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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Nov 28. 2021

더 헌트: 우리의 총구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영화 '더 헌트' 리뷰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 헌트. '사냥'. 꽤나 직접적인 제목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사냥’에 대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영화 속 인물들은 뛰어다니는 동물을 사냥할까? 아니면 하늘을 나는 새?


아니다. 그들은 인간을 사냥한다.


같은 마을에서 함께 웃으며 지냈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던 이웃 주민을 사냥한다. 그들에게 사냥당하는 사냥감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루카스’다. 아내와 이혼한 후 혼자 살고 있으며 함께 사냥을 즐기는 오래된 친구들과 같은 마을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유치원에서 근무하고 아이들을 정말 좋아한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루카스는 친한 친구이자 따뜻하고 정 많은 선생님이다. 물론 루카스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술자리에선 분위기에 맞춰 화통하게 술 한 병을 비울 줄도 알았으며 술 취한 친구를 집에 데려다 줄 줄도 아는 속 깊은 사람이다.      





루카스의 친한 친구의 딸인 ‘클라라’는 루카스가 근무하는 유치원에 다닌다. 클라라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루카스를 좋아한다. 클라라에게 루카스는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는, 마치 부모님과 같은 단순한 선생님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루카스에게 클라라가 다가가 가볍게 입을 맞춘다. 친근함의 표시였지만 클라라의 행동이 걱정된 루카스는 아이에게 '입을 맞추는 건 부모님과 하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그의 단호한 행동에 마음이 상한 클라라는 원장 선생님께 루카스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담아 거짓을 말한다. 루카스가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말이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굳은 신념을 가진 원장 선생님은 그 말을 모두 믿게 되고 삽시간에 거짓 소문이 온 마을에 퍼진다.






클라라와 루카스가 나눴던 대화들이 마음에 남는다. 클라라는 어른들에게 루카스가 자신에게 나쁜 짓을 했다고 말했다. 루카스를 향한 섭섭한 마음을 자신의 상상을 기반으로 무심히 뱉은 말이었지만 ‘애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클라라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어버렸다.





클라라는 곧바로 어른들에게 사실을 말한다. 하지만 이제 어른들에게 클라라의 외침은 들리지 않는다. 단지 루카스는 어린 클라라에게 나쁜 짓을 한 범죄자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아저씨가 저한테 나쁜 짓을 했대요.”

“너도 그렇게 믿니?”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



어른들의 생각은 줄곧 진실을 말하던 클라라의 생각까지 바꾸어 버렸다. 어린 클라라는 이제 정말 자신이 나쁜 일을 당한 것인지, 모든 것이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어른들의 잘못된 확신은 진실을 내뱉은 한 아이의 기억을, 그리고 유치원의 모든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어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며칠 전까지 함께 웃고 울었던 루카스를 범죄자로 만들어 버렸다. 루카스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들에 힘들어했고 그의 억울함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카스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클라라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이, 그가 신뢰했던 그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믿어주지 않음에 서글퍼했다.






(바닥 타일에 있는 선들을 보며)

“난이도가 높구나. 선이 얽히고설켜 있네.”

“저도 그 생각했어요.”


“안녕 클라라”

“안녕하세요”


“괜찮니? 이 선들을 어떻게 피할까?

“몰라요. 너무 많아요.”


“그러네. 이리 와”



바닥에 있는 선을 밟길 싫어하는 클라라를 루카스는 안아준다. 얽히고설켜 도무지 빈 공간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그 바닥을 루카스는 클라라와 함께 건너 준다. 


쌓이고 쌓여버린 오해로 인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꼈던 루카스는 스스로 다짐한 듯 보였다. 내 옆에 서 있는 누군가가 복잡하고 막막한 길 한복판에 서 있을 때 같이 동행해 주자고, 길 건너편에서 그 사람을 비난하며 가만히 쳐다보기보다는 먼저 나서서 손을 내밀어 주자고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우리 모두에겐 각자 하나 이상의 총이 있다고 생각했다. 총을 언제 들 것인지, 누구에게 총구를 겨눌 것인지, 언제 방아쇠를 당길 것인지는 모두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영화 속 마을 사람들의 총은 꺼낼 필요가 없는 총이었고 방아쇠를 당길 필요도 없는 총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된 사냥감에게 총구를 겨눴으며 그들의 사격으로 인해 죄 없는 루카스는 평생 동안 지워지지 않는 총알 자국을 가슴에 새긴 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제 루카스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총구는 정확한 사냥감을 겨누고 있었는가’,

‘당신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마을 사람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하고 말이다.


그의 질문에 선뜻 ‘맞다’고 대답하기 힘든 현실에 괜히 죄송스러워졌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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