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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칼럼] 미식(美食)의 시대 (1)

미식,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 - 고대 유럽 편

by 미식에 진심


혼자 조용히 식사하는 미식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연예인의 맛집 탐방 유튜브가 수백만 뷰를 넘기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SNS 속에 미식 기록이 가득한 시대. 나이, 직업, 지역을 불문하고 셋 이상만 모이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우리는 '잘 먹는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다.


'미식이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이토록 대중의 일상 깊숙이 스며들었을까?'


이 글은 그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고대, 중세를 거쳐 근대, 현대까지 미식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따라가다 보면, 결국 묻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미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고대 유럽의 미식이란


고대 로마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견된 벽화. 상류층의 사치를 엿볼 수 있다. (출처 :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MANN)
폼페이 유적지에서 출토된 고대 로마 연회 음식 벽화. (출처 : 폼페이 고고학 공원, Parco Archeologico di Pompei)


고대에는 ‘미식(gastronomy)’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없었다. 음식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기보다는, 공동체 결속을 위한 도구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귀한 식재료를 선별하고, 정교하게 조리하고, 아름답게 장식하고, 레시피로 정리하는 행위는 고대에도 분명 존재했다. 른 관점에서 보면 미식의 씨앗은 이미 기원전부터 뿌리내리고 있었던 셈이다.


특히 미식의 기원을 이야기하려면, 고대 로마의 '루쿨루스(Lucullus)'와 '아피키우스(Apicius)'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상징적인 이름이다.



루쿨루스 - 호화로운 연회의 대명사


공화정 초기까지의 로마는 사치를 경계하고, 절제의 미덕을 중시하며, 도덕적 엄숙함을 우선시하는 분위기였다. 식사 또한 곡물, 채소, 치즈, 올리브유 위주였고 육류 섭취는 제한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화정 말기로 접어들며 로마는 점차 팽창했고, 동방 원정을 통한 막대한 전리품과 노예, 외래문화의 유입은 전례 없는 부의 축적과 화려한 연회(콘비비움, Convivium)¹ 문화로 이어졌다.


그 정점에 있는 인물이 바로 '루쿨루스'다.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장군이었지만, 후대에 정치·군사적 업적보다 호화로운 연회로 더 널리 알려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Lucius Licinius Lucullus).


그는 동방 원정을 통해 막대한 부를 얻었고, 은퇴 후에는 극도로 호사스러운 만찬을 자주 즐겼다고 한다. 단순히 음식과 플레이팅에만 공을 들인 게 아니라, 대저택 안의 연회 공간을 만찬의 성격에 따라 세분화하고,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얻기 위해 광활한 루쿨루스 정원과 인공 해수 연못까지 건설했을 정도로, 상을 초월하는 규모를 자랑했다고 전해진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Plutarch)의 『대비열전(Parallel Lives)』에 따르면 그가 아폴로실에서 '한 번' 저녁 식사하는 데 드는 비용이 서민의 수십 년 치 수입을 훌쩍 뛰어넘는 5만 드라크마(drachma) 정도였다니, 긍정이든 부정이든 가히 전설적인 인물이라 불릴 만 하다.


'루쿨루스적인'


이 와중에 흥미로운 사실은, 오늘날 극도로 화려한 미식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영단어 'lucullan : 호화로운, 사치스러운'이 바로 루쿨루스로부터 비롯된 형용사라는 것이다. '루쿨루스 향연(Lucullan Feast)'이라는 표현 또한 지금까지도 '사치스러운 식도락'을 묘사하는 관용어구로 계속 쓰이고 있다.


각주 1. 콘비비움, convivium : ‘함께 살다’를 뜻하는 라틴어 con-과 vivere의 합성어. 고대 로마의 연회 문화를 일컫는다. 화려한 음식과 와인이 필수 요소였으며, 부와 지위를 과시하고 정치적 동맹을 강화하며 인맥을 넓히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리스의 symposion과 유사하나, 음주보다 식사 중심인 점에서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
- 세네카, 『스토아 철학자의 편지』(번역. 유원기)
-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교양인을 위한 플리니우스 박물지』(번역. 서경주)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번역.천병희)
- Athenaeus,『The Learned Banqueters』 (trans. Andrew Dalby)
- Pierre Grimal, 『The Gardens of Lucullus, in Roman Cities』



아피키우스 - 음식에 인생을 걸다


로마 제정 초기, 티베리우스 황제(14년-37년 재위) 시절 활동했던 자산가 ‘마르쿠스 가비우스 아피키우스(Marcus Gavius Apicius)’.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요리책 『아피키우스, 데 레 코퀴나리아(De Re Coquinaria, 요리에 관하여)』 를 통해 고대 로마를 대표하는 식도락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동시에 ‘타락한 귀족’의 전형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여러 고대 문헌에서 그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특히 부를 과시하기 위해 낙타 뒤꿈치, 플라밍고 혀, 공작새 뇌, 돼지 자궁과 고환, 타조 다리 등 기이한 식재료를 탐닉했다던가, 가장 크고 좋은 새우를 구하기 위해 접 아프리카까지 배를 타고 갔으나 품질이 기대에 미치지 않자 상륙하지도 않고 곧바로 배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던가 하는 전설적인 일화들 그가 얼마나 식에 과도하게 집착했는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비극적이면서도 놀라운 이야기는, 아피키우스가 매일 호사로운 연회를 즐기다가 뒤늦게 막대한 재산을 탕진한 걸 깨닫고, 남은 1천만 세스테르티우스로(sesterces)는 '예전처럼 먹고 살 수 없다'고 판단해 결국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참고 : 1천만 세스테르티우스는 당시 평범한 시민이 평생 벌어도 닿기 힘든 금액이었다.)


"맛있는 걸 이전만큼 많이 못 먹게 되자 자살했다고?"


현시대의 가치관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 화는 당대 귀족 사회에서 화려한 연회 음식이 권력과 부를 과시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희귀한 식재료를 얼마나 멀리서 얼마나 빠르게 들여올 수 있는지, 어떤 요리사가 그것을 다루는지, 누구와 함께 요리를 나누는지가 곧 사회적 지위, 정치적 영향력, 경제력의 지표가 되었고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고대 로마 연회 음식을 자세히 엿볼 수 있는 시각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각국의 연구기관들이 고고학 자료와 문헌 기록을 토대로 당대 귀족 음식 문화를 복원하며 그 근거를 뒷받침하고 있다.


아피키우스, 데 레 코퀴나리아

고대 로마 '아피키우스, 데 레 코퀴나리아' 요리책의 9세기경 필사본 일부.(출처 : 뉴욕 의학 아카데미, New York Academy of Medicine)


『데 레 코퀴나리아(De Re Coquinaria, 요리에 관하여)』는 고대 로마 후기의 식문화를 집대성한 실용 문헌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 요리서다.


오늘날의 요리책과 달리 간략한 재료 목록과 핵심적인 조리 단계만 단순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육류, 가금류, 해산물 등 다양한 식재료와 소스에 관련된 400여 가지 레시피 외에도 고급 식재료 조달 방법, 저장 기술, 연회 구조, 식기 문화, 대체 식품에 대한 조언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고대 로마 상류층의 식생활과 문화 코드를 탐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여기에 숨겨진 뒷이야기는, 실제 저자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통상 '아피키우스의 요리서'라는 이름으로 려져 있지만, 저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존재다. 일부 학자들은 표지에 적힌 '아피키우스'가 ‘마르쿠스 가비우스 아피키우스(Marcus Gavius Apicius)’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당대의 미식가를 뜻하는 일반명사라 주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 세네카, 『스토아 철학자의 편지』 (번역. 유원기)
- Athenaeus, 『The Learned Banqueters』 (trans. Andrew Dalby)
- 『The Cambridge Ancient History』 Vol. XI, Cambridge University Press.
- Sally Grainger, "The Myth of Apicius",『Gastronomica』, Vol. 7, No. 2
- Christopher Grocock & Sally Grainger, 『Apicius: A Critical Edition with an Introduction and English Translation』



쾌락과 과시, 그 후


고대 식문화에 대한 문헌들을 찾아보면, 루쿨루스와 아피키우스 사례 외에도 로마 부유층 안에 호사로운 음식 문화와 연회가 다수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듯 진귀하고 값비싼 식재료를 사들여 부와 권력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손님에게 더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다량의 향신료를 사용했으며, 자극적인 맛과 향을 추구했고, 단순히 맛있는 것을 넘어 기상천외하고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미식’이라 부르는 몇 가지 행위들이 고대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대목이다.


하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이 모든 행위의 목적이 '감각적 쾌락'과 '사회적 지위 과시'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요리 본연의 예술성, 창의성, 미학적 가치를 독립적으로 인정하고 탐구하며 셰프의 철학과 지속가능성, 동물복지 등의 윤리적 가치까지 아우르는 오늘날의 '미식, gastronomy'와는 차이 보인다.


그렇다면 현대적인 개념의 미식은 고대 이후 어떤 단계와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을까. 그 여정을 따라가려면 먼저, 중세에서 음식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시리즈는 총 3부작이며,

다음 편에는 중세의 미식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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