슴슴하고 잔잔하게
두존(쫀)쿠가 난리인 시기이다.
두바이 초콜릿 쫀득 쿠키라던데
나는 일단 두바이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다. 두바이 뿐만 아니라 초콜릿 종류를 좋아하지 않은지 한참 되었다.
그리고 게다가 쫀득한 쿠키 형태는 더 별로이다.
이빨에 감기는 그 느낌이 싫어서이다.
나이가 드니 혀의 감각과 운동 능력도 줄어들어서 이빨이 낀 것을 털어내는 기능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양치질을 자주 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양치질만으로도 안되는 느낌이다.
왜 어르신들이 식사 후 이쑤시개를 꼽고 있는지
그 이유와도 통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두존(쫀)쿠를 먹어볼 생각도
굳이 사러가서 줄을 설 생각도 없다.
그 비싼 것을 먹기 보다는 성심당 튀김소보로를 먹겠다 싶다. 고르라면 말이다.
달달한 것을 먹는 것이 싫어지는 나이가 존재하는 모양이다.
한때 달달함의 극치인 도너츠 브랜드들이 여기 저기 생겨서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의 선물로 받은 사이즈도 커다란 도너츠 한 입을 베어물었다가
극강의 달달함에 머리가 짜르르 아파오는 신기한 경험을 한 그날 이후였을지도 모른다.
아들 녀석이 어렸을 때 제일 좋아라하던
그러나 비싸서 자주는 못먹던 아이스크림 중에
내가 한 입 먹어봤을때는 꼭 아카시아껌 냄새가 나던 민트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주말에
외할아버지나 외삼촌 할아버지에게 고기를 얻어먹는 날이면
꼭 그 옆 아이스크림집으로 가서 그 민트 아이스크림을 사서
입안 가득 물고는 세상 행복한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오랫만에 포식한 고기 때문이었는지
그 아이스크림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만.
한때 민초냐 반민초냐를 가지고 논쟁거리가 되었을만큼 그 선호도는 취향이 분명하다.
탕수육에 부먹이냐 찍먹이냐를 물어보지 않고 소스를 부었다고
세상 몰상식한 사람 취급을 당했다는 사례도 보았다.
각자 자기 마음 내키는대로 하면 되지
뭐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필요가 있겠냐 싶지만
같이 먹는 음식인데 미리 의사를 물어보는 것은 에티켓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난 반민초에 찍먹이다.
요즈음의 나는 아픈 남편 때문이기도 하지만
점점 간이 슴슴한 음식을 선호하게 된다.
단짠단짠과 달달구리를 슬며시 멀리하게 된지
꽤 되었다.
학교 급식의 국이 짜서 물을 더 타서 먹기도 했고
점점 맵찔이가 되어서 혀가 매운 음식을 감당하지 못하기도 하고
달달함이 싫어서 케잌류 대신 소금빵이나(어느 소금빵은 소금이 또 너무 짠 것도 있다.)
아예 투박한 베이글 종류를 선택할때도 있다.
물론 아무것도 들어가있지 않은 오리지날 상태로 말이다.
커피도 물론 아메리카노를 선택한다만
겨울에는 오늘 대문 사진처럼 달달함이 추가된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따라서 물엿이나 설탕 그리고 매실액 같은 조미료도 점점 사용하지 않는다.
구정 선물로 설마 그런 것을 주는 사람은 없지 싶다만.
그런데 달달함이 싫어지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달달한 톡은 받고 싶다.
말로는 차마 못하더라도
<보고 싶다던가, 옛날 그 시절이 그립다던가, 오늘 만나서 즐거웠다던가>
하는 달달한 톡을 보내고 받는 것에는 주저함이 없기를 희망한다.
아직 그런 말과 글은 싫어하지 않는다.
늙었다고 감정까지 다 늙어서 사그라지는 것은 아니란다.
지나치게 잔잔하게 단답형 대답으로만 톡을 하는 아들아.
가끔은 서술형 대답도 듣고 싶구나.
그리고 가끔은 나보다 먼저 나의 안위를 물어봐주는 센스를 보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