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스트 오브 어스』 속 과거의 상처와 복수의 여정
“Wake me up before you go-go.”
엘리(벨라 램지 분)는 조엘(페드로 파스칼 분)을 향해 이렇게 농담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이미 무너진 세계에서 살아남은 이들만이 아는, 음악에 담긴 단서와 상처의 감각이 숨어 있다.
1. 침묵 위에 놓인 대화 – 엘리와 조엘
시즌 1, 어느 날 밤. 엘리는 빏보드차트 책자 속 메모를 몰래 읽는다. 연도별로 적힌 암호들 속에 빠진 1980년대를 발견한 엘리는, 조엘을 향해 능청스럽게 묻는다.
“80년대는 왜 없어요? 무슨 일 있었어요?”
조엘은 무심하게 등을 돌린다. 그리고 얼마 후, 엘리는 잠든 조엘을 향해 말을 건넨다.
“아저씨, 잠꼬대했어요. 라디오에서 음악 나왔어요.”
음악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는 이렇게 말한다.
“Wake me up before you go-go. 계속 반복되던데요.”
그녀가 말한 것은 그룹 왬!(Wham!)의 1984년도 히트곡 제목 겸 가사. 순간 조엘은 놀란다. 그 말은 80년대 음악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신호였다는 걸 드러낸다. 엘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알아냈어요. 80년대는… 위험? 뭐 그런 거 아니에요?”
그 뒤로, 화면을 가로지르며 디페시 모드의 Never Let Me Down Again이 흘러나온다. 불길한 신스 사운드, 긴장감 어린 멜로디. 이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과거의 상처, 현재의 불안, 그리고 닥쳐올 파국의 전조가 된다.
2. 먼지가 쌓인 기타 위에 흐르는 감정 – Take On Me
시즌 2, 조엘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뒤, 엘리는 디나와 함께 복수의 여정을 시작한다. 시애틀의 폐허 속, 그들은 어느 악기점 안으로 들어간다. 엘리는 2층 구석에서 먼지 쌓인 기타를 발견한다.
그리고 A-ha의 1984년 히트곡, Take On Me를 조용히 연주하기 시작한다.
"Talking away / I don't know what I'm to say I'll say it anyway..."
이 곡은 원래 신나는 리듬과 발랄한 보컬로 유명하지만, 엘리의 목소리에서 울리는 Take On Me는 전혀 다르다. 느리고, 낮고, 조심스럽다. 마치 한 음 한 음에 조엘과의 기억이 담겨 있는 것처럼.
“I'll be gone in a day or two…”
이 한 줄은, 이미 떠나버린 조엘의 그림자에 대한 속삭임이 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연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조엘이 생전에 엘리에게 약속했던 “노래 한 곡 불러주겠다”는 말의 실현이며, 엘리가 기타를 통해 그와 맺었던 유대를 스스로 되새기는 의식이다. 동시에, 디나와의 감정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섬세한 순간이기도 하다.
음악은 그렇게, 슬픔을 꺼내고, 사랑을 싹트게 하며, 고통을 지나가는 작은 다리가 되어준다.
3. 음악은 사라진 세계의 숨결이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 음악은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이다. 80년대라는 과거의 시간은 그저 복고적 장식이 아니라, 붕괴된 세계와 인물들의 트라우마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엘리가 기타를 연주하는 그 장면에서, 우리는 한 소녀가 상실과 복수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음악을 통해 인간성을 지켜가려는 순간을 본다. 폭력과 공허 속에서도, 음악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을 지키고, 사랑을 확인하고,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엘리는 다시 기타 줄을 튕긴다.
엘리가 그날 부른 노래는 단지 추억의 팝송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엘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었고, 자신을 붙잡기 위한 고백이었으며,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