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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Feb 06. 2024

열 나던 날. 나는 천국과 지옥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일요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우엑!' 하는 소리와 함께 둘째 입에서 음식물이 폭포수처럼 흘러 나왔다. 밥 먹다말고 신랑은 아이 씻기러 들어가고, 나는 뒷정리 하며 주말동안 먹은 음식을 되짚어본다.

'특별히 이상한게 없는데...체했나?'

어수선한 저녁시간 만큼 내 머리와 마음도 복잡하다. 다시 먹기 시작한 밥은 모래처럼 까끌거리며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 


기운 없어 보이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던 둘째 아이가 누워서   "엄마 더워요 힘들어요" 하면서 울먹거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머리를 짚어 보니 뜨끈하다.  열을 재니 38도가 넘어간다. 서둘러 해열제를 먹이고 미지근한 물과 손수건도 준비한다.
 '체한게 아니야? 그럼 독감인가? 오늘은 왜 일요일인거지....내일 신랑보고 월차 쓰라 할까?' 하고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해열제를 먹고 열이 떨어졌지만, 밤이 되자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쌕쌕거리면서 잠든 아이 몸을 닦이고 다리도 주물러준다.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축 처지는 기분이 낯선 아이는 불안해하며 내 손을 부적인 양 꼭 잡고 잠이 들었다.  새벽에 열 떨어진 걸 확인하고 자리에 누웠는데 바로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리다 조그만 소리에도 벌떡 일어나 상태를 확인한다. 오늘 밤은 무척 길거 같다.


3년 전 그날 오후.

 간식을 먹고 있었다. 고구마를 잘게 잘라 우유와 먹는 걸 보다 잠시 손을 씻으러 갔다.

쌔한 느낌.

빠르게 나와보니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갔나?' 하고 찾아보려는 찰나 쓰러진 아이를 봤다. 의식이 없어 보인다.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뺨을 때리고 어깨를 쳐봐도 그대로다. 혹시나 고구마가 걸렸나 해서 하인리히 법을 실시했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119에 신고 전화를 했다.


 "고구마 먹다 쓰러졌는데 아이가 의식이 없어요!!"다급하게 외쳤다. 아이 상태를 묻는 질문에 빠르게 대답하고 주소도 알려줬다. 구급 대원분들이 도착할 동안 전화로 안내되는 응급처치 하는데 반응이 없다. 처절하게 아이 이름을 불렀다. 이러다 잘못되는 건 아닌지 다시 못 보는 건 아닌지 초조하고 무서웠다. 살려만 준다면 진짜 진짜 다정한 엄마가 되겠다고 하늘에 약속했다. 아니,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고  했다. 할 수 있는 말은 아이 이름 뿐이었지만, 거기 모든 감정이 다 담겨 있었다. 자책, 미안함, 슬픔, 두려움....


울면 정신을 놓을거 같아서...눈물이 나오는 걸 꾹 참았다. 혼자 지옥 속을 돌아다닐 때, 구급 대원분들이 오셨다.  응급처치 해 주시고 꼼꼼히 살펴보시더니 목에 걸린 건 없다고 하셨다. 혹시나 해서 열을 쟀지만 체온도 정상이었다.

그때 "으앙~" 하고 울며 아이가 눈을 떴다.

'세상에!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조상님! 감사합니다. 저 진짜 착하게 살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알고 있는 모든 신들께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때, 구급 대원 한 분이 "염려되신다면 함께 응급실 가셔도 됩니다. 가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셨고, 바보 같은 나는 "괜찮습니다" 대답했다.


그때 응급실을 같이 갔어야 했는데.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떠나는 분들께 연신 허리 숙여 감사 인사 하고 아이를 살펴봤다. 다행이다 멀쩡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는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약간 감기 기운 있었고 약도 먹고 있었는데, 열이 날 정도는 아니었는데....

해열제를 먹이고 병원 갈 채비를 한다.

차 시동 거는데, 손이 덜덜덜 떨린다. 전진을 해야 하는데 후진을 하고 있다. 왼쪽으로 핸들을 돌려 나가야 하는데 반대로 나간다. 이래서는 주차장을 벗어나지 못하겠다. 주차장을 벗어나도 사고가 날게 분명하다. 잠시 고민하다 지인에게 전화로 부탁을 하니 흔쾌히 와 준다고 한다.

상황 설명하는 나에게 "근데 너 지금 너무 차분한데. 괜찮은 거 맞아?" 물어본다.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손과 쿵쾅거리는 마음과 달리 목소리와 머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차분하다. 지인과 통화 후 친정에 큰애를 부탁했고,  신랑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내일 월차 써야 한다 알려주었다. 퇴근하면서 큰애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지인의 차를 타고 A 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 입구에 있으니 반팔 입은 간호사분이 나오신다.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열이 나서 왔는데 자리가 있냐고 물으니 쌀쌀한 말투로
"자리 없어요 돌아가시던지 대기하시던지 선택하세요"
"안에서 대기하면 안 될까요? 밖이 많이 쌀쌀한데요"
"밖에서 기다리세요. 아니면 아까 구급차 타고 오셨어야지" 그녀는 11월의 차가운 공기보다 더한 냉기를 뿜으며 쌩하고 들어갔다. 덩그러니 남은 나와 아이는 다른 곳으로 가야 했다. B 병원으로 서둘러 갔다. 퇴근시간이라 차가 많이 막혔다. 해열제 덕분인지 아이의 열은 떨어진 거 같았다. 도착한 병원에는 다행히 야간진료하는 소아과가 있어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오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니
" 그건 열 경기입니다. "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 나왔다.

"이번이 몇 번 째입니까?"
".... 3번째입니다" 
선생님은 자세히 물어보셨고 뇌파 검사 해야 한다 하셨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마음속에는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말에 예약을 잡고 돌아와 애들을 챙기고 다음날 아이가 먹을 죽도 만들어뒀다. 엄마는 슬퍼할 겨를이 없다. 아니지. 일부러 더 바삐 움직였을지도. 그래야 걱정에 매몰될 일이 없을 테니까.

큰애는 친정에 잠시 맡겨두고, 신랑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낮잠을 재우지 않고 갔기에 바로 잠든 아이의 머리에 붙여진 기기들을 보니 착잡한 마음이 든다. 검사 결과 기다리는 시간은 억겁 같았다. 초조하고 불안하고 답답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은 점점 커져 괴물이 되었고, 삼켜지기 일보 직전 검사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다행이다. 별 이상 없단다. 선생님께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 하며 진료실을 나왔다고 자다 깬 아이의 울음소리 듣는 그 순간 안도감이 몰려왔다.
아이가 무사하다는 안도감.
내 탓이 아니라는 안도감.
지옥이었던 세상은 금방 천국으로 바꼈다. 그제야 움츠렸던 어깨 펴고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불안, 초조, 걱정을 큰 한숨에 담아 날려 보냈다. 자다 깨서 우는 아이를 달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우는 소리도 감사했다. 아무 이상 없다는 말이 이리 감사한 말인지 처음 느껴보는 하루였다.

다리가 아픈지 낑낑거리며 뒤척거린다. 주물러주니 다시 잠이 든다. 이마를 만져보니 열도 내린 거 같고, 손발도 따뜻하다.  이제 열이 떨어지나 보다. 별 이상 없이 무사히 이 밤을 넘길 수 있어 다행이다.
세상에 아프지 않고 크는 아이는 없겠지만, 내 아이는 안 아프고 크길 바라는 부모 심정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프고 난 뒤 아이는 성장하고, 함께 겪은 부모도 단단해지니,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꽃길만 걸을 수 없고, 아픔은 불쑥 찾아온다는 걸 받아들인다면 별일 없는 평범한 하루가 감사하게 느껴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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