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요상하게 생겼어
아무래도 인간은 좀 요상하게 생긴 것 같다.
인간은 몸을 일으켜 빳빳하게 세우고 걷는다. 누울 때도 반듯하고 평평한 일 자 모양이다. 사람의 형상을 단순하게, 단순하게, 매우 단순하게 만들면, 막대기 모양이 된다. 그러니까 인간은 일종의 움직이는 작대기라고 할 수 있다. 한글에서 모음을 만들어내는 요소인 천, 지, 인에서도 인간은 세로 선 하나다. 세종대왕께서도 인간을 작대기로 본 모양이다.
프랙털 구조는 전체를 이루는 요소가 전체와 닮은 형태를 이르는 말이다. 구글에 검색하면 프랙털 구조를 그리거나 찍은 방대한 양의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 양치식물의 잎, 인간의 폐, 눈송이, 반복적인 문양들, 해안선, 나뭇가지, 번개, 그리고 빨려 들어갈 것 같이 반복되는 동영상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런데, 인간에게는 사지가 있다. 팔과 다리 모두 막대기 모양이다, 손가락, 발가락도 그렇다. 팔다리는 큰 막대기, 손발가락은 작은 막대기다. 우리는 막대기 같이 생긴 몸에 막대기 같이 생긴 팔다리가 붙어있으며 그 네 개의 막대기에 손가락과 발가락이라는 막대기가 달린 모양새로 삶을 살아간다. 물론 각자의 사정에 따라서 가지고 있는 작대기의 개수가 다르거나 모양이 다를 수는 있어도 큰 틀에서 우리의 신체는 막대기들이 결합된 모양새다.
그리고, 맙소사, 우리의 털도 막대기 모양이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인간은 큰 막대기에 막대기 네 개가 붙어있고 그 네 개의 막대기 끝에는 각각 다섯 개의 막대기가 붙어있으며 이 막대기들에는 굵기나 길이가 다른 막대기가 빼곡히 달려있는 생김새의 생물이다. 막대기에 막대기가 달려 있고 그 막대기에 막대기들이 달려 있는 신체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아무래도 프랙털 구조가 떠오른다.
물론 나도 인간이 프랙털 구조의 신체를 가졌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의 신체가 만약 프랙털 구조였다면 지금보다 인간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기하학적 무늬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싶다면, 인간을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프랙털 구조의 예시로 쓰이는 고사리 잎과 인간을 비교하고 프랙털의 정의를 찬찬히 읽고 나면 인간이 프랙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을 계속 밀고 나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어떻게 잘만 해보면 될 수도 있었을 것만 같다는 느낌에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다. 진화를 어떻게 몇 번 더 거쳤으면 그래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팔이 손가락처럼 다섯 개였다면? 사지가 좀 더 가늘었다면? 머리카락 끝에 인간의 얼굴처럼 동그란 형상이 붙어 있었다면? 머리카락이 뱀인 메두사는 어깨 위로만 보자면 다른 인간들보다는 훨씬 프랙털 구조에 가까운 신체를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 정확한 확인은 어렵다. 메두사의 협조를 얻더라도 자칫 실수로 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머리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인간은 털도 좀 독특하게 난다. 눈꺼풀과 눈 위에 짧고 비교적 굵은 털이 자란다. 이마를 지나 위쪽으로 가면 싹이 올라오는 양파 같은 모양으로, 영원히 자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이상할 정도로 긴 털이 자란다. 신체 구조나 호르몬, 연령 등에 따라 입 주위에 굵고 짙은 털이 날 수도 있고 얇고 짧은 솜털만 날 수도 있다. 일단 얼굴만 봐도 털이 나는 곳이 들쭉날쭉하다. 샅과 곁에는 털이 좀 있는데 다른 곳은 비교적 민둥하다. 인간에게 복슬복슬한 털이 주는 귀여움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차등적으로 자라는 털은 우리의 육신을 차등적으로 따뜻하게 한다. 머리칼이 길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머리가 따끈하다. 털이 짧고 얇은 다리나 팔에서 느낄 수 없는 따끈함이다. 어쩌면 머리카락이 그렇게 긴 이유는 몸의 털이 얇고 짧은 대신 머리칼을 길러 덮고 다니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겨울에 옷을 갈아입고 있으면 머리는 따뜻해도 몸통과 사지는 서늘하다.
내 되려다 만 프랙털 육신과 불균등한 보온재를 보고 있자면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허망하게 느껴진다. 인간이란 생물 자체가 이미 요상한데 드문드문 난 털과 생김새를 서로 비교해서 얻을 게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이 제아무리 새침해도 고양이만 못하고, 어떤 위압적인 외모도 호랑이만 못하다. 동시에 어쩌다 이런 요상한 생김새를 가진 동물이 탄생하게 되었나 하는 신기한 마음도 든다.
어렸을 때는 개미가 기어가고 강아지가 달리는 모습에서도 새롭고 신기함을 느꼈다. 햄스터가 먹이를 까먹는 일, 새가 날고 앉는 일, 물고기가 꼬리를 흔들며 나아가는 일이 신기했다. 어떻게 개미는 머리카락 같은 다리로 기어 다닐까? 햄스터의 눈은 저렇게 작고 까맣고 반질거리는데, 구슬이 아니라니! 물고기는 손은커녕 다리도 없는데 몸을 영원히 스스로 긁을 수 없다는 데에 불안함을 느끼지 않을까?
지금은 너무 많은 일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것에 무덤덤해졌다. 그러나 어느 날 무심코 손가락을 관찰한 일이 나를 인간과 프랙털 구조에 대한 생각까지 끌고 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익숙한 사람들의 요상하게 새로운 얼굴을 보면서 요상한 친근감과 생물체 전반에 기묘하게 피어오르는 사랑을 느낀다.
* 커버 이미지는 나사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