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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수 Jan 24. 2024

두리안 냄새 때문에 생긴 일

   

 동남아 출장을 다녀온 후배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정사각형 종이박스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는다. 

"이게 뭡니까? 더운 날씨에." 지쳐서 쉬고 있는 선풍기를 켠다. 앉으라고 권면하는 나의 말에 후배는 약속이 있어 가야 됩니다 하며 앉지도 않고 그냥 돌아선다.  

"선배님 맛있게 드십시오. 과일의 왕자 두리안입니다."라고 말하는 후배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얼굴로 흘러내린다.


두리안 처음  듣는 생소한 이름이다. 아내와 함께  택배를 보낼 때처럼 단단히 포장된 종이박스를 열었다.  그와 동시에 희한한 냄새가 풍긴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에서 길 위에 떨어진 은행이 오고 가는 발길에 밟힐 때 번지는 비슷한 냄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비닐로 두른  한 꺼풀을 벗기니 여러 겹으로 쌓여 있다. 아! 이래서  더운 날씨에 상했나 싶었다. 비닐을 다 벗기니 약간 눌려진 작은 고구마 같은 열매가 속살을  보인다. 여러 개가 다정하게 웃고 있다. 하지만 찐하디 찐한 화장실 냄새가 거실은 물론 방마다 꼭꼭 채운다. 

 

"여보 상했나 봐요." 아내의 말이다. 전에 고추 씨앗 싹을 내려고 비닐로 싼 다음 따뜻한 보일러실에 넣었다가 상해서 버렸던 실패를 떠올리게 했다. 도저히 먹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니 먹을 수가 없었다. 버리기로 했

다;. 새벽에 주택가 옆 얕은 산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며칠이 지나고 후배의 부인을 만났을  때 "지난번 두리안 어땠어요"  하고 묻는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여린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었다. 본의 아닌 거짓말이 가슴앓이되어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여름 늦더위 끝자락의 어느 날. 안산 호텔이라면서 대학동기인 Y로부터 전화가 왔다. 

"뭐라고. 일본에    있어야 할 사람이 웬 안산이야." 

"휴가로 나왔어. 이번엔  머무르면서 쉬기로 했으니 한 번 만나."

"필요한 것이나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음 얘기해.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1시간이야."             

하필이면 두리안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안산에 외국 근로자들이 많으며 이들을 위해 왹국인 거리가 조성되기도 했다고 했다. 바로 거기서 가공하지 않은 두리안을 구할 수 있다는 정보까지 친절하게 가르 준다.

다음 날 아침 아내와 함께 안산으로 향했다. 길  안내에 따라 외국인 거리에 도착했다. 아이들 머리보다 더   

커 보이는 울퉁불퉁하게 생긴 두리안  4개를 샀다. 가게  아저씨가  도끼로 힘껏 쳐서 속을 열었다. 앗 원형 그대로 일 때는 그대로인데 속이 갈라지자마자 특유의 시골 화장실 냄새가 나는 게 아닌가. 그 안에는 3개의 열매가 가지런히 누워 있다. 그렇다면 구덩이를 파고 묻은 것이 상한 게 아니었다는 말인가? 나머지 모두를 쪼개어 열매를 모아 그릇에 담아  보자기로 싸서 찬구가 머무르는 숙소로 갔다.      


호텔 로비에서 친구의 이름을 가르쳐 주고 연락을 부탁했다. 그런데 직원이 머뭇거리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코로 냄새를 맡는다. "손님, 혹시 두리안 갖고  오셨습니까?" "네. 왜 그러시죠. 안됩니까?" "안에는 들여올 수 없습니다." 로비에서 기다리던 다른 손님들도 고개를 저으며 우리의 눈치를 살핀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밖으로 쫓겨났다. 냄새도 따라온다.


호텔 입구와 출입문 사이의 작은 마당에서 친구가 나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마침내 만난 친구 부부와 반갑게 손을 잡았다. "내가 깜빡했네 두리안은 호텔 안으로 갖고 올 수 없다는 것을." 찬구가 너스레를 펼쳤으나 즐겁기만 했다. 친구 부부는  즐기면서 먹었고 나와 아내는 얼떨결에 처음으로 두리안을 경험하게 되었다. 냄새와는 달리 거부감은 없었다. 덧붙이는 친구의 말이 "항공기 안에도 먹을 수 있는 상태로는 절대로 반입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냄새를 감추려 비닐로 겹겹이 싼 정성도 이유도 모르는 바보가 되었네 하였다. 그렇게 힘들여 가지고 온 귀한 것을 상한 줄 알고 벼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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