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 투어 서른번째
서울대학교와 그 주변에 대하여
추운 것을 이 세상에서 제일로 싫어하고(아픈 것을 더 싫어하나?)
치료를 받고는 있지만 그다지 쉽게 좋아지지 않는 티눈 이슈도 있고
갑작스럽기 그지없는(아직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남편의 항암 이슈도 있어서
그 좋아하는 산책을 하지 못한지 오래이다.
운동은 출퇴근시 지하철역 걷기와
학교에서 부지런하게 계단 올라다니기
집에서는 부지런하게 음식물과 쓰레기 분리수거장 다니기로 커버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는 공적인 학생 인솔 때문이지만 오랜만에 서울대학교와 그 주변 거리를 걷게 되었다.
그 오랜 교사 생활 중에 나라고 학교가 싫어지는 기간이 왜 없었겠는가?
딱히 이유는 없었지만 학생들이 밉고 수업이 하기 싫어지고 학교가기가 기쁘지 않을때쯤
나는 파견 근무라는 묘수를 이용했다.
처음에는 우수 과학교사 6개월 파견이었다.
뽑히면 6개월간 서울대학교 과학교육과 해당 전공 대학원생들과 함께
한 학기 강의도 듣고 공부도 같이하는 대학원생 모드로 생활하게 된다.
나는 박사과정 마지막 논문을 쓰는 기간 중에 파견을 나갔다.(이제는 학위 과정 중에는 못 나간다.)
서울대에서 듣고 싶었던 강의를 듣는 것도 좋았고
젊은 대학원생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것도 좋았고(주로 내가 밥을 샀다만)
몰입의 시간을 가지면서 내 논문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고
나의 지도교수님이 아닌 서울대 교수님에게 객관적으로 나의 논문 지적을 받고(도움이 많이 되었었다.)
그들 앞에서 미리 논문 디펜스 연습 겸 발표도 해보고
소속을 서울대학교라고 쓰고 학회 발표도 가보고
6개월의 기간이었지만 서울대 소속이어서 뿌듯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같이 파견 나갔던 6명의 선생님들과도 잘 맞아서
지질답사 필드도 같이 가고
관악산 정상에도 같이 올라가고(힘은 들었다.)
그 이후에 대만과 일본 화산 지형과 해식 지형 답사도 함께 갔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로를 지지하고 믿어주는 동료들이 되었었다.
그리고 그 6개월만에 나의 학교에 가기 싫은 질병은 깨끗하게 치료가 되었었다.
그 중에 최고는 서울대 학식을 먹고 같이 학교 한바퀴 산책을 하는 점심시간이었다.
학생 식당도 이곳을 갔다가 저곳을 갔다가 해보고
사범대와는 반대편인 농대쪽을 돌거나
어제 행사했던 체육관과 운동장쪽을 돌아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미술관도 구경하고(어제도 그 생각에 나는 미술관을 한 번 둘러보았는데 기념품 파는 곳이 없어졌더라. 서울대 마킹있는 기념품을 사서 선물로 주고 싶었는데 말이다.)
천문학과를 느닷없이 문 드드려 전파망원경도 보고 설명도 들었다.(그때 친절하게 대해준 박사과정생에게 감사한다. 너무 늦었지만 말이다.)
그 6개월 파견을 가는 첫날 3월 2일에 늦은 눈이 펑펑 내렸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서울대입구역에서 셔틀버스를 타려는 줄이 엄청 길었다.
그리고 눈에 푹푹 빠지면서 연구실을 열었을때의 그 기분도 생생하다.
어제 그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생각나게하는 눈이 온 관악을 걸었다.
두 번째 6개월 파견은 학습연구년때였다.
이번에는 교사 집단의 이기심과 승진 시스템에 울화가 터졌을때였다.
열심히 하는 사람 따로, 승진 점수를 받는 사람 따로인 그 이상한 시스템에 나는 복종하기가 싫었었다.
누가봐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승진 점수는 다른 사람이 받는다.
그리고 그 승진 점수를 받는 사람이 그나마 열심히 하거나
아니더라도 좋은 사람이었다면 아주 조금은 납득을 할 수 있었을텐데
세상일은 참으로 오묘하고 이상해서(영화속의 일들이 몽땅 다 허구는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공식적인 도피행각을 벌인 것이었다.
역시 6개월간 서울대 그 때 그 연구실이었다.
듣고 싶은 강의를 듣고
특강도 듣고(그때 처음으로 데이터 마이닝과 AI 관련 특강을 들었다. 막 부임한 스탠포드 출신의 공대교수님이었다. 다른 세계를 들여다본 것이었다.)
그 때도 나의 점심 산책은 이어져서
새로 만든 도서관과 건물들을 보러가고(어제도 새 건물이 하나 올라간 것을 보았다. 서울대는 돈이 많다.)
서울대학교 안의 식물도 관찰하고(생물다양성을 한 눈에 느낄 수 있을만큼 다양하다.)
낙성대 입구와 서울대 입구의 맛집도 여러 곳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두번째 파견 후 나는 미래학교로 학교를 옮겨서 행복한 마무리를 위한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두번의 파견 기간과 산책을 통해서 서울대학교는 나의 모교는 아니지만
내게는 모교 다음으로 익숙한 장소가 되었다.
어제 학생들과 정문앞으로 걸어가는 길에 본 일몰과 마침 지나가던 비행기가 너무도 이뻤다.
사진 찍기에 성공해서 다행이다.
아이들은 놀랐다.
<서울대로 비행기가 지나가요?>
그들은 서울 중심부에서만 살아서
머리위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 적이 없는 것은 누구나 놀라게 된다.
서울대 주변에 더 익숙하게 된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써보겠다.
늘상 그랬던것처럼 너무 긴 호흡의 글을 쓰는 것은 부담스럽다.
(어젯밤 먹고 싶었던 곱창구이는 곱창 대신 항정살로 바꾸어서 오늘 점심으로 먹었다.
콩나물, 양념한 부추, 양파, 당근, 애호박 올려서 함께 구워먹었다.
내 인생 혼밥인데 고기를 구워먹은 것은 처음이다. 아들은 데이트로, 남편은 아산에서 눈과 추위로 올라오지 못해서 다소 처량하기는 하였으나 맛은 있었다.
맛있으면 되었다.
그리고 꼼짝하지 않고 청소기를 돌리고 목욕을 하고 마지막으로 시험 문항을 검토하고 내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설이와 수싸움을 하고 최강야구 무한돌려보기 중이다.
이런 일상의 평온함이 얼마나 감사한것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내일 할 일이 있는 것이, 전투적으로 새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고된 삶이 아직은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