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생적 오지라퍼 Nov 11. 2024

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92

교사 업무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월요일은 3학년을 만나는 유일한 날이다.

2주만에 만나는데 오늘은 대학생 멘토교사가 와서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특별활동이 예정되어 있다.(내가 수업하는게 오히려 더 쉬울수도 있다.)

기말고사 후 3학년은 이렇게 다양한 활동이 제공되고

이 활동을 잘 소화하면 자신의 역량을 높이고 진로의 방향을 확실하게 결정할 수 있다.

반대로 이 활동의 의미 부여를 하지 못하면 시간만 낭비하고 공부하는 패턴을 잃어버리게 된다.


특별활동 시작에 앞서 오늘의 미션을 설명해주었다. 

세반 중 두반은 특별프로그램 당첨이고 한반은 온전히 수업이다. 이 시기에는 진도 맞추기가 힘들다. 그래서 사전 설명만으로 충분히 가능한것을 준비한다.

1월에 진행되는 학교 축제 포스터를 AI로 그려보는 것과(우수작에게는 문상이 나간다고 유혹하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AI 활용 PPT 만들기가 오늘 나의 미션이다.

물론 기존의 구글 계정을 가지고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만드는 방법을 문서로 제공하니 이제 그 문서를 따라하면서 제법 쉽게 산출물을 만들어내곤 한다.

지난번에는 그림만 그렸는데 이번에는 홍보 포스터니 문구를 삽입해야 한다.

한단계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PPT는 처음 만드는 것이니 주제는 자신의 관심사를 반영하라 하였다.

뉴진스가 최고 인기인 것을 알겠더라. 뉴진스 신곡 홍보방안에 대한 PPT가 3명이나 나왔다.

아무 조건을 주지는 않았으나

멘델의 유전법칙이나 인문계 고등학교와 특성화고등학교의 비교, 키와 야구 피칭 구속과의 관계 등 제법 수준높은 주제의 프리젠테이션 자료도 생성하였다. 

가끔은 구체적인 주제를 제시하지 않는쪽이  학생들의 관심사를 파악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다음 주는 서울시 전체 중3에게 모두 다 기회를 제공하는 뮤지컬 수업이 시작된다.

강사님들과 오늘 사전미팅을 하면서 너무 늘어지지 않는 15분 내외의 뮤지컬을 부탁드렸고

조명과 음향 업체에게 발표회 리허설과 본방 관련 견적서를 보내달라고 이야기하였다.

음악선생님께는 공연과 관련하여 피아노 이동과 관련된 견적서를 받아달라고 하였다.

과학실험을 도와주는 실무사선생님께는 작년에 했던 것과 성격은 같지만 수준은 더 높은 축제 보물찾기 상품 물품 선정과 QR 코드 제작을 부탁드렸다.

본격적인 축제 준비가 시작되고 있다.

역할에 맞추어 일을 분배하는것도 그리고 그것의 완성도를 수시로 체크하는것이 중요하다.

교사는 수업만 하는 사람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수업만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고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물 안에서 발가락을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는 우아한 백조가 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교사는 여러 곳에 관심이 있고 다방면에 지식과 경험이 많으면 유리한 직업이다.

어떤 업무를 담당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고 그

업무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다.

잘하려면 해도해도 끝이 없는 업무가 이어진다.

어디까지가 업무이고

어디부터가 잡무인지 구별할수도 구별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교사로서의 또 하루를 보내고

오늘은 오랜만에 명동의 백화점에서 맛난 저녁도 얻어먹고(멋진 후배들이여 고맙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흠뻑 나는 미디어아트도 보고 새로운 각도에서의 남산도 보았다.

남산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이다.

교사의 업무도 그러하다.

그 교사를 천직으로 살아온 40년이 마무리 되어가는 해가 마냥 아쉽기만 하다.

백화점은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였지만 나에게 연말은 아직 멀었다고 속삭여본다.

교사에게 연말은 바쁜 학기말이 종료되는 시점에 시작되는 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소하고도 중요한 약간의 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