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레시피 165

삼십오년만의 짧은 편지

by 태생적 오지라퍼

항암 중인 남편인 손발이 심하게 저려서(해당 증상 완화 약을 줬는데도 안먹더니)

음식을 해먹는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옷 단추 잠그는 것도 잘 못하고 운전도 힘든 상황이다. 물론 발톱은 거의다 빠졌다.)

웬만한 일을 집에서 재택 근무로 처리하는 중이다.

따라서 삼식이가 된 지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다.

나에게 엄청 미안해하고 있는데

내가 음식하는데는 스트레스가 별로 없으니 그러지 말라고 큰소리를 치기는 했다.

믿는 구석인 비밀의 장소 -반찬가게- 가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특히 음식이 잘 안넘어가는 상황이니 국만 맛나게 끓여주면 된다.

여기서 맛나게의 기준은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

무조건 슴슴하게이다.

짜거나 간이 쎄면 안된다.

컨디션이 나쁠때는 간이 세게 되면 쓴맛이 난다.

많이 아파본 나의 경험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아들 녀석과 나먹을 것을 조금 떠 놓고 남편것에는 물을 한 컵 정도 더 넣어준다.

그러면 괜찮다고 한다.

칭찬받은 음식은 콩나물국과 황태국이고

짜다고 한 음식은 반찬가게용 추어탕이다.

물을 더 넣어주었는데도 원래 식당들은 간이 간간한 편이었다.

한 번은 여름용 묵사발(묵 조금 잘라 넣고 갖은 야채 넣은 것)을 잘 먹었고

어제는 누룽지를 끓여주었더니 먹고 싶었었다고 해주었고

야채 종류를 다르게 하여 오일 살짝 뿌리고 구워주면 그것이 주 반찬이 된다. 물론 소금은 뿌리지 않는다.

항암과 함께 혈당 관리도 유의해야하니 더더욱 반찬 메뉴 결정이 쉽지만은 않다.


밥의 양은 그래도 조금 늘었다.

본인이 더 이상 살이 빠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굳건하게 한 관계로

밥 먹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먹는다.

달걀은 하루에 최소 두 개를 삶아서도 먹고 다양하게 제공하고

먹기 싫어하는 고기는 이리 저리 준비해서 딱 세점 만이라도 먹게 하고

먹는 것이 면역의 기본이라는 생각을 주지시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번 주부터 3주 정도 아르바이트 일정이 많다.

혼자 밥을 먹으면 제대로 먹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다.

나의 경험치에 따르면...

오늘 아침은 달걀과 감자 스프를 준비하고

점심은 미역국 예정이고

저녁은 방과 후 특강 갔다 오면서 끌리는 무언가를 사가지고 오려 한다.

둘 다 먹는 양이 작아서 외식을 나갔다가는 음식을

반 이상 남기고 올 확률이 백퍼이다.

하나를 포장해 와서 둘이 나누어 먹으면 딱이다.

이렇게 늙고 아픈 남편과의 삼식이 스타일의 식생활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잘 못먹고 아프고 마르니 더더욱 보는 것 만으로도 안타깝다만

아직 고집과 촌스런 생각 스타일은 남아서 가끔씩 버럭댄다.

그래도 그것이 괜찮다는, 아직은 힘이 있다는 증거이리라.

8시 아침 그리고 항암약 투여가 루틴이다.

준비하러 일어나보자.

사진은 삽십오년만에 받은 짧은 편지이다.

아침 일찍 아르바이트 나가면서 밥을 차려놓고 갔더니

식판에 붙어 있었다.

물론 손이 저려서 글씨체는 조금 바뀌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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