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재 스무 번째 이야기

넌 은빛여우란다~

by 진솔

산속세계

발 달린 짐승의 세계는 서열이 있는 법

말 못 하는 짐승도 한눈에

누가 최고인 서열 1위를 다투고 결정하는 듯하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저마다 태생과 환경이

성향을 만들기도 성격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이곳 산속세계는 좀 험난했나 보다

서열 1위를 지키는 호위무사 진도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져 있다.

한 번도 목줄을 메어본 적 없다는 녀석은

상처가 없는 곳보다

상처투성이라고 할 정도로 멀쩡 한 곳은 별로 없다.

코는 닥치는 야생 멧돼지와 야생개들과의 결투로

짜부라져 비뚤어지고

귀는 몇 번이 뜯기었는지 군데군데 붙지

않은 살이 녀석을 더 험악한 몰골로 만들어

놓았다.

눈만 보면 천사가 따로 없다.

저리 눈이 예쁜녀석이 이리 험한 꼴로

지켜낸 것은 무엇이고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집에 오는 객인지 지나치는 이인지를

분명 가려 안내하고 호위한다.

녀석을 주인장이 쇠로 된 목줄을 걸어봐야

소용없을 정도로

녀석은 자신이 묶이지 않아도 지켜내야 할 것들을

너무도 잘 아니

날 그냥 자유로이 놔두라는 듯

매번 쇠 목줄을 보란 듯 끊어내며

자리를 지켜온 세월이 10년 이라니~

그 후론 다신 주인장도 진도의 목에

목줄을 멜 수가 없었다 한다.

밤새 우리 숙소 아궁이 옆을 호위한다.

우리가 식사 때 먹고 나누어주는

고기 몇 점이면 더 이상 남의 것을 넘보지도

않는 정도를 지킬 줄 아는 무사다.

두 번째 서열 2위는 이 집에 온 지 열흘도

안 되는 발바리과 믹스견인데

요놈은 문제다.

누가 힘이 센지 약한 놈인지 구분하여

여자인 나와 콩이를 무차별 공격하다

묶인 신세가 되었다.

경계를 무너뜨려 매번 서열 1위인

진도에게 호되게 깨지곤 한다.

유치원에서도 이곳 산속에서도

제일 작고 방안퉁수 콩이는 만년 서열 꼴찌를

달고 산다.

그래도 내 앞에서 만은

저를 믿어주는 줄 아는 듯

의기양양 제법 힘자랑을 하지만

서열 2위에게 혹독히 당하고 나서는

바로 꼬리를 내리는 겁보가 됐다.

어제 서열 2위가 남편이 없는 틈을 타

우리에게 서서히 접근했다.

콩아 이번엔 뭔가 보여주자

나는 콩이에게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콩이와 내가 합체해서 큰소리를 내며

녀석에게 마구 달려갔다.

당황한 듯 도망치는 녀석이 콩이도

신이 난 듯해 보였다.

몇 차례 녀석을 향해 돌진 돌진

속이 후련했는지

콩이도 그 자릴 쉽게 떠나지 못하고

녀석을 향해 씩씩대고 있었다.

내 편 내 것이 온전히 하나만 있어도

힘이 되고 일어설 수 있다.

약한 우리가 힘을 합하니

콩이의 은빛털이 빛나며 개가 아닌 아름다운

은빛여우처럼 보였다.

보이는 듯 안 보이는 은빛날개를 단 콩이는

오늘 녀석을 노려 보는 용기를 가졌다.

다음엔 날렵한 짧은 다리로 녀석을

치고 젭 싸게 도망치며 약을 올릴 것이다.

은빛여우처럼 말이다.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하며

자다 발길질을 하는 걸 보니

복수혈전 중인가 보다.

콩아 용기를 내 덤벼봐

넌 은빛여우로 변신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