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왜 자신이 증오했던 방식을 반복하는가

사상이 아니라 기술의 문제

by Rex

인간이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이유를 우리는 흔히
무능이나 학습 부족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정치 권력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답습은
그보다 훨씬 계산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에 가깝다.
군사독재 시절을 가장 증오했던 세대가 권력을 잡은 이후 비슷한 방식으로 통치하려는 모습은
단순한 위선이나 배신으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사상이나 명분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기술을 봐야 한다.
그들이 답습한 것은 독재의 이념이 아니다.
독재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던 방식이다.
통제는 설득보다 빠르고, 배제는 토론보다 효율적이며, 도덕은 가장 강력한 정당화 수단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몸으로 배운 세대다.
민주화를 외쳤던 경험은 권력을 얻는 법을 가르쳐주었을 뿐, 권력을 내려놓는 법까지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다르다”는 확신은
스스로를 검증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면허가 되기 쉽다.
그 순간 민주주의는 절차가 아니라 소유물이 되고,
비판은 토론이 아니라 방해로 취급된다.


여기서 말하는 통제와 배제는 군홧발이나 노골적인 검열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대의 권력은 훨씬 세련된 방식으로 작동한다.
무엇이 논의될 수 있는지, 누가 합리적인 이해당사자로 인정받는지를 사전에 결정하는 권한을 통해서다.
이 권한은 종종 질서를 위한 관리라는 이름으로 행사되지만, 동시에 개인의 선택지와 발언권을 가장 먼저 줄이는 방식이기도 하다.


최근 택배 노동을 둘러싼 논의 과정에서
쿠팡 새벽배송 금지 문제를 다루면서 정작 해당 사안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쿠팡 현장 노동자 측을 제외한 채 다른 주체들만으로 대화 창구가 구성된 사례는 이 방식을 잘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의견도 공식적으로 금지되지는 않았다.
다만 어떤 의견은 애초에 논의의 자격을 부여받지 못했을 뿐이다.
이는 탄압이라기보다 의제 접근권을 선별하는 방식의 통제에 가깝다.
이런 방식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갈등을 단순한 구도로 재배치한다.
복잡한 이해관계 대신
쉽게 설명 가능한 선의와 명분이 앞서고, 그 과정에서 일부 선택지는 조용히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는 합의를 빠르게 만들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가 감당해야 할 선택의 폭을 좁힌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특정 세대의 도덕적 타락이나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권력을 오래 쥔 집단이 자신도 모르게 반복하게 되는 아주 익숙한 인간사의 한 장면에 가깝다.
문제는 이 장면이 반복될수록 사회는 점점 더 안전해 보이지만, 동시에 더 선택지가 적은 상태로 이동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