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랑크톤 Oct 07. 2024

홀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5(팜플로나-푸엔테라레이나


팜플로나-푸엔테라레이나까지 24km(2024.8.1.)





 일어나서 준비를 마치고 조식으로 비치된 우유, 시리얼, 커피를 먹고 나왔다.

최고의 숙소, 안녕!




팜플로나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가는 것 역시 한참을 걸어야 했다. 

가로등이 비춰주는 새벽의 대도시.




오늘은 브라탑만 입었다.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옷차림. 나는 지극히 평범한 체형인데도 늘 내 몸을 부정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곤 했다. 남을 함부로 평가하는 것이 곧 무례함인 이곳에서 나는 유롭다.




 큰 Marco를 다시 만났다. 영어가 익숙지 않은 그와 손짓 발짓을 하며 함께 길을 찾았다. 그 와중 내가 까미노닌자 앱을 보며 안내한 곳은 잘못된 방향이었고(길치가 또..) 결국 그의 감을 빌려 따라 걸었다.

앞장서는 큰 Marco.                                




 각자의 페이스대로 걷다 보니 서서히 멀어졌고,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그는 완전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시를 빠져나갈 때쯤 해가 뜨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만난 아기자기 귀여운 마을.
이 시간 때쯤이 가장 걷기 좋았다. 사진만 봐도 그때의 조.온.습이 떠오른다.
슬슬 더워지는 중.
내 앞을 지나가는 달팽이.
왼편에 보이는 구릉을 넘어야 한다.




 오늘의 루트는 순례자들에게 해바라기 밭으로 유명하다.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를 감상할 수 있다.

사람들이 해바라기에 표정, 글씨 등을 그려놓곤 한다.(귀엽)




 Laura를 다시 만났다. 그는 날씨가 습하다며 땀을 많이 흘렸다.(참고로 한국인인 나에겐 선녀 같은 날씨였다.) Laura는 처음 함께 걸었을 때에 비해서 내가 많이 빨라졌다고 했다. 나는 이제 까미노에 완전히 적응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You look delicate, but you are very strong."


 나는 어떤 면에서는 예민할 정도로 섬세한데, 동시에 굉장히 강하고 센 부분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해왔다. 때로는 두 기질이 너무나 정반대라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만난 지 며칠 밖에 안된 외국인이 나를 꿰뚫어 봤다. 내 안의 강인함을 알아봐 준 다정한 시선에 왜인지 모를만큼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Laura는 Santa Maria de Eunate 성당을 들렀다 푸엔테라레이나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




 페이스가 빨라진 내가 Laura를 앞섰다. 다음에 도착한 마을의 작은 슈퍼에서 바나나, 뺑오쇼콜라, 카페콘레체를 사서 길가에 앉았다. 열댓 명의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있었다.

이날 먹었던 아침의 맛이 유독 떠오른다. 막 구워 따끈한 뺑오쇼콜라와 달달한 커피.




 한창 먹고 있는데 내 뒤에 있던 성당 문이 열렸다. 뒤이어 도착한 Laura는 성당을 구경하겠다고 했다. 나 역시 식사를 마무리한 뒤 들어가 구경했다.

작고 고요했던 성당.




 물을 채우고 출발하려다가 땀을 많이 흘리던 Laura가 생각났다. 나는 원체 땀쟁이라 링티를 열 개 정도 챙겨왔었는데, 그중 두 개를 주고 성분표에 영 해석을 달아 왓츠앱 메세지로 보내주었다. Laura는 고마워하며 잘 먹겠다고 했다.


 다시 열심히 걸어 구릉을 올랐다.

아래를 내려다 본 모습.




 용서의 언덕이 나타났다. 중세 시대 순례자들은 여기를 오르는 고행을 통해 죄를 용서받는다고 생각했다. 철제 구조물은 순례자들의 고난과 희망을 상징한다. 나는 그 앞에 앉아 감상하며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잠시 후 Laura가 나타났다.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함께 셀카도 찍었다. 구조물에 적힌 스페인어를 읽을 수 없었는데 그가 해석해 주었다.(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는 서로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바람의 길과 별의 길이 만나는 곳"이라고 적혀있다고 했다. 나는 너무 낭만적인 문장이라며 감탄했다.

"바람의 길과 별의 길이 만나는 곳."




 Larua와 함께 내려와 걷다가 멋진 바를 발견했다. 그는 맥주를, 나는 오렌지주스를 시켰다. 그리고 Arnd가 들어와 Laura에게 인사를 한 뒤 내 옆에 앉았다. 둘은 숙소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Arnd와 나.




 Arnd는 독일에서 온 할아버지인데 집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했다.(;;) 순례길에는 정말 미친 사람들(존경의 의미)이 많다. 그는 내게 자신의 여자친구, 딸 자랑을 했고 나는 유교 정신으로 경청했다. 또 그는 특이한 수염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은행을 못 턴다고 했다.(ㅎㅎㅎ) 독일인이라 그런지 표정도 별로 없고 말투도 평이했는데, 그 상태로 웃긴 말을 하니까 몇 배로 웃겼다.


 Laura와 Arnd에게 먼저 가보겠다고 한 뒤 길을 나섰다. 바에서 시간을 지체한 사이 햇빛 뜨거워져 있었다.

작열하는 한낮의 햇빛.
지글지글 구워지는 중.




 더위에 나가떨어질 때쯤 가정집 앞의 레모네이드 부스를 발견했다. 아이가 용돈벌이를 하는 것 같았다. 그늘에 앉아 얼음이 든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들이켜자 살 것 같았다.




더운 와중에도 중간중간 예쁜 곳들은 사진을 남겼다.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본 포도나무. 앞으로 포도는 질릴 때까지 본다.

옥수수나무도 있었다.




 오전에 출발할 때만 해도 체력이 남아돌아서 다음 마을인 마네루까지 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가장 더울 시간에 오래 걷는 바람에 진이 다 빠져버렸다. 푸엔테라레이나 공립 알베르게 앞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 이곳에서 멈추기로 결정했다.


 이때 마네루로 넘어갔으면 디너파티는 경험하지 못했을 텐데. 연이 이끄는 곳에서는 재미있는 일들이 펼쳐진다.








Albergue Padres Reparadores(푸엔테라레이나 공립 알베르게)


숙박 9유로



https://maps.app.goo.gl/Kn7t5VR28JZxunfJ8




 씻고 빨래를 마친 뒤 팜플로나에서 사 온 불닭볶음면을 들고 주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큰 Marco와 작은 Marco가 있었다. 작은 Marco는 이탈리아의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영어가 유창해서 나와의 대화에 큰 무리가 없었고, 큰 Marco를 위해 우리 사이에서 통역도 해주었다.


 두 Marco와 한창을 대화하며 맥주도 한 캔 얻어마셨다. 숙소에는 아는 얼굴이 꽤 있었다. 잠시 후 Laura도 도착했고 둘째 날 만났던 프랑스인 Immanuel도 있었다.


 인덕션에 물을 올려놓고 끓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작은 Marco가 다가오더니 당장 불을 끄라고 했다. 뭔 소리여..? 하는 내게 이탈리안들이 저녁 식사를 대접해 주겠다고 했다. 그날따라 숙소에 이탈리안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그들끼리 마음이 맞아 오늘 밤 파티를 열기로 했다는 것이다. 인싸보다는 아싸로 지내는 게 편한 나지만 살면서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겠나 싶어 좋다고 대답했다.

결국 조리되지 못한 내 불닭볶음면.




 저녁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마트를 다녀와야 했다. Laura, 나, 미국인인 Christopher, Mike. 이렇게 네 명이 장을 보러 다녀오기로 했다. 미국인 두 명은 신부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가는 길에 성당을 들리자고 제안했다.

Laura가 찍어준 우리. 가장 좋아하는 사진들 중 하나.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Laura에게 아이들이 "Mom is taking a photo."라며 장난을 쳤다. 우리는 쿡쿡 웃다가 누군가가 아빠는 Immanuel이라고 하는 바람에 또 한참을 깔깔거렸다.


 마트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저녁 재료뿐 아니라 내일 아침 나눠먹을 요거트와 과일도 샀다. Laura가 이곳의 견과류는 맛있고 헬씨하다며 내게 캐슈넛 한 봉지를 사서 반 나누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그러자고 했다. 솔티한 것과 솔티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뭐로 하겠냐고 해서 당연히 솔티를 골랐더니(짠 것 최고) Laura도 역시 짠 게 맛있다며 좋아했다. 장 본 비용은 우리 네 명이 카드로 분할 계산을 했고 1인당 11.7유로였다. 스페인은 식재료가 참 저렴하다.

멋쟁이 Laura. 네 원피스가 너무 멋져!라고 했더니 기뻐했다.




 숙소로 돌아와 식재료를 정리했다. Laura는 캐슈넛을 가 갖고 있다가 자기 전에 나누자고 했다.(그리고 이 캐슈넛은 가 며칠을 들고 다니게 된다.ㅎㅎ) 이탈리안들을 도와주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Marco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엇을 도와줄까 물었더니 플레이트 준비를 부탁한다고 했다. 20인분의 접시와 컵, 숟가락과 포크를 설거지해서 물기를 닦아놓았다. 필요하면 나를 다시 부르라고 한 뒤 2층으로 올라가 침대에서 잠시 쉬었다. 그러다 설핏 잠이 들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Mike가 올라와 저녁이 준비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내려가 보니 멋진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내 자리는 작은 Marco의 맞은편에 준비되어 있었다.

리얼 이탈리안 까르보나라.




 작은 Marco가 요리해 준 까르보나라는 정말 맛있었다. 간도 딱 맞고 감칠맛이 돌았다. 마침 맞은 편에 셰프님이 앉아있었으니, 아낌없는 칭찬을 했다. 그는 양이 많아 쉽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무척 뿌듯해했다. 나는 레서피를 물어봤고 그는 차근차근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다.(한국에 돌아와 관찰레를 베이컨과 오리고기로만 바꿔서 똑같이 해먹었는데 제법 비슷한 맛이 났다.)


 두 번째 디쉬는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오일을 넣은 참치 샐러드였다. 상큼함이 입을 씻어주었다. 역시 맛있게 먹고 오늘의 요리사들께 감사 인사를 했다. 맥주와 와인도 넉넉해서 서로 잔에 따라주며 식사와 곁들였다. 누군가가 아름다운 밤이라며 잔을 들면 다 같이 일어나 건배를 하며 특별한 오늘을 기념했다.




 밤이 무르익고 작은 Marco와 나는 다양한 방면의 이야기를 나눴다. 약 두 시간에 걸친 대화였기에 전부 기억할 순 없지만 뇌리에 남는 대화가 있었다.


 이탈리아를 방문한 적도,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지인도 없는 나는 이탈리아에 대한 피상적인 이미지 만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패션이 유명하고 바다가 멋진, 파스타와 커피가 맛있는 아름답고 열정적인 나라. 그러나 오늘 Marco와의 대화를 통해 진짜 이탈리아에 대해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작은 Marco는 이탈리아 남부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그는 부단한 노력 끝에 이탈리아 북부로 올라가 교사가 되었다. 남부는 발전에서 도태되어 있기 때문에, 부유한 북부와 차이가 크다고 했다. 젊은이들은 직업을 찾기 위해 윗 지방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으며, 자신도 그런 케이스였다고. 고향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이탈리아는 지역 갈등도 심하다. 남부 사람들은 따뜻하고 정감 있지만(본인처럼) 북부 사람들은 차갑고 정이 없는 편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과 많은 점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한국도 이탈리아처럼 아래 위로 길쭉한 모양새다.(훨씬 작긴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와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고 지방과의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있다. 또 서울과 남부 지방인들의 이미지가 대조되는 것도 비슷했다. 나도 우리나라에서 유사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 그에게 설명해 주었고, 우리의 대화 주제는 캐피탈리즘과 양극화까지 확장됐다. 지구 반대편에서 처음 본 외국인과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정말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밤 열 한시가 넘도록 파티는 계속됐다. 사람들과 맥주를 들고 뒤뜰로 나가 웃고 떠들었다. 2층에서 누군가가 이제 그만하고 자라고 소리를 지르기 전까지는..(늦게까지 시끄럽게 해서 정말 미안했다.^^;)


 사람들과 굿나잇 인사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가던 참이었다. 계단에서 내려오는 Immanuel과 마주쳤다. 그는 그다지 목적 없어 보이는 말들을 건네며 나를 붙들었다. 얼른 올라가 씻고 쉬고 싶던 나는 의아했지만 적당히 호응을 해주었다. 그는 이야기를 끝낸 후 잘 자라며 내게 비쥬를 했는데, 두 번째 비쥬에서 자신의 입술을 내 볼에 갖다 댔다.("쪽"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입을 맞췄다.) 순간 너무 놀라고 불쾌했지만 화를 내는 것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찝찝한 기분을 안고 침대로 돌아가자마자 핸드폰으로 검색을 했다. 비쥬는 정말 가까운 사이에서는 이런 방식도 어쩌면 가능할 수 있지만, 정석은 볼에 입술이 닿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너였다. 문화를 잘 모르는 아시안들에게 성희롱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적혀있었다.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고, 다음 날 그를 마주치면 따끔히 말해야겠다고 결심하며 일단은 잠에 들었다.











 순례길이 인생 같다는 생각을 몇 차례 했지만 이 날 만큼 실감 났던 적이 없다.


 삼십 명의 인간을 만난다면 그중 한 명은 내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이상한 인간이다. 그 인간은 강렬하고 자극적이어서 한 번의 등장만으로도 나를 뒤흔들곤 한다. 하지만 보통의, 일상적인 내 삶은 나머지 스물아홉 명의 좋은 인간들에게 두텁게 둘러싸여 있다. 그러한 행운이 주는 행복은 너무나 은은해서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어쩌다 나타난 단 한 명에 대하여 과대 해석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면, 실제보다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사실 내 주변에는 나를 아끼고 지지하는 선한 사람들이 몇십 배로 많은데 말이다. 지금은 이렇게 고상하게 적어내려가지만, 당일을 포함하여 이삼일 정도는 기분 더러웠던 경험에 대해 생각하는데 몰두했었다. 천천히 마음과 생각을 갈무리하며 내린 결론이다.


 길고 긴 하루를 수많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다. Laura, Arnd, Mike, Christopher, 두 Marco, 그리고 이름 모를 친절했던 사람들... 우연과 인연이 만들어낸 다시 없을 특별하고 즐거웠던 경험. 내 안에 담긴 이날의 추억에서 지금까지도 은은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홀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4(주비리-팜플로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