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삶의 간극일까
나의 부모님은 시골 사람이다. 평생 자기 자신을 돌보거나 가꾸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오직 가족을 위해 절약하며 살아왔다.
나와 언니는 나름 대기업에 다니며 평균 어쩌면 그 이상의 연봉을 받는다.
그러나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 아무도 자식이 이렇게 잘 자라 있을 거라 상상하지 못한다.
아직도 그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한채 나이가 들었고, 그 모습에 어디서든 동정을 받는다.
그 모습은 늘 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 아니 안쓰럽다.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세대
엄마아빠가 평생을 자기 가꾸기보다 가족을 위해 살고, 절약하는 습관 속에서 살아오셨으니 지금도 그 틀에서 벗어나기 힘드실거란건 잘 알고있다.
하지만 부모님이 자기 자신을 돌보며 조금 더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현실은 늘 예전 모습 그대로니 답답하다.
아빠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일자리를 잃었고 사회에서 단절된 채 우울감 속에 지내고 있다. 한평생 일해왔던 엄마는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간호조무사로 교대 근무를 하며 체력적으로 지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돌보라”는 말은 사치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두 분은 여전히 본인들의 불안한 미래와 자식들의 미래를 동시에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우리 가족은 늘 경제적으로 불안정했다. 나는 부모님께 경제적 도움을 받기보다 오히려 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내 삶을 챙기는 것조차 버거웠다. 결혼이나 내 가정을 꾸리는 미래는 사치처럼 여겨진다. 부모님의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는 당연히 내 몫이 되어왔다.
하지만 요즘 들어 마음이 달라졌다. 부모님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나 또한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도전을 미루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부모님의 불안 속에만 묶여버릴지도 모른다. 부모님과 나는 서로의 삶을 지켜주되, 각자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것은 버림이 아니라, 독립이다. 희생이 아니라, 균형이다.
나는 부모님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안정감을 드리고, 나머지 삶은 나를 위해 쓰겠다. 부모님이 살아온 방식에 그대로 묶여 있지 않고, 나만의 길을 살아내는 것이 지금 내게 필요한 용기다. 부모님을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부모님은 평생 나와 언니를 지탱하기 위해 희생했다. 이제는 내가 그 희생의 무게를 전부 짊어지는 대신, 새로운 방식으로 답하려 한다. 부모님께는 최소한의 안정과 안심을, 내게는 주체적 삶의 가능성을. 그렇게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소모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