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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크톤 Nov 29. 2024

홀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8(몬하르딘마을-비아나)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비아나(30.3km)(2024.8.4.)




 일어나자마자 테라스로 나가 아직 별들이 보이는 하늘을 감상했다.




 준비를 마친 후 1층으로 내려가 조식을 먹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신청하지 않았는지 내 몫의 음식만이 차려져 있었다. 단비 같은 아침 식사였지만 아직도 단백질이 고팠다.




 서서히 물러나는 어둠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천천히 출발하는 순례자들도 있지만, 나는 일찍 나오는 것 하나만큼은 꼭 지켰다. 캄캄할 때 시작해야 해돋이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을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색이 계속 달라진다.




파스텔로 재현해 보고 싶다.




 유독 풍경 사진이 많다. 그날 적은 메모에도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적혀있다.

아름다운 자연은 항상 나를 행복하게 한다.







 마을을 만났다. 바에서 이른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을 초입에는 귀여운 아기 염소가 있었다.
점심 식사를 위해 들른 바.
이곳에 앉아서 먹었다.




 독일에서부터 걸어왔다던 Arnd와 마주쳤다. 그와 동행하고 있던 Holger와도 인사를 나눴다. 둘은 생장보다 훨씬 이전부터 만나 함께 걸었다고 했다. 저번에 나를 만났을 때는 잠시 떨어져 있었던 것이라고. 우리는 함께 앉아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하였을 때 날씨는 많이 더워져 있었다. 

저 앞에 보이는 Arnd와 Holger.




 그늘 없는 길을 한시간 가량 걸었더니 정말 더웠다. 산솔에 도착해서 작은 마켓에서 납작 복숭아 두 개와 거의 다 떨어져 필요했던 치약을 샀다.(그 마켓에서는 앞사람들의 구매가 끝나기를 20분 정도 기다렸다. 느린 일 처리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는데, 그곳에서 짜증 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한국인인 나뿐이었다.^^;;)


 마켓 앞에서 짐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한국인 E님을 만났다. 얼마 만에 듣는 한국어인지. 그는 한 일본인과 있었고 발에 물집이 심해서 버스를 타러 간다고 했다. 서로의 건투를 빌며 헤어졌다.


 산솔 바로 옆에 있는 토레스 델 리오에서 멈출지 비아나까지 갈지 고민이 됐다. 아직은 체력이 남아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발을 떼었다. 토레스 델 리오를 나오는 길목에서 중국인 Star를 마주쳤다.(정말로 이름이 Star다.. 중국인들은 자기들 마음 내키는 대로(?) 영어 이름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진짜였다.) 그는 캐나다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대학생이었기에 영어가 굉장히 능통했다. 나는 비아나까지, 그는 로그로뇨까지가 목표였다. 내 목적지까지 같이 걷기로 했다. 성격이 정말 밝고 활기차다고 느꼈는데, 역시나 MBTI가 ENFP였다.(중국에서도 MBTI가 인기라고 한다.)


 그와 세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대화하며 걸었다. 같은 동북아시아인으로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니 대화가 정말 재미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서로가 불교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불교 중에서도 어떤 불교를 믿는지를 내게 물었는데, 나는 한국의 불교가 실제로 그렇게 세분화되어 있는지도 잘 모르거니와 그만큼 깊이 있게 불교에 대해 공부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불교 철학으로부터 각자가 삶을 대하는 가치관에 대해서도 간단하게나마 이야기를 나눴다. 서양 문화권 사람들은 내가 부디스트라고 하면 그저 신기해하거나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데서 그치곤 했는데, 불교문화에 몸담고 있는 동양권 외국인과의 대화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들을 발견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Star는 한국의 연예인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서울에서 일하면 연예인을 자주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하며 그들은 프라이빗하게 움직이고 특정 동네에 있기 때문에 같은 서울에 있더라도 볼 기회가 많지 않다고 했다. 기형적인 연예계 수익구조와 팬 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는데, 중국도 한국과 비슷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쥐똥만 한 돈을 버는 평범한 인간들인 우리는 그 불합리함에 대해 함께 격분하기도 했다.


 내가 마라탕/훠궈에 연태고량주 곁들이는 걸 좋아한다고 하자 그는 깜짝 놀라며 신기해했다. 한국에서는 너희 음식들이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편이라고 말해주었다. 또 언젠가 장가계를 가보고 싶다고 하자 너 중국에 대해 아는 게 정말 많구나 라며 좋아했다. 서로의 말로 "사과는 달다."라는 문장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 아이디어는 그가 낸 것이었는데, 안녕하세요 같은 말은 너무 뻔하다는 것이었다. 다음에 한국인을 만나면 사과는 달다고 말해 깜짝 놀래켜 주겠다고 해서 웃었다.(안타깝게도 나는 중국어로 사과는 달다가 뭔지 기억나지 않는다.. 성조가 너무 어려웠다.) 


 애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는데, Star는 함께 유학하고 있는 외국인 여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나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물어봐서 대답해 주었다. 같은 중국인이었지만 첫날 만났던 Tumaokai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아무래도 외국에 나와 공부하는 친구라 그런지 사고가 훨씬 개방적이고 유연한 편인 것 같았다.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교환하고 맞팔로우를 했다. 중국에서는 인스타그램을 쓰지 못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뭐라 뭐라 대답을 해주었는데 기억은 잘 안 난다. Star와는 지금도 서로의 스토리를 구경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그와 대화하며 나의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어려운 말은 통역기의 도움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편안하게 말할 수 있었다. 장장 세 시간을 영어로만 소통하며 걷다니. 한국에서 영어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고 스트레스받던 내가 불쌍해졌다.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말이다.


 Star와 함께 걸은 동안엔 찍은 사진이 없다. 대화하며 걷는데 집중하기도 했고, 점점 더위가 심해져서 나중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지막 한 20분은 영어가 잘 안 들려서 재차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해야 할 정도였다. 너무 힘들다 보니 소통을 하는데 쓸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비아나에 먼저 도착했고, 한 마을 더 가는 Star와는 작별 인사를 나눴다. 너와 함께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인간은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욱 강해지는 것 같다.








albergue izar


숙박+조식 15유로


https://maps.app.goo.gl/skaaKo6tGMHvY6xw6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가까운 알베르게로 직행했다. 더위에 지쳐 뭔가를 더 찾아보고 말고 할 여력이 없었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땀 범벅인 몸을 씻어내고 빨래를 했다. 발바닥이 불나듯 아파서 조금 절뚝였다. 방에는 나와 벨지안 할머니 둘뿐이었다. 그분은 차분한 성격에 필요한 말만 하시는 편이어서 조용하고 좋았다. 




 어제부터 간절하던 단백질을 사냥하러 나섰다. 구글 맵으로 찾아본 식당에 갔으나 역시나 애매한 시간이라 거절당했다. 식사가 되는 곳을 찾다가 이곳을 발견했다.




 친절한 남자 사장님이 순례자 식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앉아 주문을 했다. 순례자 식사를 사 먹은 것은 처음이었는데 전식, 본식, 후식을 각각 몇 가지 선택지 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전식으로는 참치샐러드. 고된 하루였으니 맥주도 한잔했다.
본식은 돼지고기를 골랐다.
제로 콜라도 마셨다.
후식은 푸딩.




 이제야 필요한 영양소가 채워진 느낌이 들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든든하게 식사를 하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30키로를 넘게 걸었다는 뿌듯함도 한몫을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기온은 44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진이 쏙 빠질 만도 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4만 보가 넘었다. 순례길을 시작한 이래 가장 오래 걸은 날이었다.




그러던 중 Laura에게서 메세지가 도착했다.




 Laura도 우리가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고 내게 작별 인사를 남긴 것이다. 다정한 한 줄 한 줄에 울컥했다. 나 또한 다시 볼 수 있을지 몰라 꾹 참았던 마음을 정성스레 담아 답장을 남겼다.













 체력이 떨어지니 자꾸만 남은 날을 헤아리게 됐다. 얼른 순례길을 마치고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권태가 그립기까지 했다.


 일상의 나는 항상 어디론가 떠날 궁리를 한다. 비행기표를 끊은 순간부터 그날 만을 고대한다. 여행 계획표를 만들고 낯선 곳에서의 내 모습을 그리며 설레어한다. 그렇게 기대하던 여행을 온 지금, 또다시 이것이 끝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일상에서는 떠날 생각, 여행을 가서는 집에 갈 생각. 


 법륜스님 말씀을 통해 알게 된 명언이 있다. "과거에 사는 자는 우울하고, 미래에 사는 자는 불안하다." 노자가 한 말이다. 나는 주로 미래에 사는 자다. 학교를 떠나 여행을 가면 행복할 거야. 본가를 떠나 독립을 하면 행복할 거야. 직업을 바꾸면, 사는 지역을 바꾸면, 사는 나라를 바꾸고 나면 행복할 거야.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의 조건이 달린 행복을 좇는다.

 또는 미래에 올 불행 때문에 불안하다. 아빠마저 큰 병에 걸리시면 어떡하지. 내 동생은 영영 저렇게 살지도 몰라. 그럼 나는 또다시 엄마 때처럼 살림 밑천이 될 거야. 현실의 나에겐 아무 일도 없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혹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미리 걱정하느라 현재를 즐기지 못한다.


 행복을 위해서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살아야 한다. 지금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랑스럽고 소소한 것들을 온전히 즐기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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