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율표가 주는 위압감
원소의 주기율표는 매번 교육과정을 개편할때마다 이슈가 되는 부분 중 한가지이다.
중학교에서 주기율표를 넣을 것인가 말것인가 부분을 가지고
교육과정 구성 연구진들의 논의가 있을때마다 거의 하루를 꼬박 넘겼던 것 같다.
화학 전공자들은 모두 주기율표를 중학교때 배우는 것을 희망한다.
그런데 사실 중고등학교에서 100여개의 주기율표 속 원소 모두가 수업에 필요한 것은 아니고
30여개만 잘 알면 된다만
그 30개를 이해하고 암기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원소, 원자, 분자, 이온의 개념을 아직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는데
주기율표를 떡하니 제시하는 것도 앞 뒤가 안맞는다.
따라서 나는 고1에 제시하는 것이 알맞다는 의견을 제시하곤 했다.
그래서 주기율표를 정규 수업 중에 가르친 기억은 없다. 내 목소리가 너무 컸었나?
그런데 올해부터 도입되는 2022 개정교육과정 중학교 교과서에는 2학년에 주기율표가 나온다.
주기율표가 의미하는 많은 것들이 모두 다 나오는 것은 아니다만
그리고 그 많은 것들을 다 알아야 할 것은 아니다만(화학 전공자만 알면 된다.)
과학 공부하는 내내 주기율표의 위압감은 대단하다.
나도 물론 그랬었다.
과학이라는 학문이 과학자들의 연구라는 것이 사실 주제가 무엇인가에 따라 차이점이 있지만
결국은 관련된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추출하고
(이 때 독창적이고 논리적인 배경이 있는 실험 과정을 동반해야 한다.)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비슷한 점들과 차이나는 점들을 구분하고
(구분을 위한 과학적 기준을 설정하는 과정이 연구의 신뢰성과 직결된다.)
데이터들의 경향성을 나타내거나 순위를 나타내보거나 집중도나 분산 정도를 살펴보는
다양한 분석 과정을 거치고 그 결과를 보여주게 된다.
대부분의 자연과학 연구가 질적 연구보다는 아직도 양적 연구를 선호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주기율표도 사실은 이런 기준 설정에 따른 배열과 분포에 있어서 경향성을 나타내 준
데이터 시각화 자료 중 하나라고 이해하면 된다.
예전에는 주기율표를 완벽하게 외워야만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주로 출제되었다면
이제는 주기율표는 주고(혹은 빈칸을 몇 개 주더라도)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풀이하는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 세련된 문항이며 이런 방식이
과학이 암기과목으로 전락하지 않게 만드는 비법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공부에서 기본적인 암기는 필수이다.
그것도 안하고서야 공부를 잘 할 수는 절대 없다.
가수들이 노래 가사를 외우고
배우들이 멋진 대사를 암기하고
스포츠 선수들이 경기 룰과 진행 방식을 숙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늘 방학 중임에도 즐거운 과학 공부를 하러 나온 녀석들은
고사리 손으로 주기율표를 직접 그려보았다.
프린트 한 주기율표를 그냥 쳐다보는 것과
내가 한번 직접 그려보는 것은 머릿속에 기억되는 정도가 다르다.
그리고 같은 주기와 같은 족에 속하는 원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도 살펴보았다.
다음 주에는 왜 그들이 같은 족과 주기에 놓이게 되었는지 그 배경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원자 모형도 그려보면 이해가 더 쉽고
요새는 그림 그리기가 태블릿을 활용하면 더욱 쉽다.
이를 반영하듯 Drawing Science 라는 연구 분야도 있다.
그래서 그 옛날 선생님들께서 그렇게 빽빽하게 여러번 글을 쓰는 것을 강조하셨을지도 모르겠다만
과학은 글이라기 보다는 그림을 혹은 그래프를 이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고
오늘 그 녀석들이 인생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그려본 주기율표는
책상 위에서 꽤 오랫동안 존재감을 나타내며 필요할 것이다.
기특한 녀석들에게 나는 주문을 받고서야 반죽을 밀고 도너츠를 튀겨주는
세운상가 유명 맛집 도너츠를 간식으로 제공했다.
이 도너츠가 꽈배기처럼 비비꼬이지않고 평평함을 유지하는 과학적인 이유도 설명해주면서 말이다.
가운데 구멍을 중심으로 균질성을 확보하는게 관건이다.
그것을 사러 뙤약볕에 세운상가를 걸었더니 머리는 어지럽고 더위를 먹은 것임에 틀림없는 몸 상태가 되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