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자란다.
토요일 아침. 옆구리에서 고양이인 땜빵이가 뒤척이는 느낌에 눈을 떴다. 원래도 잘 자는 타입이지만, 오늘따라 깊고 오래 잠을 잔 것처럼 개운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해서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10시가 넘었다. 너무 늦게 일어났다.
올해로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작년부터 아침에 먼저 일어나도 제 엄마아빠를 깨우지 않았다. 왜냐고 물으니 엄마랑 아빠는 평소에 피곤하니까 주말에는 늦잠자도 된단다. 그러고는 스스로 냉장고의 빵을 꺼내 토스트기에 데우고 땅콩버터나 누텔라, 딸기잼 등을 발라 우유와 함께 먹었다. 벌써 다 큰 것 같다.
거실로 나가보니 아침을 차려먹은 흔적이 여기저기 있다. 살펴보니 아이의 아침메뉴는 플레인 요거트와 초코룹스를 섞어만든 초코링 비요뜨, 그리고 어젯밤에 미리 잘라둔 과일을 먹은 것 같았다. 요거트는 두 개나 먹었다. 아침을 챙겨 먹은 흔적을 보며 왠지 모를 안도감과 미안함이 들었다. 글러먹은 엄마 같다.
머쓱해진 나는 아이에게 배가 고프지 않냐고 물었다. 아침을 먹은 지 시간이 좀 지나서 출출하다는 말에 무엇을 해 먹을까 고민했다. 마침 어제 사다 놓은 베이컨과 유럽상추가 있었다. 샌드위치를 해 먹자고 하니 좋다면서 내게 손가락 하트를 날려준다.
재료는 빵과 유럽상추, 베이컨, 치즈, 계란이다. 재료는 모두 갖추어놨으니 서둘러 만들어줘야겠다. 토스터에 식빵을 굽는 사이 유럽상추를 한 장씩 툭툭 떼어 물에 헹궈놓는다. 그리고 팬 한쪽에 베이컨을 굽고, 다른 한쪽에는 계란을 깨 스크램블하듯 흩어 놓는다. 베이컨 한쪽이 구워지면 뒤집고, 아직 덜 익은 계란은 식빵크기에 맞게 모양을 잡아준다. 베이컨이 다 익을 때쯤 접시로 옮기고 계란을 뒤집어 불을 끈다. 여기까지 하면 토스터에서 식빵이 다 구워졌다며 '띵~'하는 소리가 난다. 식빵 한쪽에 딸기잼을 얇게 바르고 그 위에 유럽상추를 올린다. 그 위에 베이컨과 치즈, 계란을 순서대로 얹고, 식빵을 올려 눌러주면 끝이다. 완성까지 10분이면 충분한 인스턴트다.
샌드위치는 빵과 빵 사이에 재료를 끼우면 되니 간단해 보이지만, 사이에 끼우는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요리의 난이도가 달라진다. 감자샐러드 샌드위치는 감자샐러드를 따로 만들어야 하고, 돈까스 샌드위치는 돈까스를 튀겨야 한다. 야채샌드위치는 온갖 채소를 손질해야 한다.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토스트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식빵부터 야채까지 팬 위에 구워 따뜻하다. 반대로 샌드위치는 대체로 차가운 재료들이다. 그래서 우리 집 샌드위치는 따뜻한 식빵과 아삭한 야채, 둘 다 놓치기 싫은 욕심쟁이 샌드위치다. 그러다 보니 토스트와 샌드위치 사이 어딘가쯤에 있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완성된 샌드위치를 접시에 담아 우유와 함께 주니, 아들은 맛있다고 엄지를 올린다. 남편의 몫도 만들어 미리 내려놓은 커피와 함께 내어주고, 나도 앉아 먹기 시작했다. 크게 한입 물어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바삭하게 구워진 빵이 고소하고 딸기잼은 상큼하고 달큰하다. 싱싱한 유럽상추는 아삭하게 씹히고, 베이컨은 짭짤해서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맛에 악센트를 준다. 계란은 반숙에 가깝게 익혀 부드럽다. 일부러 따뜻한 베이컨과 계란 사이에 넣은 치즈는 위아래의 온기에 녹아 녹진하고 고소하다. 각 재료마다 다른 맛과 개성이 있는데도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조화롭다.
아이는 또 한입 크게 베어 물고는 맛있다며 웃는다. 아빠에게 빵은 자기가 토스터에 넣어 구운 거라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글러먹은 엄마 같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내가 키우는 줄 알았는데, 아이는 조금씩 스스로 자라고 있었다. 따뜻한 빵과 차가운 야채가 입 안에서 잘 어울리듯, 늦잠 잔 엄마와 스스로 아침을 먹은 아이의 하루도 그렇게 어울려 흘러간다. 그런 아침이라면 조금 늦게 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