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모양 그림자와 미래 예측의 상관관계

산책하며 든 상념

by 이일영


나는 하루에 한 번씩 산책한다.


규칙적으로 살기 위한 다짐의 일환으로 하게 된 것인데 건강에도 좋고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도 좋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산책은 주로 저녁에 한다. 시간을 내기에도 좋고 그날 하루 있었던 일을 털어버리기에도 좋다. 산책을 하고 있으면 사위가 어두워지고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한다.


산책 첫날 나는 가로등 근처에서 고양이를 봤다고 생각했다. 가로등이 켜지자 가로등 기둥 모양의 그림자가 길을 가로질러 길쭉하게 드리워졌다. 그런데 길 한복판, 그림자 중간에 타원형의 둥그런 물체가 보였다. 아무리 봐도 크기나 모습이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양새였다. 나는 잠깐 멈춰 한참 멀리 있는 그 고양이 형상을 살펴봤다.


내가 고양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고양이를 향해 아주 조심스레 다가갔다. 길 한복판에서 쉬는 고양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길은 하나였고 고양이가 지키고 앉아 있는 길을 통과해야 했다.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길가로 붙어 서서히 걸었다. 조심스럽게 한참을 전진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저건 그림자였다. 이 길에 있는 가로등은 다른 가로등과 다르게 그냥 일자로 쭉 뻗은 게 아니라 어떤 기계 같은 것이 툭 튀어나온 모양새로 붙어 있었고 그 그림자가 길에 드리워진 모습이 오묘하게 고양이를 닮았던 것이다.


너무나 허탈했다. 마음속으로라도 고양이와 인사를 나누고 싶었던 기대가 산산이 부서졌다. 나는 터덜터덜 그 그림자를 가로질러 갔다. 좋지도 않은 내 눈을 믿은 내 잘못이었다.


다음 날 같은 시각 산책을 하다가 또 고양이를 발견했다. 그리고 또 잘못 본 그림자였다.


사람이 같은 것을 반복하다 보면 아무래도 자연히 습득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게 모든 것들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며칠 동안 산책을 갈 때마다 그림자를 고양이로 착각했다. 물론 그림자 고양이 구간에 도착하기 전에 오늘은 속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날 뿐, 그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그림자를 고양이로 착각했다. 그리고 그 착각에 대한 내 반응도 항상 같았다. 고양이가 놀라지 않게 서서히 다가가다가 그림자임을 깨닫고 실망했다. 그 착각의 과정에 따라오는 생각의 흐름도 거의 일치했다.


마치 매일매일 한 구간을 반복해서 사는 기분이었다. 다른 때, 다른 장소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데 딱 그 공간에 들어가면 영원히 같은 경험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었다. 동생이 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었다. 나는 흥미롭게 듣고는 내 사견을 덧붙였다. 그리고 완전히 잊어버렸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동생은 나와 대화를 하던 중 그 이야기를 다시 말해 주었다. 완전히 잊어버려 새로운 이야기처럼 들은 내 반응을 본 동생은 즐거워하며 말했다. 예전에 들었을 때랑 완전히 같은 말을 하네!


반대의 경험도 있었다. 상대방이 잊은 이야기를 다시 해 주었을 때 과거와 아주 유사한 반응을 보인 것을 목격한 적이 자주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자극에 대하여 같은 반응만을 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예측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은 너무 많고 세상은 너무 넓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쌓여 만들어진 정보량이 너무나 방대해 미지의 세계처럼 보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모든 자극에 대한 대응 방식을 알게 되면 우리는 어쩌면 먼 미래를 꽤 그럴듯하게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라는 책에서 지구는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일종의 슈퍼 컴퓨터다. 비록 계산하는 도중에 폭파되었지만. 우리가 만약 세상에서 존재했던, 존재하고 있는, 그리고 존재할 모든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미래를 알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역사를 끊임없이 기록하는 것도, 인간에 대하여 질문하는 그 모든 문화 예술활동의 이유도, 인간과 주변 환경에 대하여 탐구하고 연구하는 그 모든 수학, 과학, 사회과학도 해답을 내야 하는 의무를 지닌 지구 컴퓨터의 일을 수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시 모를 일이다.


위 글은 산책할 때마다 스쳐 지나간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고양이 그림자 길로 산책을 다니는 것은 관뒀다. 더 마음에 드는 산책 경로를 찾았기 때문이다.




*커버 이미지는 나사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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