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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사삼공삼 Apr 13. 2021

다짐

어느 곳이든 신입이 저지르는 사고가 곱게 보일 리는 없겠지만, 병원은 조금 더 엄격하다. 다들 추측하다시피 작은 실수에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인데, 가끔은 정도를 넘어선 엄격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말 한 마디, 차가운 눈짓 한 번, 분노에 찬 한숨과 함께 쏟아지는 비난은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사람이 감당할 것이 아니다. ‘실수가 치명적인 곳’이라는 미명 하에, 실수를 수습해야 하는 사람들은 가끔 피드백을 가장한 폭력을 휘두른다.


병동 간호사는 4주간의 프리셉터 교육을 받는다. 2주씩 나누어 두 명의 프리셉터 선생님께 1:1 밀착 교육을 받는다. 프리셉터의 3교대 근무 스케줄을 똑같이 따라하며, 퇴근 후에는 주어진 숙제까지 해 가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4주만에 모든 일이 전부 베테랑처럼 익숙해질 리는 없다. 한 병동에서 보게 되는 수술은 적어도 4-5가지이고, 각 수술에 대한 검사도 다를 뿐더러, 환자의 상태에 따라 챙겨야 할 것도 조금씩 다르다. 적어도 석 달 정도는 지나야 어느 정도 식견이 생기고, 오버타임(원래 퇴근해야 하는 교대 근무 시간보다 늦게 퇴근하는 일)도 줄어든다.


프리셉터는 졸업했지만 아직은 병아리에 가까운 이 신규 간호사가 일을 할 때는, 같은 듀티에 일하는 다른 간호사들의 신경이 곤두선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환자 상태는 간호사를 가려서 악화돠지 않으니, 마침 그 날 뒤집어진 환자가 신규 간호사 담당 환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정규 근무에 익숙해질까 말까 하는 기로에 서 있는 신규 간호사가 응급상황을 문제없이 쳐 낼 리는 없다. 이렇게 신규 간호사의 환자는 이를 테면 ‘모두의 환자’ 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날은 데이 근무였다. 새벽 5시 반부터 시작해 오후 6시까지 이어지는 대장정. 아침나절에는 담당 환자 대부분을 이런 저런 검사를 보내거나, 수술을 보낸다. 이미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환자라면 통증을 조절할 수 있도록 진통제를 주면서 알찬 식사와 가벼운 걷기 운동, 심호흡 운동을 격려한다. 독립한 지 이제 두 달이 막 되어가는 날 즈음이었던가, 오후 2시쯤 나는 검사실에서 CAG(Coronary angiography, 관상동맥조영술)를 하고 온 환자를 다시 병실로 받고 있었다. 독립 후 첫번째 CAG Return(CAG 검사를 받고 돌아오는) 환자였다.


CAG,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 않은 검사이다. 환자분은 오른쪽 엄지손가락 방향에 있는 요골동맥을 통해 작은 관을 삽입하고, 그 관 안으로 카테터를 넣어 심장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혈관인 관상동맥의 형태를 조영제로 비추어 보는 검사를 하고 오셨다. 환자가 검사실에서 돌아오는 것을 보고서, 침대에 눕히고 혈압 측정 시작 버튼을 누른 다음, 머리가 하얘졌다. 이 다음 뭘 해야 하더라? 뭘 체크해야 하더라? 수액은 지금 떼도 되는 건가? 금식은 언제 풀리는 거였더라?


간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학부 기간 내내 듣고, 졸업하고 나서는 교육기간 내내 듣는 말, 절대 환자 앞에서 당황하지 말 것. 침착할 것. 말 한마디 함부로 하지 말 것. 최대한 표정을 숨기고 잠깐 ‘전산 확인 좀 하고 오겠다’ 라고 한 다음, 복도로 나갔다. 다행히도 선임 한 분이 복도에 있는 업무용 컴퓨터로 뭔가를 보고 있었다. 까탈스럽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분이라, 평소라면 근처에도 가지 않을 분이지만 그 때만은 그 분이 구세주로 보였다. 조심스레 그 분께 다가가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저 CAG환자가 돌아왔는데요, 혹시 어떻게 하면 될까요….?”


“너 그거, 프리셉터 때 다 배운 거 아니야? 그동안 뭐 배웠어?”


매몰찬 눈빛, 경멸하는 듯한 말투. 심장은 얼어붙었다. 간신히 용기를 내어 내민 도움을 청하는 손길은 일말의 가치도 없이 쓰레기처럼 바닥에 버려졌다. 간신히 알겠다, 감사하다 대답을 한 뒤 좀 멀리 떨어져 있는 컴퓨터로 가서 떨리는 손으로 전산을 뒤졌다. 천추 같은 몇 분 동안 한참을 뒤진 끝에, 간호 프로토콜 속에서 간신히 무엇을 해야 할 지 확인할 수 있었다.


 별거 없었다. 대퇴동맥으로 하고 온 경우에는 조금 복잡해지지만, 요골동맥으로 하고 온 경우에는 왼쪽 팔로 혈압을 확인하고, 바늘이 들어간 시술 부위에 지혈이 잘 되어있는지 확인한 다음, 4시간 뒤에 풀어줄 테니 너무 조여서 불편하거든 말하라고 일러주고, 수액은 떼어준 다음 지금부터 당신은 입으로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게 전부였다. 뭐 더 추가하자면 알람을 맞춰 뒀다가 지혈대를 풀어준 다음 소독을 해 주고 대일밴드를 붙여주고서, 오늘 하루는 오른팔로 힘쓰는 일을 하거나 체중을 싣지 말라고 해 주는 것 정도.


허탈할 만큼 아무것도 아닌 그 프로토콜을 보고서야 아, 하고 배웠던 것들이 기억났다. 차게 식은 손가락으로 환자정보가 적인 종이를 꽂아 둔 판때기를 들고 준비물을 주섬주섬 챙긴 다음, 병실로 다시 들어가 일을 마무리했다. 내 첫번째 CAG 환자는 그렇게 기억되었다. 차가운 경멸과 비난. 입으로 내려친 채찍. 그 상처는 CAG 환자를 볼 때마다 욱신거렸다. 다시 또 다시. 몇 년 동안이나.


피와 눈물이 흐르는 그 상처를 부여잡고 속으로 소리 질렀다. 나는 결코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이런 기분이 들도록 하지 않으리라. 도움을 청하는 동료의 손을 차갑게 뿌리치지 않으리라. 첫 기억이 남아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 내 후임들은 나와 같은 상처를 갖지 않도록 하겠다. 내가 받고 싶었던 따스한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첫번째 기억으로 주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드디어 그 날이 왔다. 나보다 두 해 뒤에 들어온 신규 선생님이 복도에 있는 업무용 컴퓨터를 보며 서 있는 나를 조심스레 부르는 것이다. 


“저, 선생님, CAG 환자가 왔는데요…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분명히 다 배운 것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 당혹감이 잔뜩 배어든 눈빛, 하얗게 질린 얼굴, 떨리는 목소리, 도움을 청하는 그 손길에 나는 그토록 듣고 싶었던 한 마디를 떼었다.


“괜찮아.”


그리고 어깨를 토닥토닥.


“괜찮아. 환자 눕혀놨지? 잘했어. 시술 안 한 쪽 팔로 바이탈 재고, 수액 떼 준 다음 금식은 바로 풀면 돼. 4시간 뒤에 지혈 완료되었는지 확인하고 소독한 다음 밴드 발라주고, 오늘 하루 동안은 시술한 쪽 팔로 무리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면 돼. 괜찮아. 별거 없지? 할 수 있겠어? 도와줄까?”


안도감이 서서히 퍼져가는 표정, 살았다! 라고 외치는 듯한 눈빛, 연이어 쏟아지는 감사하다는 말. 아니야, 괜찮아. 뭐 이런 걸 가지고. 혹시 또 헷갈리거든 이야기해. 적절히 건네어진 도움은 생각보다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았는지, 병원을 퇴사하고서 몇 년이 지난 후에 우연히 연락이 닿았을 때도, 그 친구는 여전히 그 때 일을 이야기하며 고마웠다 말했다.


감사하게도 그 친구 덕에 내가 한 다짐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다짐은 점점 크고 단단한 나무로 자라나서, 타인을 대하는 내 기조 중 하나가 되었다. 받고 싶은 것을 먼저 줄 것. 다정한 첫 기억이 되어줄 것. 운 좋게도 내 주변에 머무는 친구들은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다시 나에게 좋은 기억을 돌려준다. 돌아온 행복한 기억을 먹고 다짐은 점점 자라난다. 이 순환이 기꺼이 계속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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