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헤멘만큼 모두 나의 땅

중국 유학생에서 스타트업 대표까지

by 구미

늘 안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 = 나


현재에 안주하는 법 없이 매번 변화를 추구했다. 이 모든 건 [대체불가능한 사람]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나'란 사람의 장점은 뭘까? 어떤 일을 할 때 빛을 발할까?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쩌면 중국으로 유학가기 전, 그 때부터 꿈틀거린 것 같다. 평범한 서울 2년제 대학 졸업생. 집 앞 마을버스 타고 갈 수 있는 직장 (인천공항 면세점)을 다니며 지루함을 느꼈다. 고객들에게 세일즈를 하며 판매에 성공할 때는 그 누구보다 짜릿했지만 이건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면세점에 다닌 지 3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중국으로 유학을 결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2017년 3월, 외국인 고객이 면세점에 많을 때 였다. 특히 중국인 고객분들이 많았는데 이들과 대화를 이어갈 수 없음에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물론 1학년 종강 후 방학 때 1달씩 중국살이를 하고는 했었는데 실컷 놀다만 왔었을 뿐이다. 스펙도 그 무엇도. 정말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었다.


그래서 그 길로 부모님도 모르게 유학을 준비했고...

약 반년을 애쓴 편입 시험 결과는 어땠을까?

당연히 떨어졌다.


(*당시 매일 새벽5시까지 출근 후 오전조 퇴근, 바로 인천공항에서 강남에 있는 편입학원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벅찼다.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ㅠ)


나는 시간도 돈도 없는 사람이라 무조건 3학년 1학기 편입을 목표로 준비했다. 만약 한학기가 더 미뤄지면 1학기 학비 + 생활비 + 기숙사비만 해도 천만원이 넘어가 부담이 컸다.


1차적인 조건은 HSK 5급 취득. 근데 위에서 말했듯이 나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놓고 시험만 그냥 주구장창 신청한 것이다. HSK 시험비만 100만원을 썼다. 이 무슨 바보같은 짓인가.


(*그러나 헤멘만큼 모두 나의 땅이라고..! 추후 나는 졸업 후 HSK 과외 선생님이 된다. 월~금 매일매일 스케쥴이 꽉찬 선생님이 된다. 이게 또 이렇게 쓰이네? 이건 뒤에서 계속 �)


아무튼- 그 길로 머리를 쥐어짜며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생각했다. 잘 다니던 회사는 이미 퇴사를 선언했고, 중국을 안가기엔 미련이 철철 넘쳤다. 선택지가 없어진 나는 엉엉 울면서 편입학원 선생님께 도와달라 했다.


그렇게 선생님이 알려주신 한가지 방법이 더 있었다.

바로 현지에 가서 2-2학기 편입 시험을 보는 것. (+HSK 4급 자격증은 필수)


무슨일이 있어도 2017년 9월 22살의 나는 중국 상해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래서 그 길로 한 학기 짐을 싸들고 결과도 모르는 시험을 치러 중국으로 갔다.


그렇게 나는 편입시험에 합격했다.

2017년 9월, 7년이나 지난 그 계절을 잊지 못한다.


편입시험에 붙었지만 제대로 된 비용도 모으지 못한 채 나는 알거지로 3년간 상해생활을 하게 된다.


나에게 상해 유학은 분명 좋은 기회였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만 가득 해 겨우 버틸 수 있었지만 지금 다시 돌아보면 너무 추운 3년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아둥바둥 버티던 지난 날, 어쩌면 그 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던 것 같다.


졸업 전 한끼를 사먹을 생활비도 없던 순간, 우연히 발견한 SNS 마케팅 대회를 죽기살기로 참여했고 1등을 했다. 상금 10,000위안을 받았다. 팀원들과 나누고 약 3,000위안(약 50만원)이 내 손에 들어왔다. 소중한 나의 한달 생활비였다.


그렇게 SNS, 영상 제작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샤홍슈에서 활동하는 왕홍 콘텐츠 PD도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하나도 허튼 경험이 없다. 결핍으로 움직이던 나는 이제 아무런 결핍 없이 내가 주도하는 삶을 살아간다.


지금 이 글도 다시는 가지 못할 것 같았던 상해에 다시 돌아와 좋아하는 카페에서 적었다. 앞으로 내 인생에 얼마나 더 스펙타클하고 재미난 일들이 벌어질 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