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은 폐허 속에서 피었다

엘리와 조엘, 그리고 벨라 램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by 고영탁

종말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많지만, 이 작품은 달랐다. 감염자보다 무서운 것은 언제나 인간이라는 진부한 진실. 그런데도, 이 드라마는 끝끝내 사랑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가장 황폐한 세계에서, 가장 사적인 방식으로.


쿠팡플레이로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보기 시작한 건 두 주 전쯤이었다. 시즌 1을 순식간에 끝내고, 시즌 2도 방영분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3회차를 반복해서 보고 있었다. 보다 보면, 이 이야기가 좀비 서바이벌 장르라는 사실은 점점 잊혀지고, 결국엔 한 소녀와 한 남자의 서사로 수렴된다. 세상의 끝에서 서로를 만나, 서로를 지키고, 서로를 이유로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


조엘과 엘리. 누구나 그렇듯, 나도 이 둘 때문에 마음이 뼈저리게 저렸다. 이 드라마의 팬이 된 이유도, 어쩌면 엘리라는 인물에 빠져든 것도, 결국엔 그 둘의 관계와 정서적 유대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말 외에 달리 붙일 수 있는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 사랑은 무엇이었나

조엘은 세상을 잃은 사람이었다. 20년 전, 감염 사태가 시작되던 그 날, 그는 하나뿐이던 딸을 잃었다. 그 이후로 그는 그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않았고, 살아남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엘리는 그런 조엘 앞에 나타났다. 면역이라는 특이한 조건을 지닌, 그래서 ‘운반’되어야 할 존재로 처음 만났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아이는 점점 딸이 되어갔다.


처음엔 경계하고, 그 다음엔 무심한 듯 지켜보다가, 결국엔 그 아이를 위해 세상 하나를 통째로 부정하게 되는 조엘의 변화. 그 변화가 내게는 너무도 고통스럽고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엘리는 처음부터 조엘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점점 더 조엘도 엘리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구했고, 동시에 서로를 무너뜨렸다.


드라마 후반, 병원에서의 선택은 조엘이 ‘인류 전체’보다 ‘한 사람’을 택한 장면으로 기억되겠지만, 내게는 그것보다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랑의 고백처럼 다가왔다. 그건 단순히 아버지와 딸,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가 아니었다. 더는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은 사람과,처음으로 누군가를 잃는 게 두려워진 사람 사이의 구원 같은 것. 세상이 무너진 뒤에도, 어떤 감정은 여전히 사람을 살게 만든다는 사실이 이 작품을 통틀어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이었다.


내가 사랑하게 된 엘리, 그리고 벨라 램지

벨라 램지를 처음 본 건, <왕좌의 게임>이었다. 그때 그녀는 북부의 작은 가문의 소녀 영주로 등장했다. 몸집은 작았지만, 누구보다 강단 있고 의연한 목소리로 존 스노우와 스타크 가문의 앞날을 향해 당당히 말했다. 그 짧은 장면 하나로도,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왕좌의 게임> 속 리안나 모르몬트. 단 한 장면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이미지 출처: HBO

그래서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썸네일 속 얼굴을 보고 금세 떠올릴 수 있었다.


“저 아이, 리안나 모르몬트였던 배우 아닌가?”


기억 속의 ‘콩만 한 소녀’가 이제는 종말 이후의 세상 한가운데, 누군가의 딸이자 친구, 그리고 생존자로서 서 있는 것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반가웠다.


드라마 초반의 엘리는 솔직히 낯설었다. 말끝마다 날이 서 있고, 호기롭게 굴다가도 금세 상처받는 모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정한 화살 같았다. 처음엔 조금 거부감도 들었다. ‘왜 이렇게 무모하게 행동하지?, 왜 이렇게 제멋대로지?’라는 생각도 들었고, 게임 속 엘리의 이미지를 떠올린 사람들에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나는 그 모든 모난 각도들이 엘리라는 인물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무모한 이유가 있었고, 제멋대로인 태도에도 슬픔이 숨어 있었다.그리고 그 슬픔을 연기하는 방식이, 벨라 램지라는 배우만이 가능한 길이라는 것도.

사랑을 잃은 자의 얼굴. 벨라 램지는 엘리를 연기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이미지 출처: HBO

벨라 램지는 엘리를 ‘재현’하지 않았다. 다시 태어나게 했다. 드라마는 게임과는 다른 리듬을 갖고 있고, 벨라는 그 리듬 안에서 자신만의 엘리를 만들었다. 삶의 끝자락에서 웃는 법을 잊지 않는 아이, 모두가 떠난 세상에서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나는 결국, 그 엘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벨라 램지를 응원하게 되었다.


우리는 왜 새로운 해석에 이토록 잔인한가

벨라 램지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시즌 1이 방영되던 내내 끝없는 비교와 조롱의 대상이었다. 원작 게임의 엘리와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혹은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심지어는 그녀의 성별 정체성까지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


일부 팬들은 벨라의 얼굴을 조롱하는 이미지를 만들고, 그녀를 다른 배우로 바꾼 가짜 포스터를 돌려가며 “이게 진짜 엘리였다면”이라는 말들을 남겼다. 그런 이미지들에 달린 댓글은 거의 대부분 혐오에 가까웠다. 연기에 대한 진지한 비평은 없었다. 오로지 ‘그 얼굴로는 안 된다’는 식의 일방적인 선 긋기뿐이었다.


벨라 램지는 결국, 모든 SNS를 접었다. 누구에게든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열아홉에서 스무 살 무렵의 청년 배우에겐 더욱 큰 상처였을 것이다. 그녀는 "소셜 미디어는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겪은 온라인 혐오를 털어놨다.


엘리를 연기한 벨라 램지는, 조엘처럼 어쩌면 우리에게 구원보다 더 큰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었는데, 그녀를 향한 세상의 반응은 그 어떤 것보다 거칠고 폭력적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엘리는 이래야 해’라는 집착, ‘원작을 훼손했다’는 분노, ‘나의 엘리’가 아니라는 배신감. 그 모든 감정들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 감정들이 누군가를 공격할 권리로 바뀌는 순간 팬심은 권력욕이 되었고, 창작물에 대한 애정은 폭력이 되었다.


사랑한 만큼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망을 향한 책임은, 결코 배우 개인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엘리를 진심으로 연기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엘리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잔뜩 긴장한 눈썹과, 말끝을 흐리지 않는 목소리, 스스로를 보호하려 애쓰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닿고 싶어 했던 사람.


그 얼굴을, 그 연기를 두고 누군가는 추하다고 조롱했고, 나는 그 연기를 보며 울컥했다.


그 온도 차이 속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을 말해도 오해받을 것 같았고, 응원은커녕 변호조차 또 다른 말다툼으로 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 바뀌었다. 누군가는 말해야 했다. 누군가에게는 조롱의 대상이었던 그 얼굴이, 나에게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얼굴이었다고.


팬의 권리는 비평을 포함하지만, 사랑의 형식을 잃은 비평은 결국 폭력이라는 것.


이 글은 그런 마음에서 쓰였다. 누구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사랑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 싶었다.


에필로그. 폐허 속에서 피어난 것들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좀비 드라마가 아니었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것도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가장 깊은 방식으로.


세상이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피어나는 관계들. 절망 속에서도 손을 내미는 사람들.


언젠가 다시 그 이야기를 보게 되더라도 나는 같은 장면에서 똑같이 마음이 저릴 것이다. 그게 조엘이 엘리를 향해 총을 든 순간이든, 엘리가 조엘에게 조용히 기댄 순간이든.


그리고 기억할 것이다. 그 순간들을 연기한 벨라 램지라는 배우를.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누군가의 구원이 되어주었던 사람을.


“누군가에게도 이 드라마가 위로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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