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호랑이부족
회준은 요즘 같은 꿈을 자주 꾼다.
꿈속에서 그는 더 이상 지금의 자신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 한반도에 청동이 막 스며들기 시작하던 시절, 호기심 많은 소년 팔만이 된다.
그 시대는 신석기 말기에서 청동기 초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이미 농경은 삶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조와 수수는 땅에 뿌리기만 하면 계절을 따라 저절로 자라났고, 사람들은 강과 바다, 그리고 움집을 중심으로 살아갔다. 팔만이 속한 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체였고, 그의 아버지 도팔천은 제사장이자 이 부족의 족장이었다.
며칠 전, 도팔천은 막 추수한 조와 수수 두 섬을 내주고 이웃 형제 부족의 족장에게서 새로운 물건을 들여왔다. 둥글게 말아 만든 청동손잡이(구슬을 넣어 소리가 남)를 비파형 청동검의 슴베에 조립하여 사용하였다. 아직은 낯설고 희귀한 금속이었지만, 그 빛과 무게는 분명 이전과 달랐다. 이 청동검은 곧 족장의 새로운 권위이자 상징이 될 터였다.
이 시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두 가지였다. 굶기지 않는 식량, 그리고 식량을 지켜낼 수 있는 청동 무기.
부족장의 움막 안.
막내아들 팔만은 빗살무늬가 새겨진 토기에 담긴 조밥을 한 주먹 크게 떠먹고는 밖으로 뛰어나왔다. 오늘도 친구 칠만과 함께 물개 사냥을 떠나는 날이었다. 간석기를 단단한 장대 끝에 단단히 묶어 만든 사냥 도구를 어깨에 메고, 두 소년은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사냥은 청진에서 선봉까지,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긴 여정이었다. 이 일대는 도팔천 부족과 도칠천 부족이 함께 다스리는 혈연 공동체, 이른바 호랑이 족의 영역이었다. 백두산 너머에 사는 곰 부족의 족장 칠웅과 팔웅은 이들과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해마다 곰 부족은 귀한 마늘을 보내왔고, 호랑이 족은 추수감사절마다 조와 수수를 공물로 바쳤다.
물개 떼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사냥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물개들은 생각보다 훨씬 예민했고, 사람의 기척만 느껴도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준비해 온 조밥은 이미 바닥이 났고, 칠만의 배에서는 참을 수 없는 소리가 났다. 팔만은 해변을 뒤져 조개와 뿔소라를 주워 불에 익혀 먹었다. 짠내가 입안에 가득 퍼졌지만, 두 소년의 허기를 달래기엔 충분했다.
식사를 마친 뒤 잠시 쉬던 팔만은 뿔소라 껍데기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귀에 대자 바닷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파도가 껍질 속에 갇혀 있는 듯한 소리였다. 그는 조심스레 소라 끝을 조금 깨고 입을 대고 불어 보았다.
부우앙~
단순한 소리였지만 묘하게 마음을 끌었다. 조금 더 세게 불자, 배음이 걸렸던 소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더 세게 불자 소리는 한 번 꺾이며 더 높은음으로 울렸다. 뿌우앙~
배음이 걸리는 순간, 팔만은 이유 없이 웃음이 나왔다.
물개 한 마리 잡지 못한 사냥이었지만, 그날의 지구 태평양 해변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파도와 바람, 소라 껍데기 속 소리까지... 이 세계는 살아 있었고 칠만과 팔만 두 소년은 그 안에 있었다.
그리고 꿈속 어딘가에서, 회준은 이 모든 장면을 또렷이 느끼고 있었다. 잠을 자고 있는 회준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머그 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