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누가 뭐래도 가정의 달이다.

어디에 있든지 가족은 영원하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공기와 바람 냄새가 다르다.

꽃과 잎의 반짝임과 색깔이 다르다.

계절의 여왕 5월이 온다.

학교에서의 5월은 퐁당퐁당 휴일로 한숨 돌리는 시기였다만

퇴직 후 5월은 휴일의 개념조차 분명치 않다.

사실 매일이 휴일이다.

5월 2일은 나의 결혼기념일(별다른 계획은 없다. 늘 그랬듯이)

5월 1일부터 6일까지 아들은 봄 휴가인 듯 하고(여자친구랑 헤어져서 딱히 계획이 있지는 않은 듯 하다.)

5월 토요일은 모두 나는 강의가 있고

현재로는 그 외의 약속은 2건이고

3주만에 돌아오는 남편의 항암이 있다.

제일 중요한 일은 아들 녀석의 독립일 수 있겠다.


아들 녀석의 독립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첫 번째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공익 근무를 다녀와서였다.

집에서 대학이 꽤 멀었고(그건 핑계거리였을테지만)

과대표를 하면서 바쁜 일상을 보냈었고

(녀석의 자취방은 거의 학생회실 수준이었던 듯하다.)

두 어번 가봤던 그 방은 거의 폭격 맞은 수준이었다.

옷이란 옷은 다 꺼내져있었고

냉장고에는 썩은 반찬들이 가득차 있었고

청소는 한 달에 한 번도 안한 듯 먼지 범벅이었다.

2년간 그렇게 혼자 살았었다. 아니다.

그 곳에서 잠만 잤다고 보는게 맞다.


두 번째 독립은 미국으로 2년간 어학연수 겸 교환학생을 갔던 때였다.

어바인에서의 첫 집은 인도계 미국인 아파트에 방하나를 쉐어하는 형태였고

(한번 들러보았는데 깨끗했다. 몇 년 사이에 천지개벽한 수준이었다.)

아파트 내에 수영장과 그 주변에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바비큐 공간이 있던 것이 기억에 남았었다.

샌디에이고에서는 아파트 관리 회사와 직접 계약한 약간의 공용공간이 포함된 곳이었다는데

나는 사진으로만 보았다.

그때도 제법 청소도 정리도 잘한 상태였다.

물론 나에게 보내준 사진에서만 그랬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 미국에서 돌아와서 같이 살게 된 후

그 녀석의 방은 다시 적당히 어지러져있고

옷가지와 물건들이 널부러져 있으며

방안의 야리꾸리한 냄새를 잡기 위한 방향제 냄새만 가득했다.

이번 독립을 계기로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그렇게 되기를 희망할 뿐.

그렇게 될 거라는 굳은 믿음은 아직은 없다.


세 번째 독립은 결혼이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했었다.

그러면 참 기쁜 마음으로 독립을 축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희망과는 달리 혼자 약간의 기숙사 같은 느낌의 독립을 선택했다.

(결혼이라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을 알고는 있다만 조금은 안된 마음이 든다.)

그 선택으로 얻는 것은 세대주의 위치와

월세 등 연말정산에서의 이익 그리고

식사와 청소 등에 있어서 약간의 불편함일 것이다.

그런 불편함이 오히려 아들 녀석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를

오히려 떨어져있어서 엄마의 소중함을 조금은

더 느껴보기를 기대해보지만

나보다 더 섭섭해할 것은 고양이 설이일 것이다.

자주 보러 온다고 하겠지만.

매일 퇴근 시간 즈음에는 아들 녀석 방 앞을 서성일 것이 분명하다.

아들 녀석도 나보다 고양이 설이가 더 보고싶을 것이다.


오늘. 시어머님은 스스로 결단을 내리시고 2인 1실의 요양원으로 입소하셨다.

요양원은 거동과 신체에 이상이 없으신 어르신들이

주변 환경을 고려해서 모여 계시는 실버타운이다.

그 과정을 마무리하고 나온 남편의 마음이나

집이 아닌 방으로 들어가신 어머님의 마음이나

오늘은 모두 복잡할 것이 틀림없다.

아들 녀석이 독립하는 그 날.

나도 비슷한 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디에 있든지 가족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냥 노는 날이 아니다.

부모님 드릴 꽃도 선물도 사고

어린이날 좋아하는 선물도 고르고

어디로 놀러갈 것인가

무엇을 함께 먹을것인가를 고민했던

그리고 가족행사에 쓰는 돈 걱정이 살짝 들던

그 시절이 그리 길지는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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