 손에 닿을 수도 없는 먼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얇은 층처럼 쌓이기 시작하자
뜻밖의 변화가 서서히 스며들었다.
냉랭하던 병원의 공기가
내 몸에 새로운 미세한 반응과 잔잔한 온기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몸은 멈춰야

비로소 자신의 언어로 말한다.


느리게 흐르던 병원의 하루 속에서
나는 그 느림이 곧 치유가 작동하는 속도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 몸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자연스러운 리듬을
다시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되었다.
잠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기적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제 속도로 돌아왔다는 섬세한 신호라는 것을.
내 안의 균형이 조금씩 다시 정돈될 때,
수면은 마침내 나에게 닿을 수 있었다.



새벽 무렵 들리던 간호사의 발걸음은
처음에는 신경을 거슬리는 자극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지 그 발걸음은

병실의 깨우는 작은 박동처럼 느껴졌다.


식판이 부딪히는 금속성의 일정한 소리,
복도 끝으로 멀어졌다 가까워지던 카트의 진동,
그리고 하루를 구성하는 동일한 시간의 생활음들.


이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반복은
흩어져 있던 내 몸의 신호들을
조금씩 정돈해 주는 규칙의 손길이 되었다.


병원의 하루는 단조롭지만,
그 반복되는 구조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느슨하게 해주는
안정의 틀이 되어주었다.


아들러는 말했다.

“인간의 안정은 예측 가능한 관계 속에서 회복된다.”


낯선 병실은 오히려
내 마음이 기대어 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었고,
깊은 밤이면 차갑던 발을 포개고
손바닥의 온기를 모아 천천히 호흡을 고르곤 하였다.


그 순간, 내 안의 엉켜있던 시간들이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한 감각이 스쳤다.

잠은 어느 날 문득 깨달음처럼 다가왔다.


지식이 아니라
몸이 기억해 내는 회복의 조율이었다.


그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가 잠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내 몸이 흐름을 잃고 헤매고 있었음을.



입원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방 앞 작은 휴게 공간에서는 매일 오전이면
어김없이 ‘아줌마들의 수다판’이 열렸다.



“오늘 반찬이 어제보다 싱겁더라.”
“간호사님 손이 얼마나 따뜻한지 몰라.”
“나이 들면 온몸이 그냥 종합병원이여, 종합병원.”


소박하고 직설적인 말들 사이로
각자의 삶이 견뎌낸 세월의 결이 묵묵히 흘러가고 있었다.
누구는 남편 흉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자식 자랑으로 이어지고,
누구는 통증을 탓하며 한숨짓다가도
금세 소소한 농담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통증 때문에 대화에 끼지 못하고
누워서 가만히 듣기만 하던 날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그들의 수다가 나를 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소리들은
고통을 버티게 해주는 작은 웃음의 불씨였고,
내 마음 한쪽에 웅크리고 있던 외로움을 서서히 녹여내는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였다.


말없이 듣고만 있어도

마음의 긴장은 어느새 풀어졌고
나는 아주 느린 속도로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3장 병원 1200.800.png 멈춰야 들리는 마음의 숨결이 있다. 사진-병실 침실




“돌봄은 거대한 손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가까이 머무는 작은 온기가 가장 먼저 심장을 데운다.”


입원 30일은 내게 작은 ‘수면 학교’였다.

잠은 단순히 몸이 쉬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웠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병동의 하루는
마음이 머물 수 있는 안정의 구조가 되어 주었고,
나는 오랫동안 ‘하루를 끌고 가는 사람’으로 살아왔음을
늦게나마 인정하게 되었다.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어졌다.
하루를 차분하게 마무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잠은 외부의 온기가 아니라,
내면의 질서가 만들어주는 가장 따뜻한 쉼이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 30일 동안 다져진 수면 흐름은

오래도록 나를 지탱해 주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더 깨어 있던 예전의 나는
이제 하루의 끝을 가만히 놓아주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 안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듯,
삶의 결도 한층 더 온화하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잊었던 내면의 조율이
다시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내 안에 쉼을 허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날의 병실모습,

그 밤의 소리들,
그리고 그 속에서 서서히 회복되어 가던 나는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마다
잔잔한 온기로 되살아난다.


회복은 거대한 변화가 아니라,
아무 말 없이 스며드는 고요한 평온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잠은 몸을 쉬게 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루 동안 흩어진 마음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가장 깊은 순간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뒤로, 나는 어둠 속에서도 더 이상 길을 잃지 않는다.




오늘의 명상


잠은, 우리가 다시 살아갈 힘을 되돌려주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회복이다.




《감정도 잠이 필요하다》3장. 천천히 되찾은 30일 생체 리듬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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