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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Dec 17. 2024

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08

초밥을 나누어먹는 아들과 아버지


2주전 생전 그런 말이 없던 무심하기 그지없는 남편이 외식을 하자고 했었다.

아들 녀석은 신나서 나갔지만 나는 마음 한 구석에 쎄한 것이 있었다.

안하던 일을 하면 이상한 것이다.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혹시 했으나 역시 그랬다.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암밍아웃을 하였다.

이미 모든 검사를 다 마치고서 치료를 시작하는 시점에서였다.

위암에 신장에도 전이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결과였다.

나는 그날 저녁 식사 이후로 아직까지 배가 아프다.

위가 부은 듯 하다. 아마도 스트레스성이겠지만...

이렇게 나는 암환자 와이프가 되었다.

퇴직 후의 멋진 생활을 꿈꾸었으나 실상은 간병이 주가 될 것 같은 나의 삶이라니...

열심히는 살았는데 행운은 따라주지 않는다. 지독하다.


그리고 지난 주 신약으로 시작한다는 첫 항암 주사약이 외국에서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 주 미뤄지고

어제는 하루 종일 사전 검사와 채혈, 설명, 의사 면담을 하고

오늘은 아침부터 가서 무한 대기하다가 주사를 쉬다 맞다 쉬다 맞다 하고 있다.

남편이 아픈 것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집에서 아픈 역할은 주로 나의 몫이거나 어릴 때 아들의 몫이었다.

내가 사랑니를 뽑고 아파하고 있으면 그게 뭐가 아프냐고 놀려대고

내가 감기로 헤매고 있으면 정신 상태가 약해서 걸리는 거라고 하고

평소에 운동을 안해서 그렇다고 하고

몸에 좋은 것을 안먹어서 그렇다고 했었다.

그렇게 매일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등산을 가고

고기도 안먹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양도 많지않고

(그런데 술과 담배는 한다. 이게 더 문제인거 아닌가?)

타고난 건강체여서 코로나 19도 안걸렸다고 자랑하던 그 사람은 어디가고

늙고 아저씨 냄새가 물씬 나고 머리카락은 항암전인데도 이미 없고(원래부터 많지는 않았다만)

내 앞에 있는 사람은 꼭 10여년전의 아프지만 고집은 센 나의 외삼촌을 보는 듯한 모습이다.


어제 항암주사 맞기 전 저녁을 먹는데

나는 두부굴국에 부추전 부치고 간장에 졸인 닭봉졸임과 양파절임, 동치미를 준비했는데

아들이 나오더니 초밥을 주문시켰다고 했다.

항암하면 생음식을 못먹게 된다고 찾아보고 

입맛 나빠지기 전에 초밥을 먹이고 싶었나보다.

아빠랑 아들 모두 회와 초밥을 좋아한다.

모듬으로 잘 조리된 초밥을 가운데 두고 아버지와 아들이 덤덤하게 식사를 하는데

나는 차마 초밥을 먹지 못하겠더라.

실상 나는 초밥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두 사람이 먹기에 부족할까봐 눈을 피하기도 했다.

어렸을때부터 서로 사이가 긴밀하지는 않았던 두 사람이(이유는 분명하다)

암으로 인하여 서로를 생각하게 되는 드라마틱한 사건을 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그나마 음식을 나누면서 서로를 걱정하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랄까..

그리고 처음에는 다이어트 식단에서 출발한 나의 혼밥 요리 노하우가

이제는 건강식과 환자 식단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실력 발휘 기회를 맞이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오늘의 핵심이다. 

최강요리사를 겨루는 프로그램에 나가는 실력 발휘가 아니고 말이다.


이 힘든 이야기를 가급적 담담하게 써보고 있는 지금

내 앞의 TV에서는 어제 저녁 방송된 나의 최애 <최강야구>가 돌아가고 있고

(이 경기는 진짜 명승부였다. 투수전과 진심을 다히는 수비가 나온다. 나에게 온전한 기쁨을 준다. 이길때만.)

7회 응원타임에 하필 <Bravo My Life> 가 나온다. 울컥한다. 그 노래가 그렇다.

나도 남편도 아들 녀석도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너무도 큰 시련이다.


첫 항암 주사를 맞고 오는 남편을 위해 준비한 저녁은

버섯, 당근, 애호박, 닭가슴살 구이와 소고기 미역국 그리고 계란말이이다. 

단백질  섭취가 너무 적다고 지적받았단다.

매운 것과 생야채는 당분간 먹지 못한다.

브런치에 많이 있는 암에 대한 글을 읽을 여유 아직 없다.

학교 일 마무리만으로도 벅차고

내 배도 많이 아파서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을 회복하는 것을 꿈꾸는 것도 아직은 힘이 든다.


(두손 두발 다 들었다. 하루 종일 주사를 맞고 지하철타고 집에 왔다. 운동이 최고라면서

누가보면 독감예방주사 맞고온줄. 

운동보다 지금은 보호가 더 우선이다. 

그래도 어지럽고 속이 미식거리긴 하나보다.

국은 그나마 먹겠다해서 내일 아침용 감자국 끓이고 있다. 

세상에나 오늘도 센 척하며 이 추운 날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그런데 나는 왜 단백질 많다는 북엇국을 준비하는거냐. 두부와 달걀까지 넣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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