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나물 비빔밥을 먹는다는 것

봄은 그렇게 한 그릇이 된다.

by 이수정

날씨가 따뜻해졌다. 얼어붙은 땅이 녹고, 여기저기 새싹들이 고개를 내민다. 이 시기에 꼭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막나물 비빔밥.
막나물은 특정 나물의 이름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나물을 한데 마구 섞어 파는 것을 말한다. 이런 나물은 마트에서는 팔지 않는다.


속초시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근처 양양 오일장에 가면 할머니들이 모여 집에서 가져온 꾸러미들로 좌판을 펼친 구간이 있다. 그곳에 가야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늘 있는 것은 아니라, 운이 좋아야 살 수 있다.


지인들과 양양 오일장을 찾았을 때 눈을 크게 뜨고 막나물을 찾았다. 달래, 냉이, 원추리, 쑥은 보이는데 막나물은 보이지 않았다. 포기하려던 찰나, 어떤 할머니 앞에 막나물 한 바가지가 놓여 있었다. 뭐가 들었는지 묻지도 않고 가격만 확인한 뒤 바로 값을 치렀다.



집으로 돌아와 나물을 꺼내 보니, 이미 꽤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그래도 묵은 잎이나 지푸라기 같은 것들이 섞여 있을 수 있어, 한 번 더 손질하기로 했다. 손질을 하며 어떤 나물이 들어 있는지도 하나씩 확인해 봤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원추리다. 원추리는 더 자라면 독성이 생겨, 지금 시기에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나물이다. 데쳐서 된장에 무치면 달고 맛있다. 그리고 냉이 두 뿌리. 냉이는 향이 끝내줘서, 조금만 더 컸다면 따로 빼내 된장국을 끓였을 텐데. 너무 작아서 티도 안 날 것 같다. 몇 개 안 되는 쑥도 그냥 함께 비벼 먹기로 했다.


나물의 80%를 차지한 것은 망초와 개망초다. 둘 다 길을 걷다 보면 지천에 널린 잡초 같은 풀들이다. 향은 거의 없지만, 씹을수록 은근한 단맛이 올라온다. 비빔밥에는 맛과 향이 강한 나물이 좋은데, 망초와 개망초는 맛이 약하다. 어떤 나물이 들어 있는지 미리 뒤적여볼 걸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미 늦었다. 샀으니 맛있게 먹어야지.



냄비에 소량의 물과 소금을 넣어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손질한 나물을 찬물에 가볍게 씻어 먼지를 털어낸다. 물이 끓으면 나물을 냄비에 모두 넣는다. 물에 닿지 않는 나물이 많아 물이 모자란가 싶지만, 몇 번 뒤적여주면 금세 숨이 죽는다. 너무 오래 데치면 흐물흐물해지고 맛이 없어지니 뜨거운 물에 잠깐 담갔다 빼듯 데친다.
데친 나물을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짜내고 나니, 한 봉지였던 나물은 결국 한 주먹 양으로 줄어들었다.


넉넉할 줄 알았는데, 3인분의 비빔밥을 하기엔 양이 모자랄 것 같아 냉장고에서 죽어가던 얼갈이배추를 꺼내 무쳤다. 나물은 따로 양념을 하지 않고, 물기를 빼느라 뭉쳐둔 것을 다시 가볍게 풀어놓았다.



준비는 다 끝났으니 비비기만 하면 된다. 찬장에서 대접을 꺼내 밥을 퍼담는다. 그 위에 데친 나물과 얼갈이무침을 넣고 계란프라이 하나를 올린다.


계란은 친정집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청계알이다. 크기는 작지만 껍질도 단단하고 유정란이다. 노른자가 유난히 봉긋하고 탱글 해서 젓가락으로 집을 수 있을 정도다. 직접 닭을 키우니, 요즘 같은 고물가에도 계란값 부담이 없다. 직접 사료와 풀을 먹이고 건강하게 키워 비공식이지만 무항생제에 가까운 유기농 계란이니, 몸에도 분명 좋을 것이다.



시외숙모가 주신 직접 짠 귀한 참기름도 아낌없이 넣었다. 늘 만들어두는 달래장을 한 숟가락 듬뿍 퍼넣어 비비니, 내 밥그릇에도 봄이 한가득 담겼다. 봄나물이 많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주말에는 직접 봄나물을 뜯으러 들판에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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