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뭐라고? 안 들려~~~~!!"
"왜 이렇게 빨리 달리냐고!"
"나도 몰라~~~ 나 왜 빠르지~?? 아하하하하하~~!"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드문드문 이어지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한 채, 나는 믿기 힘든 속도로 차를 몰고 있었다.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자동차들은 하나같이 나보다 더 빨랐다.
이곳에서는 느리게 달리는 쪽이 오히려 더 위험해 보였다. 속도를 줄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최대한 그들의 흐름에 맞추려 애썼다.
더 무서운 건, 이곳이 외진 길이 아니라 차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도심 속 도로라는 사실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최대한 정신을 차리려고 집중했다.
빵~~~~~~~!!
클랙슨 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터졌고 내 옆을 지나가는 차들은 바람만 남기고 사라졌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차량이 심하게 흔들렸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재밌었다. 이거 왜 재밌지?
심장이 쿵쾅거리는데 실없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롤러코스터의 꼭대기에서 떨어지기 직전처럼 긴장되면서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들었다.
서울에서는 감히 밟아보지 못할 속도였다. 속도계 바늘은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스릴을 경험하고 있는 J는 창문 옆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었다.
"천천히 달리면 안 돼?"
"여기서 속도 줄이면 사고나!"
차 안에 있는데도 서로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점점 더 큰소리로 말하며 간신히 대화를 이어갔다.
그때,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나가는 출구가 눈에 들어왔다.
전방 500m까지 가는데 0.5초도 안 걸린 기분. 길을 놓칠까 봐 숨도 쉬지 않고 옆 차선으로 방향을 틀었다.
휴~~~~
드디어 정신없는 도로 위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앞서가는 차도, 뒤따라오는 차도 보이지 않았다. 컴컴한 어둠 속에 우리만 있었다. 이미 속도의 짜릿함을 맛본 나는 쉽게 페달에서 발을 떼지 못한 채 한동안 비슷한 속도로 달렸다.
덕분에 순간이동에 성공한 우린 무사히 주차장에 도착했다.
철제 구조의 주차타워 가장 꼭대기에 차를 세운 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을 유일하게 밝히고 있는 빛에 이끌려 주차장 끝으로 걸어갔다.
하늘에는 지난밤 아쉽게 놓쳤던 슈퍼문이 여전히 지구 곁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무사히 살아 돌아온 우리를 축하해 주는 것처럼 달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 달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작은 소원을 빌었다.
"오늘 밤에 슈퍼문이 뜬대. 달 보러 해변으로 갈 건데, 같이 가지 않을래?"
여자들만 쓰는 도미토리의 분위기는 늘 그날의 사람들에 따라 달라진다. 그날 밤의 룸메이트들은 처음 만난 사이에도 거리낌 없이 말을 건네는, 유난히 쾌활한 친구들이었다.
나이는 우리보다 한참 어린 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함께 웃고 떠들기엔 충분했다.
마음은 이미 그녀들과 함께 나가고 있었는데, 다음날 예정된 장거리 운전이 머릿속을 붙잡았다. 뉴욕에서 하루 종일 걷고 온 터라 체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
슈퍼문이라는 얘기에 귀는 솔깃했지만 이미 체력이 방전된 J와 나는 결국 잠을 선택했다.
이틀 전 마이애미에서 머물던 숙소에서 룸메이트들과 나눴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만약 잠을 자지 않고 함께 해변으로 나갔더라면, 그 밤의 달은 어땠을까?
지구 가까이에 와 있다고 아는 체하듯, 커다란 달이 유난히 밝고 또렷하게 빛나고 있다.
올랜도의 밤
늦은 오후, 드디어 마지막 여행지인 올랜도에 도착했다. 이곳에 오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J가 다시 스크틀랜드로 돌아가기 전, 하루쯤은 조금이라도 편하게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 마지막 숙소는 한인민박으로 정했다.
집주인은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고, 깔끔하고 단정한 집 안은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작은 안식처 같았다. 방 안에 딸려있는 화장실에 호텔처럼 놓인 작은 어매니티는 피로에 지친 여행자들을 위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길었던 여정 탓에 우리는 천천히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처럼 먹는 한식에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주인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여기까지 왔는데 시티워크라도 다녀오라며 연간 회원권을 내밀었다.
사실 장거리 운전으로 지쳐 있었지만,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와보겠나 싶어 회원권을 넙죽 받아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시티워크(Universal CityWalk Orlando)'에 와 있다.
늦은 밤, 놀이공원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천천히 회전하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동그란 지구본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제야 정말 내가 올랜도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안으로 들어가 호수를 중심으로 천천히 걸었다. 네온사인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고, 레스토랑과 바, 상점들이 화려한 불빛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이 밤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호수 한쪽에는 경비행기가 놓여 있었고, 건너편으로는 하드락 카페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안으로 들어가 볼까 마음이 흔들렸지만, 지금의 어둠과 고요가 더 마음에 들었다.
밝은 달이 떠 있는 밤,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가깝다는 말에 큰 부담 없이 나섰던 길이 이렇게 스릴 넘칠 줄은 미처 몰랐다. 시끄러웠던 도심을 지나 외딴곳에 도착한 듯한 이 고요함이 오늘 하루를 정리해 주는 것만 같았다.
아...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