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다니던 마을 이발소가 있다. 둘째 형은 학교 동창이기도 하여 가깝게 지낸다. 좋은 기술도 있겠다. 상냥한 부인의 든든한 살림 뒷받침이 있어 다른 걱정은 없어 행복할 따름이다. 하지만 한 가지 고민이 있다. 장손 아라서 아들을 기다리는 중이다. 기대와는 달리 벌써 세 번째 딸을 낳았다.
"여보 미안하오, 다음번에 아들을 낳아 드리겠어."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당신 건강하기만 바랄 뿐이오."
"아니 그래도 시댁 어르신들에게 죄송해서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아기를 혼자 낳는단 말이오. 조금도 걱정하지 말아요."
남편의 말에 셋째에 젖을 먹이고 있던 아내가 마음속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딸 부잣집이 하나 더 있디. 여덟 번째의 딸을 낳은 큰길 옆 초등학교 가고 오는 길 부부가 포기하지 않고 아들을 기대하는 모습이 측은하기도 하지만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자세는 정말 대단하다. 아들과 딸을 마음대로 결정해서 낳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으나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에 그냥 순리에 맡긴다. 기다림 끝에 아홉 번째 해산의 고통을 겪은 큰길 옆 양철 지붕의 팔공주 집 안에 드디어 고추를 달고 새 생명이 태어나다. 엄마는 딸들과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아버지는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오늘 생각하면 딸이 더 잘한다는 얘기가 많은데 아들을 낳으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남의 집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집 큰형은 형수와의 사이에 첫 딸을 낳은 후 아들을 기대하며 둘째를 품었다. 그런데 둘째 형수도 이미 첫 번째 씨앗을 품고 있었다. 둘째 형네는 가을에 출산할 예정이고 둘째 형수 출산 후 큰 형수는 두 달 지나서 예정일이다. 9월과 11월이다. 지금은 지루한 장마철이다. 그리 심하지 않은 입덧 탓에 큰 덕을 보는 것 같아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시부모님 모시고 있는 집 안에서 아이를 가졌다고 내세울 처지도 어니기 때문이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운 날씨도 끝을 보이는 듯싶더니 9월로 접어들었다. 17일 둘째 형수가 첫 번째 아들을 낳았다. 둘째 형의 절친인 이발사는 넷째 딸을 낳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큰 형수는 말은 하지 않아도 이번에는 아들이어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11월 28일 오후 큰 형수의 진통이 시작됐다. 두 번째인데도 진통이 매우 심하다. 아들이라서 그럴까? 하는 소망도 가져본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끝이 보인다. 새 생명의 머리가 세상 밖으로 내어민다.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는 형수에게 힘을 주라고 격려한다. 하나, 둘. 하나, 둘. 모두가 힘을 준다. 하나, 둘. 하나, 둘.
"으아앙! 으앙!"
새 생명이 울음을 터뜨린다. 조용한 침묵이 흐른다. 큰 형수의 눈가에는 아쉬움의 이슬이 맺힌다.
"수고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시어머니의 위로이다. 그럼에도 큰 며느리로 아들을 안겨드리지 못한 일에 대한 책임이 자신의 것처럼 여겨짐은 어쩔 수 없는 며느리 마음이다. 약속이나 한 듯 두 살 터울로 씨앗을 품는다. 둘째 형이 둘째 아들을 6월에 품에 안았다. 큰 형은 셋째가 8월에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발소 집은 다섯 번 째도 기다리던 아들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다. 주변에서 뿐 아니라 가족들도 이번에는 아들을 나흘 것이라고 모두가 큰 형수를 응원하였다. 광복절이 지난 일주일 후 주변의 응원을 받으며 일찍 저녁 식사를 마치고 준비를 했다. 두 번의 경험이 있는지라 여유가 생겼다. 진통도 짧고 강하게 오고 스치듯 지나가고 쉽게 세상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이번에도 힘찬 울음소리가 들린다. 은근히 기대를 한다.
"으앙! 으앙! 으앙."
시어머니의 시선은 재빠르게 아기의 아랫도리를 살핀다. 조용한 침묵이 이어진다. 이번이 새 번째다. 모두가 기대했으니 실망도 따른다. 큰 형수의 아픔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공간이다.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건강한 편인 형수는 곧바로 힘을 내기 시작한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큰 형이 대전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거처할 곳을 마련하고 가족이 함께 가게 되었다. KBS 대전 방송국 가까운 동네에 셋 집을 얻었다. 처음으로 분가한 셈이다.
둘째 형네는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둘째 아들의 첫돌이 지나고 나흘이 되는 날 울음을 터뜨리며 셋째 아들이 태어나다. 1년이 지나 절친인 이발사는 또 딸을 낳아 여섯이 되었다. 쿤 형수가 네 번째로 아이를 가졌다. 셋째와는 3년 차다. 집 안에서는 가족회의가 열렸다. 만약 큰 형네가 네 번째도 아들을 낳지 못하면 둘째 형네 집에서 조카 하나를 입양시키자는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점점 구체화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 해 8월 하순을 기다리게 되었다. 8월 어느 날 둘째 형이 자전거를 타고 귀가했다. 그러더니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고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마당을 돌고 도는 게 아닌가? 마루에 앉아계시던 할머니가 묻는다.
"하는 뭐가 그리 좋아서 웃음이 얼굴 가득하니?"
"예, 할머니 큰 형수가 지금 아들을 낳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니 아들이 양자로 가지 않아도 된 것이 그리도 좋으냐?"
그렇다. 대전에서 마침내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이 후로 큰 형수는 딸 아들을 더 낳아 6남매의 자녀를 기르게 된다. 이발사는 딸 일곱을 채우고 여덟 번째 아들을 낳아 칠공주 집안으로 부르게 되었고 둘째 형수는 딸 하나 그리고 막내로 아들을 낳아 4남 1녀의 자녀를 시회에 보내게 되었다. 인구증가율이 078이라는 보고가 있다. 누가 이 땅을 지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