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가장 많이 보는 숏폼 영상들은 이렇다.
영상은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얼음컵과 팩에 든 커피를 사서 아이스커피를 만드는가 싶더니 거기에 바나나 우유를 섞는다. 영상의 주인공은 바나나 커피와 김밥을 먹으며 한국 편의점에서 먹는 음식이 얼마나 재밌고 맛있는지 먹방을 찍는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가운데에 큰 공간을 남겨두고 서있다. 스피커에서 “쓰리, 투, 원”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노래가 나오면 우르르 뛰어나와 춤을 춘다. 바로 “케이팝 랜덤 플레이 댄스” 영상이다. 자기가 아는 안무의 노래가 나올 때마다 무대에 나와 춤을 추는 것이다.
나는 이런 영상들을 보고 또 본다. 모두 외국인들이 만든 콘텐츠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편의점에서 아이스커피와 김밥을 먹는 사람들. 유명 관광명소를 배경으로 케이팝 댄스를 추는 사람들. 그들의 배경으로는 에펠탑이 보이기도 하고, 도쿄돔이 보이기도 한다. 나도 이들을 따라 바나나 커피를 만들어 먹어 보고, 르세라핌의 안무를 배우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shorts/Amb2P_86A1s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은 역설적인 일이다. 나는 한동안 우리나라 가요를 듣지 않았다. 가요가 케이팝으로 불리며 세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던 2010년대, 나는 오히려 케이팝에서 멀어지고 미국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미국의 팝과 드라마가 최고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호주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그 문화사대주의의 더 심해졌다. BTS와 블랙핑크가 외신에서도 드물지 않게 언급되기 시작하던 때였는데도 나는 여전히 이들의 노래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케이팝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주위에 많았다. 시내 광장에서 케이팝 댄스를 연습하는 사람들은 자주 보였다. 시드니 컨벤션 센터 옆에는 스테인리스로 된 건물 벽을 거울처럼 사용하며 춤을 추는 무리들이 늘 있었다. 호주 방송국에서 일하던 시절, 한 동료가 스트레이 키즈가 방송국에 왔다며 흥분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방송국엔 “팝아시아”라는 라디오 채널이 있었고, 스트레이 키즈는 거기에 인터뷰를 하러 왔다. 그때 스트레이 키즈는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안 알려졌을 텐데도 그 동료는 그렇게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그때 나는 케이팝을 잘 모른다고 당당히 말하며 은근한 자부심을 느꼈다. 외국인들이 우리의 문화를 좋아할 때, 나는 오히려 무지한 척하는 것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무지를 일관하던 내가 호주에서 친구를 따라 케이팝 축제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본 댄스 팀들의 공연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나는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생전 처음으로 트와이스의 “FANCY”, 청하의 “벌써 12시”, 에버글로우의 “봉봉쇼콜라” 안무를 봤다. 이 안무들에는 각각 포인트라고 하는 부분이 있었다. 트와이스는 “Fancy”라고 외치는 부분에서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었고, 청하는 “어떡해 벌써 12시”라고 하는 부분에서 검지와 중지를 하나씩 펼쳤다가 아래로 떨어뜨리며 총을 든 것처럼 오묘한 걸음을 걸었다. 에버글로우의 “봉봉쇼콜라”에는 후렴 가사가 없었는데 대신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서 입에 댔다 뗐다 하는 부분이 초콜릿을 먹는 흉내를 내는 것 같았다.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내용 일색인 가요 속에서 봉봉쇼콜라를 먹고 큰 꿈을 꾸라는 가사가 기가 막히게 새로웠다. “Bon bon chocolat, go up to the sky”가 대체 말이나 되는 말인가? 나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후 케이팝을 다시 듣기 시작한 것은 물론, 팬들과의 대화가 즐거워졌다. 외국 팬들의 시선으로 보는 케이팝에서 나는 새로움을 느꼈다. 그들은 케이팝을 1세대에서 5세대로 구분하며, 입문 계기로 2세대의 소녀시대와 3세대의 BTS, 블랙핑크를 꼽았다. 우리에겐 하나의 흐름인 가요를 이렇게 구분 짓는 일은 꽤 학문적인 접근이었다. 해외 팬은 티아라를 유난히 높이 평가했는데, 섹시함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도발적인 걸그룹이었다고 지금 세대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역사처럼 말했다. 티아라가 속했던 2세대 케이팝이 가장 케이팝스러웠던 때라 과언하는 이들도 있었다. 애프터스쿨의 서브그룹이었던 오렌지 캬라멜은 “까탈레나” 하나로 두고두고 화자가 됐다. 심지어 엄정화의 “몰라”를 노래방에서 부르던 나보다 열 살은 어린 이탈리안 친구도 있었다. 명곡은 시대를 초월해 재해석이 되는 법이었다.
하지만 초기의 케이팝을 지금 찾아 듣는 것과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한 것은 다르다. 아무리 골수팬이라 해도 김현정, 이정현, 샵, 샤크라와 같은 가수를 아는 해외 팬은 드물다. 그러다 보니 나는 ‘외부인들은 모르는 한국 가요의 진정한 선두주자들이 있다’는 우쭐함을 느끼기도 한다. 케이팝이 탄생하던 90년대와 2000년대에 10대를 보냈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깊었다. 티브이를 틀었다 하면 나왔던 아이돌 그룹의 무대들. 버스에서 듣던 카세트 테이프. 수학여행의 대미였던 장기자랑. 밀레니얼은 보통 인터넷의 시초를 함께한 세대로 묘사가 되곤 하는데 나는 케이팝이 케이팝이라고 알려지기 전의 가요 속에서 살았다는 게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케이팝을 듣지 않았던 건 이를 바라보는 서양의 시선 때문이었다. 서양 세계에서 케이팝은 여전히 비주류의 문화였다. BTS와 블랙핑크가 각종 차트에서 역사를 새로 쓰고 있어도 서구의 사람들에게 팝이란 아직도 테일러 스위프트와 비욘세의 세계였고, 케이팝은 괴상한 옷차림과 머리의 춤꾼들이 기계음 가득한 노래를 립싱크하며 10대 여자아이들을 홀리는 장사술에 지나지 않았다. 케이팝을 바라보는 서구의 언론은 연습생 시스템을 꼭 언급하는데 이는 완벽하게 가꾸어진 아이돌 이면의 혹독한 기획사의 현실을 조명하며 케이팝을 다각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양의 팝 시장 역시 연습생 시스템만큼이나, 혹은 더 비뚤어진 관습들이 있다. 성추행이나 폭행을 당한 여자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는 흔했고, 최근에 폭로된 유명 프로듀서 퍼프 대디의 충격적인 악행은 훨씬 오래 지속되어 왔다. 그럼에도 서구 언론이 케이팝 아이돌들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연습생 시스템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모습에서 나는 이중잣대를 본다. 얼마 전 로제가 한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들으며 나는 스타의 그늘을 탐색하려는 기자의 질문과 고난을 앨범이라는 결과물로 승화했다는 로제의 절제된 대답 사이에서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기자가 만약 미국의 아티스트와 인터뷰를 했다면 미국의 음악 산업 전체의 폐해를 뭉뚱그려 묻는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한 호주 친구가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 속 한국어 캡션을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케이팝 덕분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친구. 나는 케이팝을 듣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사회 이슈, 특히 여성과 성소수자 권리에 적극적인 그는 진보 정신이 투철한 서양 사람이라 케이팝과는 정반대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전 딸을 출산할 때 케이팝 플레이리스트까지 만들었다는 그의 말을 들으니 케이팝의 매력은 개인의 가치관을 초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신념과 자신이 소비하는 유흥이 대변하는 가치가 충돌하여 소비를 중단하거나 재고하는 일이 나에게도 많아지며 케이팝의 문제점은 무시하고 그저 즐기기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이돌들의 극단적으로 마른 몸매, 신인 걸그룹이 아저씨 가득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서 귀여움을 떨어야만 하는 현실은 보아 넘기기가 힘들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콘텐츠든 문제없는 것은 없다. 내가 소비하는 모든 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환경에 영향을 주고, 인권을 해치고 있을 것이다. 부정적 면에만 집중하여 아예 쓰지 말자고 할 순 없는 일이다. 무언가를 소비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국 어떤 논리로도 거스를 수 없는 내 마음의 소리다. 내 마음의 소리는 케이팝을 즐기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