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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수 Jan 06. 2024

나눔의 기쁨

  해가 바뀌고 새해 첫날에 가족이 점심식사를 같이하기로 약속했다. 시간을 낼 수 없는 아들 내외를 대신하여 지난 연말에 아내와 나는 시장에 가서 반찬 재료를 사 왔다. 그제와 어제 아내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음식이 만들어진다. 아들 가족은 교회 송구영신 행사로 인해 쉬었다가 시간에 맞춰 오기로 하다.

     

  전화연락을 받고 식탁을 꾸민다. 첫째 손녀가 좋아하는 두부찜, 손자가 찾는 육개장과 배추 겉절이, 인도에 유학 중인 둘째 손녀가 방학으로 귀국했는데 고향의 맛으로 기억하는 우엉볶음과 오징어실채 볶음이 주인공을 기다린다. 오늘 모이는 까닭은 중학교 1학년인 둘째가 뭄바이 쪽에서 학업 중 잠시 귀국을 했다가 곧 출국을 해야 하기에 함께 모이기로 했다. 감자탕, 해피리 무침, 간장게장이 있다. 아들과 며느리가 준비한 홍어무침이 자리를 잡았고 딸이 자동차에 싣고 와서 놓고 간 백김치도 있다. 호박, 고구마, 오징어, 굴로 만든 튀김과 전이 한 접시에 담겨있다. 


  차리는 일이 마쳐지기 전에 현관문이 열리며 반가운 얼굴들이 미소를 머금고 들어온다. 아이들과 허그를 한다. 첫째와 둘째 모두 대학생이니 나보다 키가 크다. 셋째도 나와 어깨를 나란히 히니 거실이 가득 찬 느낌이다. 한 학기 동안 몸이 자라고 마음도 성장했다. 아내와 둘이서만 앉던 커다란 식탁이 자리를 채워 앉으니 오늘은 작아 보인다. 그동안 못다 한 얘기를 하면서 즐겁게 먹는 시간을 갖다.  


  "막내야, 집에 와서 무엇이 제일 먹고 싶었지?"

  "김치찌개 생각이 제일 많이 났지요."

  "학교 생활은 잘 적응이 되었고."

  "네, 이제는 영어도 익숙해졌답니다."


  조상들을 추모하며 내일을 다짐하는 순서를 가졌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각각 편지를 쓰고 세뱃돈을 봉투에 편지와 같이 넣어 전달했다. 아이들에게 맞는 내용으로 글을 써서 세뱃돈과 함께 봉투에 넣어 전했다.


  오후. 아이들은 모두 서울 집으로 돌아갔다.


  둘째 날이 밝았다. 아직 준비한 음식과 반찬이 많이 남아 있다.

  아내는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전화기를 닫은 다음 아내는 B 씨를 점심식사에 초대하기로 했단다. B 씨는 아파트 옆에 있는 산에 다니다가 만난 여자로 결혼 후 혼자가 되어 외롭게 지낸다. 생활보호대상자로 67세 정도로 알고 있다. 아내의 연락이 없으면 하루 종일 이불속에서 추위를 견디는 시간을 보낼 따름이다. 

  12시가 조금 지나서 B 씨가 현관문을 두드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인사를 한다.

  "반갑습니다. 2024년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나의 대답이다.

  아내와 둘이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자 곧 가야 할 곳이 있다면서 일어서는 그에게 아내는 문을 열어주며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힘들어하면서도 이웃을 초청해서 한 끼의 음식을 나누는 기쁨을 누리게 되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좋아하는 아웃과 더불어 기쁨을 맛보는 마음이다.


  셋째 날이다.   

  아내는 전화기를 열었다.

  "<진>아, 영과, 영 아빠 세 식구 모두 우리 집에 와서 점심식사 같이 하자. 12시 30분까지 와."

  "네, 알겠습니다."

  이 가정도 안타깝게 생활보호대상자이다. 1991년도 봄에 나의 주례로 결혼하였고 다음 해 딸 <영> 아가 태어나 세 가족아 됐다. 영아 아빠는 오지 않고 엄마와 딸 둘이서 왔다. 오랜 교제가 이어지는 관계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다. 아내는 나눔으로 기쁨이 있음을 감사하며 내일 한 사람을 더 초대해야겠다고 말한다.


  넷째 날에 찾아온 자매.

  J자매를 처음 만났을 때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다. 역시 교복을 입은 여동생이 있었다. 어머니의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온실의 꽃처럼 자라나는 모습이 기억된다. 언니가 먼저 결혼할 줄 예상했지만 동생이 결혼을 했고 언니인 J는 아직 혼자다. 무심한 세월의 흐름은 흰머리카락을 더러 보여 준다. 


  나도 식탁에 함께 앉았다. 옛날을 돌아보며 느리게 느리게 밥알을 입에 넣는다. 그럼에도 둘이서 편한 대화를 나누라고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서재로 돌아와 앉았다. 진지한 이야기를 한참이나 나눈다.


  잔치는 닫혔다. 아내가 너무나 수고가 많았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이다. 우리 집에 다녀 간이들 모두 외롭고 힘든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무언가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누는 기쁨이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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