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왜 지금, 나를 쓰기 시작했는가

by 눈누난나 리

왜 지금, 나를 쓰기 시작했는가

“우리의 유일한 한계는
마음속에 스스로 정해놓은 것뿐이다.”
– 나폴레온 힐, <<생각하라 그리고 부자가 되어라>>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꽤 오래전이다.
책장 한구석에 꽂힌 오래된 자기 계발서를 펼쳤을 때였다.
‘돈’에 관한 책이라 처음엔 흘려 넘겼지만,
그 한 문장은 왠지 마음에 남았다.

“Why not me?”
왜 나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왜 나만 뒤처졌다고 느꼈을까?
도전은 나와 상관없는 단어라고 여겼을까?

나는 스물여섯에 결혼해,
엄마로, 아내로, 선생으로 살아왔다.
아이들은 장성해 각자의 삶을 향해 잘 자라고 있고,
하나는 제 몫을 몇 배로 해내며 자리를 잡았고,
하나는 군대 안에서도 인생을 설계하며 자기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모두가 말한다.
“이제 좀 쉬면서 살아야죠.”
“그만해도 될 나이예요? 애들도 다 컸는데....”
“더 뭘 바라세요? 다 이룬 거 같구먼.”

이제 쉰.
세상의 기준으로 보자면 본문의 후반기 끝맺음을 준비할 때쯤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프롤로그를 쓰기로 했다.


나는 X세대다.
부모세대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부양받지 못할 첫 번째 세대가 될 거라고 한다.

이 말이 처음엔 씁쓸했지만
나는 그 현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묻는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누구도 50 이후의 삶을 알려주지 않았다.
학교도, 부모도, 사회도
‘중년의 후반전’을 어떻게 설계할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인생은 길어졌다.
100세 시대.
현실적으로 80세까지는

몸을 움직여 일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심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나는 겁이 났다.
그리고 동시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결심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다시 쓰기로 했다.
건강하고, 재미있고, 든든한 할머니가 되기 위해.
삶의 버팀목이 아니라
기운을 나누는 ‘기버’로 살기 위해.

아이들 덕에 사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능력 있는 엄마로 존재하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태어날 손주들에게
멋지고 든든한 할머니로 기억되기 위해.

누군가를 부양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나를 온전히 살아내기 위한 존재로.


나는 지금,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잡고 있다.


글은
그 새로운 시작을 기록한 프롤로그다.

기적을 바라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나는 기적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하루하루 내가 쌓은 선택과 실행으로
기적 아닌 현실을 만들기로 했다.

이제는
내가 나에게 해줄 차례다.

"그래, 너 해봐도 돼."
"지금부터가 진짜야."
"왜 너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


이제 내 삶의 프롤로그를,
진짜로 쓰기 시작한다.

읽고, 쓰고, 달리고,
그렇게 나는
나를 다시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