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와 남자친구 동생을 보러 갔다.
시드니에 오고 몇 달 후, 데이팅 앱에서 매치가 된 남자가 있었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 그와 약속을 잡았다. 시내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평일에 퇴근하고 하는 외출은 내게 드문 일이었다. 집에 가서 컴퓨터로 웹 서핑이나 하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자는 저녁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시드니 시내로 나가려면 하버 브리지를 건너야 했다. 메트로나 버스를 타고 다리를 지나가는 건 꽤 운치가 있었다. 창 밖에 펼쳐지는 오페라 하우스와 바다의 경치가 일상의 된 것은 무슨 복일까 싶기도 했다.
카페에서의 만남은 짧았다. 헤어지고 나니 그가 메시지를 보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있냐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말도 별로 없고 표정도 시무룩해 보여서 자기가 마음에 안 든 줄 알았다고 했다. 프레이저는 퀸즐랜드 시골에서 온 남자였다. 부모님은 고향에서 작은 신문사를 운영했는데 아들만 줄줄이 여섯을 낳았다. 프레이저는 그중 다섯째였고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그와는 겉만 비슷하지 자기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쌍둥이 형제는 이성애자였다. 형이 있는 남자들이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형이 많을수록 그 확률은 높아진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형이 있었고 주변 사람들을 봐도 형이 있는 게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프레이저의 동생인 막내 가이는 이성애자였다. 프레이저는 형제들 중 가이와 가장 친하다고 했다.
프레이저는 퀸즐랜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시드니에 내려와 커리어를 시작했다. 마케팅 회사의 프로젝트 매니저였다. 마케팅은 곧 소셜 미디어였기 때문에 나와 통하는 게 있었다. 하루 종일 페이스북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데 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래서 일 안 하고 딴짓한다고 오해를 받기도 했다.
두 번째 데이트 때는 그의 집을 놀러 갔다. 킹스크로스 역 근처에 있는 고층 건물이었다. 좁고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내부는 아트 데코의 독특한 분위기였다. 프레이저는 다른 두 명의 게이 룸메이트들과 살고 있었다. 한 명은 남 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친구였는데 버진 항공사를 다니고 있었다. 항공권 가격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는지 이 친구의 힘으로 항공권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룸메이트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프레이저는 내가 그의 실물을 보고 실망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진이 훨씬 잘생겨 보이긴 했지만 안 그런 사람이 어딨으랴? 실제로는 좀 뚱뚱했다. 그것도 지금은 살을 훨씬 많이 뺀 거고 전에는 더 뚱뚱했다고 했다. 그의 방 거울에 한가득 붙어있는 사진들을 보면 턱 주변으로 살집이 후덕한 그의 예전 모습이 보였다. 사진 속 그는 라이플을 들고 있었다. 퀸즐랜드에 살 땐 사냥을 즐겼다고 했다.
살을 가장 많이 뺐을 때 사진을 보면 프레이저는 마냥 잘생긴 백인 남자였다. 머리는 밝은 금발이었고 눈은 파랬다. 그의 형제들이 다 그렇게 생겼다. 항상 뚱뚱하기만 하다 살을 빼고 나니 프레이저는 인생에서 새로운 자신감을 찾은 것 같았다. 새 얼굴과 몸매를 갖게 된 사람들이 그렇듯 프레이저는 옷차림과 머리 꾸미기에 대단한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머리는 원래 그렇게 선명한 금발이 아니었는데 탈색을 조금 한다고 했다. 눈썹을 다듬으러 정기적으로 다니는 미용실도 있었다. 매일 아침 프레이저는 한 손엔 드라이어, 한 손엔 빗을 들고 오랫동안 머리를 만졌다. 그리고 왁스와 스프레이로 머리 한 올 흐트러짐 없이 고정을 했다. 그렇게 완성된 머리는 긴 앞머리를 봉긋하게 뒤로 넘기는 퐁파두르였는데 나는 그 스타일이 좋았다. 손이 많이 갔지만 그런 머릿결을 가졌다면 나도 하루에 얼마고 거울 앞에 서서 퐁파두르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내 빳빳한 머리를 어떻게 해 보기를 한참 전에 포기했다.
프레이저가 캔버라에 동생 가이를 보러 가자고 했다. 가이는 국회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의 룸메이트 중 한 명이 집을 비운다며 그의 방에서 묵을 수 있다고 했다. 프레이저는 가이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것 같았다. 위 형들은 나이차도 많이 나고 다 보간들인 데 비해 각각 시드니와 캔버라라는 대도시에 살며 프로젝트 매니저니 장관실 비서니 잘 나가는 인생을 사는 건 그 둘 뿐이었다. 주말에 차를 렌털해 캔버라에 갔다. 나는 면허가 없어 프레이저가 세 시간을 운전해야 했다.
캔버라는 오는 건 두 번째였다. 학교 다닐 때 전국 외국인 학생회 콘퍼런스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외국인 학생회 임원이라 좋았던 점은 1년에 한 번씩 콘퍼런스를 학교 부담으로 갈 수 있단 것이었다. 그러나 한겨울의 캔버라는 무척 춥고 황량했다. 캔버라는 계획도시였다. 시드니와 멜버른이 호주의 수도가 되기 위해 출혈적 경쟁을 벌이자 절충안으로 두 도시 사이 중간 지점에 만들어진 게 캔버라였다. 그래서 캔버라의 풍경은 신도시의 인공적 분위기와 딱딱함이 물씬 풍겼다. 멜버른에는 커피가 있고 시드니에는 바다가 있다면 캔버라에는 회전 교차로가 있다는 농담도 있었다.
다시 찾은 캔버라 역시 겨울이었다. 국회 건물에 도착했을 땐 이미 관광 시간은 끝난 것 같았다. 못 들어간다고 막는 경비원 앞에서 프레이저는 보란 듯이 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가이가 나와 우리를 안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방문자 목걸이를 메고 돌아다녔는데 내 목걸이가 겉옷에 가려지자 경비가 보이게 메라고 경고를 했다. 프레이저는 내가 창피한 기색을 보였다.
가이가 일하는 곳은 통신부 장관 사무실이었다. 통신부라면 호주의 두 공영방송국인 SBS와 ABC가 직접적으로 관련된 곳이기도 했다. 공영방송국들은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는 통신부 장관이 결정하는 것이었다. 가이는 ABC가 하는 일이라곤 정부 비판뿐이라며 국민의 공익을 위해 공정한 보도를 해야 할 곳이 좌익이 되고 있다고 했다. 현 정부는 중도보수인 자유당이 집권하고 있었다. 참 알쏭달쏭했다. 정부의 돈으로 돌아가는 방송국인데 정부를 매일같이 들볶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언론이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해서 호주의 언론의 자유를 잘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날 가이의 친구들과 저녁을 같이 했다. 한 명은 가이의 여자 룸메이튼데 이번에 유명 신문사 기자로 들어갔다고 했다. 다른 한 명은 가이처럼 국회에서 일하는 남자였다. 캔버라에 사는 사람들은 죄다 국회나 언론사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사명감이 대단해 보였다. 그들 셋이 호주의 정치와 사회를 두고 벌이는 토론에서 나나 프레이저가 낄 틈이 없었다. 프레이저는 에스프레소 마티니 맛을 불평할 뿐이었다. 시드니에서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이렇게 만들었다가는 장사 말아먹게 될 거라는 허세를 부렸다.
식사 후엔 무슨 나이트 브리지에 가자고 계획이 잡혔다. 그래서 나는 다리에 야경 보러 가나 했는데 ‘Knightsbridge’라는 이름의 클럽이었다. 워낙 조용하고 작은 도시라 해지면 다들 집에 가서 다음 날 해 뜰 때까지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나름 밤문화가 있었나 보다. 클럽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춤을 추는데 프레이저는 어떤 남자 하나를 자꾸 힐끗거렸다. 그러다 가이와 귓속말을 하는 걸 보니 가이도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클럽에서 나와서도 둘은 계속 그의 이야기를 했다. 저들만 아는 무슨 드라마가 있었던 게 분명했다.
다음 날 우리 셋은 브런치를 먹었다. 가이는 신문사에 들어갔다는 룸메이트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데이팅 앱에서 그의 프로필을 오른쪽으로 밀었다는, 즉 관심 있다는 표시를 했다는 것이다. 매치가 되지 않고서는 누가 자기에게 관심을 표했는지 알 수 없지 않으냐 물었더니 가이는 유료 이용자라 볼 수 있다고 했다. 가이는 룸메이트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걸 모른 척할 것인가? 여자는 가이가 안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렇게 한 집에 산다는 게 아찔했다.
오후엔 가이가 막 만나기 시작했다는 여자가 합세해 넷이서 등산을 했다. 여자는 가이의 방에서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