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까지 받아쓰기 점수는 빵점이었다. 유치원에선 맞춤법을 틀리고, 초등학교에 들어와선 띄어쓰기를 틀려서 빵점이 고정 점수였다. 그 시절 철이 없던 나는 한국인이 글을 잘 읽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받아쓰기를 잘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며 빵점의 현실을 부정했다.
때는 바야흐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시절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받아쓰기 시험을 봤다.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1번부터 10번까지의 문장을 받아 적은 뒤 짝꿍과 노트를 바꿔 채점했다. 입 주변에 점이 있고, 운동을 좋아하는 승엽이란 이름을 가진 친구였다. 빵점인 걸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기에 채점이 끝난 뒤 짝꿍이 나를 놀리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짝꿍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틀린 문장 두 개에 동그라미를 쳐주었다. 고작 10살인 아이가 학연과 지연을 알다니 놀라웠다. 이 친구와 함께하는 3학년 동안, 혹은 다음 해에도 같은 반이 된다면, 짝꿍이 되어 빵점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어느 날, 한 학기가 지나기 전에 짝꿍이 전학을 간다고 말했다. 내가 20점으로 위장하고 있었기에 짝꿍의 전학은 정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당시 나는 어리석게도 친구를 잃는 상실감보다 빵점으로 돌아간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승엽이가 전학 간 후 새롭게 만난 짝꿍은 채점을 매우 정확하게 했다. 결국 점수는 다시 빵점으로 돌아갔다. 어린 마음에 새로운 짝꿍이 미웠다. 한편으로, 이 사기극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는데 잡혀버렸다. 결국 3학년 때는 늘 빵점을 받으며 마무리하게 됐다. 4학년이 되고, 고학년이 되니 그런 것일까.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받아쓰기를 주기적으로 하지 않아서 후에 받아쓰기했다는 것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좋지 않은 기억이라서 머릿속에 완전히 지워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성인이 되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일기를 쓰다 보니, 어느새 책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소설, 에세이, 시집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익혔다. 의도치 않게 작은 실천들이 모여 큰 변화를 끌어냈다. 최근에 글을 쓰고 맞춤법 검사기를 사용하면 용케도 이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받아쓰기에서 빵점을 받아서일까. 맞춤법 검사기가 '수정할 부분이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화면에 띄워주면 괜스레 기분이 좋다. 만약 내가 백 점을 받던 아이였다면, 성인이 된 이후 맞춤법 검사기를 사용하면서 수정할 부분이 생겼다면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 나이가 들어 사회에 일원이 되어 일하다 보니 인생에서 받아쓰기 빵점은 작고 소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시간은 흐르고, 나 또한 그 흐름에 발맞춰 성장해 왔다. 받아쓰기 빵점을 받던 내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취미로 글을 쓰다니. 세상일은 정말 알 수 없는 법이라는 걸 깨닫는다.
승엽아, 이 글이 너에게 닿기를 바라며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고맙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