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끝에서
올랜도에서의 모든 여정이 끝났고, 이제 최종 목적지인 마이애미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이번 여행에도 어김없이 함께한 날씨 요정 덕분에 우리는 한층 더 생동감 넘치는 미국을 만날 수 있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화려한 하늘과 구름덕에 마음 또한 풍요로웠다.
그리고 여행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한껏 우중충한 날씨는 내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듯하다. 설상가상으로 천둥번개까지 치며 비가 요란하게 쏟아진다.
신기하게도 비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만 우리를 따라왔다. 빗속을 뚫고 달리는 운전은 쉽지 않았지만, 걸어 다니는 동안 비를 만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오랜 시간을 달려 마이애미에 도착하자 하늘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그대로 들어가기엔 아쉬워 근처 공원에 잠시 들렀다.
우뚝 솟은 고층건물 사이로 옅게 펼쳐진 초록 잔디가 작은 휴식공간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맑은 날이었다면 더 반가웠을 분수도 공원 한가운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 시간이 아까운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풍경을 바라봤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지금 이 순간은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J와 함께 산책을 하며 지나온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현실로 돌아가야 할 일만 남겨 둔 두 여자는, 끝이 가까워질수록 더 짙어지는 아쉬움을 안고 긴 여행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있었다.
하루는 금세 저물고 또 다른 날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미뤄두고 싶던 일상으로의 복귀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와 버렸다.
햇살이 가득한 호텔 로비는 그 어느 때보다 밝고 따뜻했다. 벽에 걸린 커다란 TV에서는 일기예보가 한창이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오늘의 날씨를 잠시 지켜봤다. 화면 속 지역마다 해님이 방긋 웃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을 떠난 뒤에도 하늘은 하루 종일 맑을 것이다. 우리가 머물다 간 자리와 상관없이, 이곳의 평화로운 하루는 계속 흘러가겠지.
묘하게 기분이 이상했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온다. 그 처음은 항상 설레지만 마지막은 언제나 아쉽고 씁쓸하다. 그래서일까. 이 날의 풍경과 뉴스 속 장면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치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섭섭한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마지막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 호텔을 나와 공항까지,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길을 차분히 달렸다.
도착이 곧 이별이 된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눈 우리는 각자의 게이트로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여행이 남긴 선물
그날도 어김없이 길을 잃었다.
지도 앱은 있었지만, 이상하게 발걸음은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행에서 가장 많이 남은 장면들은 늘 그렇게 계획 밖의 순간들이었다.
나의 젊은 날을 함께 해 온 여행은 인생의 동반자였다. 새로운 곳을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고 경험했다.
돌아보면 홀로 떠나는 일이 두려울 수도 있었을 텐데, 작은 체구로 세상을 누비며 여행해 왔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
아마도 젊음이라는 무기 덕분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색이 바래지 않고, 언제든 바로 어제의 일처럼 꺼내 볼 수 있는 추억. 평생 보장된 그 기억들은 여행이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여행은 일생이라는 긴 여정에 잠시 찍어두는 작은 쉼표와 같다.
당일치기든 1박 2일이든, 나는 여전히 쉼표를 하나씩 찍어가며 부지런히 추억을 쌓고 있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충분하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나는, 또 다른 설렘을 안고 내일 다시 떠날 것이다.
여기까지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다음 책에서는 또 다른 여정을 조심스레 이어가 보려 합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다음 여행도,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