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elvet Palette | 서론

색을 통해 세계를 다시 읽는 일

by The Velvet Alcove


지난 몇 달간, 저는 저만의 그랜드 투어를 다녀왔습니다. 18~19세기 유럽의 상류 청년들이 교양을 완성하기 위해 떠났던 1~2년의 긴 여행이였지만 저는 짧게 다녀왔지요.


당시의 젊은 귀족들은 서재에서만 세계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파리에서 정치와 미술을, 런던에서 산업과 금융을, 피렌체와 로마에서 고전 예술과 건축을 직접 걸으며 ‘유럽 문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여정이었지요.

지금의 여행과 다른 점은 단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떠났지만, 그 아름다움 뒤의 구조까지 배우기 위해 다녀왔지요.


짧은 기간동안 저는

파리에서는 루브르,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런던에서는 내셔널갤러리, 테이트 모던,

마드리드에서는 프라도, 티센, 레이나 소피아를 방문하며 방대한 미술사의 역사를 온몸으로 느끼고 왔어요.


인류 역사상 가장 자본집약된 절대왕권 시기에 세계 최고의 작가의 아름다운 작품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저에게 정말 꿈과같은 시간이였어요.


지도에서 손으로 직선을 그어 이어보면 그저 여행이지만, 아름다운 샹들리에와 보는 순간 헉-하게 되는 아름다운 미술관의 천장을 음미하며 복도들을 걷고, 오래된 색들 앞에 멈춰 서서 바라보는 동안 저는 궁금해졌어요.


루브르에서 마주한 성모의 파란 망토, 내셔널 갤러리에서 본 티치아노의 붉은 벨벳, 프라도에서 빛을 빨아들이던 카라바조의 검정. 이 색들은 모두 조용하지만 강하게, “우리는 이렇게 만들어졌고, 이런 흐름들 속에서 선택되었다” 라고 말하고 있었지요. 화면 속의 색들은 단순한 미적 장식이 아니라 그 시대의 공급망, 권력, 종교, 그리고 재무제표에 가까운 구조를 품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구조를 보기 위해 저의 머리속에는 많은 질문이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직업병이 발동된거죠.


그 당시 그림은 미(美)를 향한 찬미가 아니라 왕궁의 왕들을 위한 브랜딩 목적(프라도의 부르봉 왕가의 가족사진) 혹은 교황에서 문맹률이 낮은 평민들을 위한 교육 (수태고지) 이였을텐데 그렇다면 어떤 색을 어떤 의미로 누구에게 허락을 받고 진행했을까?

그 당시에는 화방도 없었고, 하다 못해 안료 유통 채널도 없었을텐데 그럼 어떤 식으로 원료를 화가들이 구하고, 이런 계약 구조는 어떻게 진행되는걸까? 화가들이 직접 안료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알았는데, 그럼 색깔의 consistency는 어떻게 조절한걸까? 종교, 왕실, 국가에서는 색상을 어떻게 독점하여 현대의 브랜딩에 영향을 끼쳤을까? 내가 사랑하는 burgundy velvet은 어떻게 추기경님들의 모자와 망토에서 현재 오페라 가르니에 의자 색이 된걸까 색 하나가 어떻게 사회를 설계하고, 이미지를 만들고, 권력을 나눴을까?


그리고 이 질문들이 결국 하나의 프레임워크로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늘 하던 방식, 조용히 한 발 물러나 전체 구조를 먼저 바라본 다음, 그 뒤 숨은 메커니즘을 읽어내는 방식으로요.


그래서 앞으로 The Velvet Alcove에서는 “색으로 읽는 문화/권력/경제의 구조” 라는 작은 시리즈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색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각을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틀어보는 실험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어떤 색을 알아보게 될까요? 각각의 색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명사입니다.

그리고 그 색들은 모두 뚜렷한 재무적 흔적과 역사적 기억을 기고 있지요.


저는 이번 시리즈에서 이 색들을 마치 재무제표를 읽듯, 그리고 오래된 도시를 해석하듯 하나씩 깊게 들여다 보려고 합니다. 마치 오페라 박스에서 오페라 글라스로 제일 좋아하는 배우의 표정, 몸짓, 의상을 하나씩 천천히 보듯이요.


첫째로, 울트라마린은 그 출발부터 비범한 색이었습니다. 금보다 비싸던 파란 안료는 아프가니스탄 바다흐샨의 산맥에서 시작해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길드를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성모의 망토 위에 올려질 수 있었지요. 한 시대의 공급망, 가격, 종교적 상징이 모두 얽힌 색이었고 결국은 프랑스의 ‘로열 블루’를 만들어낸 국가 브랜드의 시원점이기도 했습니다.


코치닐 레드는 전혀 다른 여정을 거쳤습니다. 아즈텍 고원의 작은 곤충에서 태어난 이 붉은 염료는 스페인 제국의 독점 아래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해양 제국주의와 외교, 그리고 글로벌 무역의 심장부를 관통했지요. ‘황금 다음으로 가치 있는 붉은색’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 시장가격과 계약서에서 벌어진 이야기였습니다.


말라카이트 그린은 러시아와 동유럽의 황실 장식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났습니다. 산화와 파편화가 쉬운 까다로운 광물이었기에 초기 템페라 회화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고, 건축과 공예, 그리고 제국이 꿈꾸던 장엄한 미감이 이 초록빛 하나에 응축되어 있었습니다.


티로시안 퍼플은 색 중에서도 가장 정치적인 색이었죠. 고둥 12,000개를 갈아야 겨우 몇 그램이 나오는 이 자주색은 동로마와 로마 제국이 철저히 독점한 황제의 색이었습니다. 색 하나로 통치를 가능하게 했던, 인류 역사에서 가장 노골적인 ‘색의 권력’이자 규제였습니다.


Orpiment 의 노란색 계열은 지구가 가장 오래 품어온 자연 안료이자 독성과 희소성, 그리고 금빛을 구현하기 위한 종교적 열망이 합쳐져 만들어진 색입니다. 빛, 계시, 신성의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된 색이었고 그만큼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카본 블랙은 어둠의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카라바조의 어둠을 가능하게 했던 이 색은 빛을 빨아들이는 기술이고, 근대 과학과 회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던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어둠을 통해 권력을 구축한 드문 색이었죠.


화이트는 늘 가장 순수한 색으로 불렸지만 사실은 가장 정치적이고 가장 사회적인 색이었습니다. 연백 안료는 치명적으로 독성이 강했지만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초상을 떠받쳤고, 진주는 여성. 상속, 순결이라는 사회적 장치를 시각화한 재료였습니다. 가장 ‘깨끗한 색’이 오히려 가장 많은 규범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은 색채사가 가진 아이러니이기도 하지요.


각각의 색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명사입니다. 그리고 모두 뚜렷한 재무적 그리고 역사 흔적을 남기고 있죠.


실제로 각 색깔들은 아래의 프레임 워크로 분석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Finance / 가격 메커니즘

– 희소성
– 제국의 공급망
– 회계와 자산화
– 후원 및 의전의 비용 구조


Historical / Artistic Power
– 종교의 상징 체계
– 여성/상속 시스템
– 국가 브랜드와 문화정치


저에게 색이란, 예술을 보는 방식이자 세상을 구조로 읽어내는 하나의 언어입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에서 우리는 색을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라 문명, 숫자, 권력, 전략의 자리로 옮겨보려 합니다. 그리고 이 서론은 작은 예고편에 가깝습니다.


이제 천천히, 색의 뒤편에 숨어 있던 세계의 움직임들을 함께 읽어볼까요?


당신의 자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박스석으로 준비해둘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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