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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Direct 주연 Jan 11. 2024

또 하나의 출발선 상에서
한라산_무상(無常)

< 또 하나의 출발선 위에 서다 >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통과의례처럼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한라산 등반이다. 

공항에서의 북적임, 전등 빛으로 밝혀진 활주로, 비행기 타는 즐거움에 더하여 겨울 한라산에 오르는 것으로 새해가 밝았다는 것을 내 온몸과 마음에 각인시키고 싶은 일종의 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새벽 6시 첫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제주 공항에는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산이 가까워질수록 눈이 펑펑 내린다. 이윽고 도착한 관음사 탐방로는 통제!!     


“아니 이럴 수가^^;;”     

곧바로 영실 탐방로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래도 영실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서이다. 

관음사로 가는 백록담 등산로 거리보다 60% 정도 되는 길이고 지금 눈이 오는 관음사 등산로 입구보다 남쪽에 있어서 통제하지 않을 듯한 희망을 품고 간 영실 탐방로 산길에 올라가기도 전에 탐방로를 통제하는 경찰차가 서 있다. 그 순간은 한라산을 오를 방법이 제로가 되었다. 

오로지 한라산을 오를 목적으로만 온 당일치기 여행이건만......      

그래도 어쩌랴. 제주도는 소중한 자연 유산이 많으니 그를 위안 삼을 밖에...... 


발길을 돌려 닿은 가까운 휴양림은

 "치유의 숲". 


치유의 숲에서 산책하며 

새벽부터 비행기로 날아온 피로와 함께 

한라산을 못 간다는 사실을 애써 받아들인다.

 하하 호호 산책하고 나오며 바라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혹시나하고 시계를 10시 정도이다. 

백록담으로 가는 관음사 코스는 이미 늦었지만 

영실 탐방로 쪽은 기웃겨려볼 만하다. 즉시 영실 주차장으로 출발했다. 장담할 수 없는 미션이 있긴 하지만!      

11시에 영실 주차장에서 출입 통제를 하니까 11시 전에 주차장을 통과해야 한다. 

또 하나의 미션은 그곳에서 임도 길을 따라 걸어서 영실 탐방로 게이트를 

통과해야 하는 시간은 또 12시이다!! 


일단 가 보자는 마음으로 냅다 달렸다. 

일단 우리 차는 영실 주차장을 10시 55분에 아슬아슬하게 통과해서 첫 번째 미션을 달성했다. 


눈 쌓인 임도길을 낑낑거리고 올라가니 ‘

12시부터 통제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황급히 시계를 보니 11시 55분. 




그렇게 해서 또 아슬아슬하게 두 번째 미션, 영실 탐방로 입구 통과^^


스릴감 넘치게 들어선 영실 탐방로에 눈 쌓인 천국이 펼쳐진다. 

눈보라 치는 설국을 두 시간 남짓 올라가서 정상인 윗새오름에 도착했다. 

한라산의 설경을 이렇게 온몸과 마음으로 느꼈다. 


긴 호흡으로 한라산의 정기를 마시며 내 신년 의식을 축하하며 숨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2024년을 맞는 나에게 한라산이 가만히 들려주는 말이 있었다.      



“무상(無常)”     


무상이란 단어를 '허무하다 덧없다'라는 의미로 더 크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 의미가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정하지 않고 늘 변한다.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이 없다.”라는 의미에 더 집중해서 곱씹어 보면 

우리의 일상에서 무상(無常)은 다양한 의미로 나를 일깨운다. 

2024년 한라산 탐방기만으로도 그렇지 않은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 

옳다 그르다 분별할 것이 없다는 것, 

어느 것도 꼭 이래야 한다는 것은 없다는 것, 

고정된 신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하지만 섣부른 포기를 하는 것도 

또 포기라는 고정된 무엇인가를 맹목적으로 정하려고 할 것도 없다는 것 


그리고 끝까지 순리에 맞게 마음 비우고 관찰하고 

최선을 다하면 의도했던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눈은 쌓이지 않은 관음사 탐방로로 백록담을 향해 올랐을 것이다. 

백록담은 그 순간 구름이 허락해야 볼 수 있으니 그 또한 장담을 못 하겠다. 


한편 이번에는 우여곡절 끝에 설국 한라산과 눈보라 냉탕 샤워를 했고, 

치유의 숲에서 나무의 생명력을 느꼈다. 


어떤 쪽이 좋다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세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그 안에 살아가는 우리 각자 그런 세상과 호흡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은 되었네! 다행이야!’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다른 의견이다. 

최선과 차선을 구별할 이유는 또 뭘까? 최선과 차선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 


내가 계획하지 않았을 뿐이지 

다른 형태로 가져다주는 선물 같은 풍성함이 또 기다리고 있다. 


설사 풍성함으로 다가오지 않고 고난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그 이유가 있으며 

그를 통한 배움이 있으리라.



2024년 새해 시작

나는 또 하나의 출발을 하고자 한다.


브런치 작가 플랫폼을 통해

여러분들과의 아름다운 소통을 꿈꾼다.


한라산을 오르는 다양한 길을

받아들이는,


백록담을 향해 가지만

꼭 백록담이 아니어도

또 다른 선물을 즐기는


“무상(無常)”     의 마음으로^^


< 2024년 1월 3일 논 오는 한라산, 윗새오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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