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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Dec 16. 2024

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07

99프로 폭망한 특강

오늘에서야 나는 두손 두발을 다들고 퇴직자로서의 기쁨을 누리기로 했다.

마지막 과학 행사 때문이다.

왜 과학자 초청 특강을 한다고 했을까나 후회막급이다.

과학을 좋아하지도 그리 전공할 것 같지도 않은 그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나의 허영심이었을 수 있겠다.

그리고 조금은 이런 특강이 도움이 되는 학생들이 있기를 조금은 소망했었을지도 모른다.

과학창의재단에서는 1년에 한번씩 과학자들과 학교를 연결하여 진로 특강의 기회를 제공한다.

아주 한참 전 목동지역에서의 과학고 진학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같은 행사를 진행했었던 경험이 있다.

그때 그들의 반짝거렸던 눈을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었나보다.

이곳은 목동이 아니고 과학고를 가겠다는 학생들도 거의 없는 말이다.

온전히 나의 판단 미스이다.


점심 시간 오늘의 행사 장소인 시청각실 청소에서부터 나는 조금은 지쳤을지도 모른다.

교사 연수도 하고 학생들 활동도 진행하는 그 곳이 너무 더러웠다.

교사가 3D 업종인 이유 중의 한 가지는 <더럽고 춥다>가 들어간다. 덥지는 않다. 요새는...

손님을 맞이하는 기본을 나는 청소라 생각한다.

내가 더러운 곳에 있는 것을 못견디는 것처럼

남들도 초대받은 곳이 더러우면 일단 대충해도 된다는 마음이 들게 된다.

집 청소도 안하고 여자 친구를 초대하지는 않는 것 아닐까?

나는 청소를 하다가 이미 마음이 지쳤다.

그 공간을 사용한 사람이 깨끗이 해놓는 것이 기본이다.

왜 그것 하나 못하는 것일까? 학생들이고 교사들이고 말이다.

아니다. 토요일 추웠던 인천 행사날부터 지친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모 대기업의 연구원이었으며 과학책도 저술한

오늘의 강사님 강의가 시작되었는데 나는 그 한 시간 내내 안절부절이었다.

째려보다가 근처를 배회하다가 쉿하고 입술에 대보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제스츄어는  모두 다 취해보았는데 별 소용이 없다.

세 반 아이들을 모아놓으니 군중의 힘을 믿는 법이다.

강의 내용에 대한 관심이 없어도 예의는 지켜줄 수 있지않나?

그리고 그것은 그 행사를 운영하는 나에게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특강이라고 학교를 방문해주는 것만으로도(물론 과학창의재단에서 강사비는 받는다만)

큰 일을 해주는 것인데 최소한의 경청의 예의를 지켜서 들어주면 안되는 것일까?

태블릿을 가져와서 다른 동영상을 보고, 이어폰을 끼고 대놓고 딴 짓을 하고,

옆 친구와 계속 속삭이고, 자는 학생이 그나마 상태가 좋아보이는

열심히 듣는 이쁜 학생들은 1/10이 채 안되는  이 암담한 현실에서 나는 절망감만 들었다.

내가 미쳤다. 이런 수준의 학생들에게 너무 수준 높은 특강을 준비했구나.

특강 내용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잘 들으면 다 알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들으려고 하지 않았을 뿐.  듣고 싶지 않았을 뿐.

나만 잘 들은 특강이 되었다.


나는 학교와 학생들에게 남아있던 많은 아쉬움과 사랑하는 마음을 오늘 날자로 모두 접었다.

이제 헤어질 준비가 완벽하게 다 되었을 확인한 6교시 특강이었다.

강사님에게 죄송한 마음은 오롯이 내 몫이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기말고사와 진학이 대부분 결정된 중학교 3학년 12월의 민낯이다.

내가 숨기고 싶었던, 그리고 끝까지 편들어주고 싶었던 중학생들의 현주소이다.

그것을 알고 있었는데도(마치 저 사진의 심하게 벌레먹은 것과 같은 상태라는 것을)

이런 특강 행사를 신청한 나의 잘못이고 자만감이었다.

내일 학교 가기가 두렵기만 하다.

통렬하게 괴롭다.

99프로 폭망한 나의 마지막 과학 행사가 이렇게 나버렸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일찍 학교에 갔고  

범위 쪽집게 복습 강의를 시작했

힘든 나를  잠시 웃음짓게 해준것은 역시 그들뿐이었으니 누가뭐래도 교사가 천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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