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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첫 여행을 준비하며 – 세 번째

봄은 언제나처럼 밀당 중.

by 태생적 오지라퍼

여행 첫날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이어지는 것을 보니 일정 조정이 필요하다.

나는 비가 오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해가 쨍쨍한 날을 좋아한다.

그런 날은 자동으로 에너지 풀충전의 날이 된다.

비가 오기 전의 흐리고 어두워지는 하늘도 싫어하고(무서워하는 것인가?)

스산해지고 추워지는 그 느낌도 싫어하고(추워지는 것은 무조건 싫다. 감기를 달고 산다.)

우산을 쓰고 다니는 번거로움도

비가 옷에 묻는 그 축축한 느낌도 싫어한다.

가지고 있던 에너지가 스물스물 방전되는 느낌이 들면서 마침내 늘어지게 된다.

그런 개인 역사를 지니고 있으므로(빅데이터 수준이다. 60여년을 그리 살았으니)

제주 여행 첫날 비가 온다는 예보는 결코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많은 여행을 한 스타일은 아니다.

여행을 너무나 가고 싶어하는 그런 스타일도 아니다.

코로나19 시절에 여행을 못가서 너무 힘들었다는

그런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그렇지만 하루동안 소소하게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이다.

비행기를 오래 타는 것도 힘들고(꼬리뼈를 다쳤다. 아주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여행하는 나라별 특이한 음식을 먹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는 않고(음식 고유의 향에 민감하다.)

사진은 꽃이나 건물, 풍경, 하늘 사진만 찍는다.

내 사진은 절대 찍지도 않고

찍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가급적 가보려 하는 곳은 그 지역의 과학관이나 미술관이다.


과학관은 전공이 과학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뜬금없이 미술관은 왜 가보는 것일까?

학창 시절 수, 우, 미, 양, 가 평가 중에서 수를 받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 교과가 미술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그리는 것은 어렵고 힘들지만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다른 결의 일이다.

나는 감상은 좋아라 한다.

그런데 아주 정교하게 그린 그림보다

상상을 자극할 수 있는 그런 스타일의 그림을

더 좋아라한다.

지나친 추상화는 또 아니다.

과학관은 체험 위주의 공간이 맞지만

미술관은 명상의 공간이다.

그렇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무한한 상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내 생각이다.

그리고 과학관과 미술관에서 내가 관심있게 보는 것 중 한가지는 건축물의 외관과 인테리어이다.

전반적으로 디자인과 공간 구성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런데 엔틱이나 빈티지 스타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Simple is Best>를 선호한다.


화가 박서보의 집, 문화예술공공수장고, 유동룡미술관이 내가 가보고자 하는 공간이다.

근처에 미술관들이 요기 조기 위치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몇년전 김창열 미술관과 현대미술관은 가봤다.)

캐리어는 공항에 맡기고

작은 손가방 하나만 들고

공간과 작품들을 천천이 구경하는 그 시간이

나의 퇴직 첫 날 일정으로 폼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의 과학관은 대부분 한번씩 방문했었고

자연사박물관만 안 가본 듯한데 위치를 고려해서

관람 여부를 결정하려 한다.

물론 비가 안온다면 한라수목원이나 절물휴양림의 식물 보러가기가 당첨 예정이다.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나에게는...

내 공직 생활 40년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앞으로 나의 이력서에는 1985.3.1. ~ 2025.2.28. 서울시교육청소속 과학교사라고 적게 된다.

이력서 작성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렇지만 어제와 다름없이 고양이 설이 궁뎅이 팡팡을 하면서 아침을 시작한다.

지금은 기분 좋은지 거실 한 복판에 발라당 누워있다.

아침 약을 먹고 습관적으로 제주 여행 유튜브를 틀어놓았다.

이제 본 건지 안본건지 구별이 안간다.

유튜브는 시청 이력이 왜 안남는 것이냐.

퇴직 기념 김치나 담글까 생각 중이다.

맛난 김장 김치가 다 떨어졌다.

봄맞이 봄동 겉절이가 어울리긴 하겠다.

그런데 늘 그랬던 것처럼 봄은

그리 쉽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봄인가 봄인데

언제나처럼 여러번 밀당의 기간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부터

인생 처음으로 정신없이 바쁘지 않을 3월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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