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으로 돌아간 어른이들

The happiest place on earth

by JULIE K

멀리서 모노레일이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를 꿈과 환상의 나라로 데려갈 바로 그 열차였다. 행여나 놓칠세라 J와 나는 전력질주 했다.


숨이 차오를 즈음 가까워진 열차에 몸을 실었다. 모노레일은 잔잔한 호숫가를 따라 달리며 우리를 모험의 세계로 안내했다.


하루가 이미 중턱을 넘긴 뒤였다. 시간이 없던 우리는 주저 없이 '디즈니 월드'의 핵심으로 달려갔다.


Magic Kingdom


인포메이션에서 미리 예약한 티켓을 받아 들고 입장하던 순간의 설렘은 지금도 또렷하다.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건물들이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었고, 기념품 가게들은 줄지어 이어졌다.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만드는 공간들이었다.


테마별로 진열된 아기자기한 굿즈들 앞에서 발걸음은 자꾸 느려졌다.


'아... 시작부터 이러면 반칙이지.'


소비의 늪에 빠지기 전에 정신줄 단단히 부여잡고 기념품 가게들을 지나쳤다.


얼마 걷지 않아 만난 광장 한가운데, 디즈니 월드의 상징인 '신데렐라 성'이 우아한 자태로 서 있었다. 그 앞에는 월트 디즈니가 미키마우스의 손을 잡고 있는 동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풍경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듯했다.


뉴욕의 도시를 걷고, 플로리다주를 구석구석 나 이곳까지 왔다. 불과 며칠 사이의 일들이었지만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름조차 낯설었던 올랜도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마파크에 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한바탕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랄까?


어린 시절 처음 놀이공원에 갔을 때, 세상이 커다랗게 느껴지던 순간이 떠올랐다. 두 여자는 그렇게, 눈앞에 펼쳐진 매직 킹덤의 풍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Welcome to Disney World


시간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우리는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기대했던 '캐리비안의 해적(Pirates of the Caribbean)'을 찾아갔다.


마침 영화 속 주인공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아이들과 호흡을 맞추며 공연을 하고 있었다.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보트를 타고 한 바퀴를 도는 구성은 생각보다 짧았고, 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은 해적들이 신밧드의 모험을 떠올리게 했다.


곧바로 '정글 크루즈(Jungle Cruise)'로 향했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캡틴 브리트니가 능숙한 설명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아이들이 가장 열광할 만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잔잔한 보트 투어로 시작했으니, 이제는 조금 더 스릴을 즐길 차례였다.


우리는 '빅 선더 마운틴 레일로드(Big Thunder Mountain Railroad)'와 '스플래쉬 마운틴(Splash Mountain)'에 도전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질 때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릿함에 아이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려와서 확인한 사진 속 우리는 차마 눈을 마주치기 힘들 만큼 신나 있었다.


모든 스트레스를 털어낸 채 해방감을 되찾은 어른이 둘은 그 기세를 몰아 놀이공원을 종횡무진했다.


가장 오래 기다렸던 '인어공주(Under the Sea)'는 조개 의자에 앉아 바닷속을 도는 짧은 여정으로 끝났고,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남았다.


한참을 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덧 퍼레이드를 시작할 시간이 다가왔다.


시간이 부족해 매직 킹덤의 절반밖에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디즈니 월드의 하이라이트인 퍼레이드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근처에서 시카고 핫도그를 사 들고 '메인 스트리트'로 향했다.


신데렐라 성 앞에는 이미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해가 저물어 가는 하늘은 차분해지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열기는 오히려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손에 핫도그와 콜라를 들고 자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지만, 발 빠르게 자리를 잡은 사람들 틈새로 들어갈 곳이 쉽게 보이지 않았다.


"이리로 와서 앉아요."


조촐한 저녁거리를 들고 서성이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인심 좋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덕분에 생각보다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정신없이 노느라 배가 고팠던 우리는 바닥에 앉아 주저 없이 핫도그를 먹기 시작했다. 그날의 저녁은, 아마도 여행 내내 가장 맛있었던 한 끼로 기억될 것이다.



순식간에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밤이 찾아오자 오색의 빛들이 켜지며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마법 같은 순간이 시작됐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 퍼레이드 행렬이 다가왔다. 어린 시절 즐겨 읽던 동화 속 주인공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피터팬의 영원한 요정 팅커벨, 디즈니의 마스코트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호박마차를 탄 신데렐라까지. 행렬이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성은 점점 커져 갔다.


오랜 친구들을 다시 만난 듯, 옛 추억에 잠긴 우리도 손을 흔들며 퍼레이드를 즐겼다. 마지막은 미국을 상징하는 독수리가 화려하게 장식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순간이었다.


나의 동심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준, 그날의 가장 빛나는 장면이었다.


퍼레이드가 끝나자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물 흐르듯 밀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내 앞에서 안전봉으로 길을 막았다.


바닥에 그어진 선을 가리키며, 곧 신데렐라 성에서 스크린 쇼가 열릴 예정이니 이곳에서 줄을 서야 한다고 했다.


얼떨결에 좋은 자리에 서게 되었지만, 우리는 또다시 사람들 속에 파묻히고 싶지는 않았다. 조용히 자리를 양보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밀집된 인파를 벗어나자 그제야 숨이 트였다. 멀리 신데렐라 성 위로 비친 미키마우스가 여전히 춤을 추고 있었다.


이제 동심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다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오늘 하루만큼은, 어른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살아도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