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모든 것은 변합니다.

변화에 대한 무지

by 이일영


내 생각에



처음 세상을 인식했을 때 세상은 완성되어 있었다. 이미 만들어진 세상을 익히는 것이 주어진 일이었다. 싫어하고 좋아하는 음식과, 노래와, 놀이는 원래 있던 것을 찾아낸 이었다. 세상을 향한 호오를 발굴해낸 결과였다. 오래된 과자는 역사를 자랑하듯이 포장지에 크게 출시 연도가 적혀 있었지만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것은 태초부터 존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읽지 않은 책을 읽어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 일처럼 완성된 세상을 탐구하는 행위가 삶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방아쇠는 무엇일까? 성장하면서 달라지는 주변 사람들과 환경의 반응일 수 있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은 반드시 끝난다. 오랫동안 즐겨온 게임의 종료 소식도 허탈하다. 게임을 즐기던 시절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 세계가 이미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일 수도 있겠다. 대화를 나누고 포옹을 나눴던 사람이 언제고 불시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충격은 삶을 연약하게 느끼게 한다. 좋아하는 가수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절망스럽다. 큰 회사의 도산, 오랫동안 산 동네의 재개발, 큰 공사, 소련이 무너지고, 전쟁의 경험, 부모님이 진 갑작스러운 큰 빚, 지금까지 알아왔던 세상과 단절된 전혀 다른 세상에 대한 인식이 변화가 무엇인지 알게 한다.


그리고 나마저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젊음은 열에너지와 비슷한 것 같다. 열은 있지만 냉기는 없는 것처럼 젊음은 있지만 늙음은 없다. 컵에 담긴 뜨거운 물이 열을 잃고 차가워지는 것과 같이 내 것인 줄 알았던 것이 영원히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믿었던 육신이 변한다. 바뀐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들이 바뀐다. 몸의 형태가 변하고 운동 능력이 감소한다. 이지도 마찬가지다.


서 있는 위치가 안정적이지 않으면 사람은 불안해진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동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일이 천천히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서 어떤 것이 바뀌게 될지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살지 않는다. 내 죽음을 까먹고 사는 것처럼. 늙어감에 대한 한탄은 기능이 떨어진 육신에 대한 슬픔도 있겠지만 변화를 거부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도 영원하지 않다는 깨달음과 함께 영면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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