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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Dec 18. 2024

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08

배신과 이해 그 한끗 차이

과학창의재단 특강에서 믿었던 3학년에게 큰 배신을 당하고

(3학년 교실쪽으로 접근도 하지 않고 눈길도 주지않았다. 2년간의 내 사랑이었는데 말이다.)

기말고사를 앞둔 2학년에게 마지막 애정을 쏟고 있는 이번 주이다.

아무리 일상에 집중하려하고, 아무리 평소처럼 생활하려 마음을 먹어도

남편의 암밍아웃이 나의 마음에 무거움을 주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과학행사도 다 마감했고

진도도 다 마무리했고 시험 범위도 물론 다 정리했다는 점이고

아직 못다한 것은 시험 문항의 무한 검토 중이라는 점이다.(이번 주 안으로는 정리가 될 예정이다.)


하필 이번 주 시험 진도 복습이 소화계, 배설계, 순환계, 호흡계 부분이다.

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남편 생각이 나고

콩팥(신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생각이 날 듯 하고

도대체 왜 이런 시련이 우리에게 닥쳤을지 순간순간 생각이 나니 너무 괴롭지만

아이들이 나를 이런 우울감에 오래토록 빠지게 하지는 않는다.

과학 시험 족집게 특강 중인데(시험문항 출제자 직강인데 말이다.)

교과서를 가지고 오지 않는다.(도대체 무엇으로 공부를 할 것인가?)

열강 중에 자꾸 눈을 감고 자려고 한다.(나의 큰 목소리로도 깨우기가 쉽지 않다니)

요점 정리를 마치고 10분 정도 공부할 시간을 주니 영어문제집을 푼다.(아니 과학 공부를 하자고)

이런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서 나를 잔소리 대마왕으로 만들어주니 나는 우울할 틈이 없다.

적어도 학교에서는 말이다.


그 와중에 나의 마지막 업무인 학교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포스터, 초청장, 활동 때 가지고 다닐 명찰, 플랜카드에다가

<최강야구>를 벤치마킹해서 올해 처음으로 만든 응원도구 클래퍼 등의 인쇄를 마무리했고

당일과 그 전날 리허설에서 가장 중요한 음향과 조명기기 전문가팀과 계약을 마쳤다.

졸업 공연이 될 3학년 뮤지컬 지도 강사님과 이야기도 나누었고

찬조 공연팀도 확보하였고(태평무, 현악 3중주 등 지인 찬스를 사용한다.)

각 체험 부스별 준비물도 신청을 마쳤고, 간식과 협의회비도 사용 내역을 확정하였다.

미리 미리 일을 준비하는 스타일이라

그랬으니 남편 일이 터져도 이 정도 지장없이 대비가 되는거지

닥쳐서 일을 하는 스타일이었으면 멘붕 상황이었을게다.


그리고 이번 주 금요일은 내가 지도하는 자율동아리 밴드반의 점심 시간 버스킹 공연이 있다.

3층 학생 휴게공간에서 할 예정인데

이미 일주일 전쯤 음악실의 오래된 피아노 한 대를 그곳에 오픈해두었다.

그랬더니 쉬는 시간 시간마다 수준이 천차만별인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린다.

젓가락 행진곡에서부터 제법 클래식한 곡까지 들려온다.

학생들의 즐거운 장소 중 하나가 되었고 클래식에 대한 입문의 형태로는 좋은 시도라고 자평하고 있다.

이번 연주는 동계 훈련으로 축제 공연 구경이 어려운 1,2학년 야구부를 위한 것이다.

2학년 밴드부의 로제의 <아파트> 연주가 오프닝이고

2,3학년의 협연으로 혁오의 <Tomboy> 연주가 메인이고

마지막으로 3학년의 앙콜곡 이문세의 <붉은 노을> 이 이어질 예정이다.

내일 오후부터 악기도 옮겨두어야 하고, 금요일은 점심을 빨리 먹어야 하고,

마이크도 이동하고 점검해야 하니 나는 우울에 빠질 틈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학교에서는 말이다.


토요일은 또 하나의 자율 동아리 <융합과학동아리> 7명 친구들과의(퍼파워 독수리 7형제이다.)

마지막 동반 행사인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의 특강을 들으러 가야한다.

과학을 전공하겠다는 어렵고 대단한 결정을 내린 그들에게

서울대는 방문하는 것 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날씨가 조금은 덜 추웠으면 참 좋겠고(관악산 바람이 차다.)

강의가 재밌어서 졸지 않고 끝까지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런데 원래 서울대 교수님들이 재밌는 강의를 진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이 아는 것과 재밌게 아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은 다른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날 이 친구들에게 큰 마음의 울림이 되는 무언가를 얻고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는 마지막 밥 한끼를 함께 할 예정이다.

오래전부터 가고자 했으나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서 못갔던 학교 근처 수제햄버거집이다.

그들에게 주는 나의 졸업 선물임을 알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마지막 제자라는 것은 아마 알것이다.

이 추위에 꿋꿋이 버티는 산수유 열매처럼 버티는 12월이 되고 있다.

이 와중에 어제 항암주사를 하루 종일 맞은 남편은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날도 추운데 말이다.

이해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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