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만 많은 사람이 되다니.
어제 항암주사를 맞은 남편이 시어머님 호출로
약을 사러가겠다 한다. 그것도 멀리 수원이다.
물론 시어머님은 남편의 투병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신다만.
나는 서울 사는 누나나 동생에게 부탁하라 했지만
한없는 효자 남편은 자기가 해야 마음이 편하다면서
운전은 하나도 힘들지가 않다면서
퉁퉁 부은 발로 집을 나섰다.
말려봐도 듣지 않는다. 아니 들은적이 없다.
나는 모르겠다. 그러다가 정말 큰 일 나봐야 알게 되려나.
사랑하는 아들 얼굴만봐도 병의 심각성을 한 눈에 알수 있을듯 한데
시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마구 미워지기 시작한다.
어제 지인에게 선물 받은 대부도 찐빵 20여개를
도저히 다 먹을수는 없기에
오늘 명동 약속을 나오는 김에 학교에 살짝 가져다주었다.
나와 남편이 하나씩은 맛을 보았다.
시어머님집에서 나온 노란색 고무장갑 열 몇개도 과학실 청소때 쓰라고 같이 넘겼다.
마침 오늘 체육대회라 막 행사가 끝나고 출출했던 차에
선생님들이 잘 나누어 먹었다니 되었다.
그 주위에 봐두었던 수제 햄버거 집에 가서 야구부를 위한 햄버거 28일 배달 예약을 선결재했다.
자주먹는 맥*** 나 롯♡♡♡ 햄버거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기억에 남는 을지로 핫플 수제버거를 쏜다.
3학년 야구부 우승 기념 선물이고
또 사줄 계획은 전무하니
이왕 보내는 김에 감자튀김과 음료 포함된 세트메뉴로 결재했다.
나는 큰 손임에 틀림없다.
을지로에서 명동까지 걸으면서
또 추억팔이 갬성에 젖어든다.
명동성당에서 동생과 남편을 위한 기도를 올리고
(냉담자라 들어주실라나 모르겠다만)
그 맞은편 아버지와 부산친구분들과의 모임 장소였던
호텔 커피숍을 둘러보고(리모델링을 했더라.)
아버지의 일본행 선물 구입장소인 회현동 지하상가를 거쳐(거기서 선물을 사시고는 남대문시장 다락방 2층 식당에서 갈치조림을 드시곤 했다.)
지금은 신세계 백화점이다.
옛날 이 곳에는 미도파 백화점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뒤 기억은 없고(어디로 간것이냐?)
맞은편 한국은행 본점에서 이쁜 우리 엄마가 근무했었다는 전설만 들었었다.
(총재님 비서였다셨는데 이쁘긴 하셨나보다. 나는 왜 엄마를 닮지 않은거냐?)
몇번 와봤던 신세계 백화점 11층에
옥상 정원이 있다는 것을 방금 발견했다.
풀도 있고 인공 분수도 있고 하늘도 보인다.
그 한쪽 끝에 앉아서 이 글을 쓴다.
약속시간이 삼십분쯤 남아서 어정쩡한 시간 활용이다.
시간만 부자인 나의 일상이다.
(또 약속장소를 찾으러 돌다보니 새로 만들어진 뮤지엄이 있다.
하필 옛날 물건과 사진 전시중이다.
명동살롱이다. 이름도. 얼마만에 들어보는 살롱인가.
옛날 집에 있던 뒤주랑 재봉틀이랑 주판이랑
엄마 사진속의 옷이랑 그딴 것들을 보았다.
자꾸 옛날 레트로 감성팔이에 빠진다.
이제 그만 빠져나와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