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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tta Dec 02. 2015

전자파 단식

 휴대폰 없이 보내는 주말

지난 주말, 졸업시험을 공부하기 위해 반강제적 단식에 들어갔다. 

책 한 권을 완벽하게  벼락치기하기 위해 소화가 잘 안 되는 밀가루(예를 들자면 빵과 쿠키)와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휴대폰, 이 두 가지를 절제하기로 마음먹었다. 둘 다 내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들이라 처음 접한 뒤로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어 내심 걱정됐다. 특히 휴대폰 사용에 있어서!



아침 6:30 알람이 울린다. 나는 이것이 첫 번째 알람인 것을 확인하고 다시 잠든다.

아침 7:00 두 번째 알람이 울린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알람을 끈다.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를 읽는다.

아침 7:30 세 번째 알람이 울린다. 알람을 끄고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나는 매일 이러한 패턴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수능이 끝나고 처음 스마트폰을 갖게 된 후, 나는 MP3로 영어 듣기 파일을 틀어놓기보다는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SNS를 확인하게 됐다. 노래를 틀어놓고 샤워를 하고 한손에는 휴대폰, 한손에는 빵을 들고 삭막한 아침식사를 한다. 최근 내가 흠뻑 빠진 'Hello'와 'On my mind'를 반복해서 들으며 학교에 간다. 학교에 도착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나는 쉴 새 없이 휴대폰을 만진다.




이틀간의 전자파 단식에 대한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나는 완벽하게 패배했다.

총 40시간을 휴대폰을 꺼놓은 채 쳐다도 보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하루를 간신히 넘긴 채 나는 전원 버튼을 다시 꾸욱- 눌렀다. 아 휴대폰과의 밀착 생활에 지난 5년간 길들여진 나에게 휴대폰 없는 주말은 꽤 힘들었다.


도서관에 도착해 창가 옆,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책을 폈다.

눈으로 읽고 종이 사전을 넘기며 번역을 하는데 다섯 장도 못 넘기고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내 품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첫날을 보내고 휴대폰 없는 두 번째 날이 시작됐다.

그러나 사각사각 글씨만 써 내려가는 오후에 낯설음을 느낀 나는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해가 지기도 전에 집에 돌아왔다. 그의 부재에 적응하지 못하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 화장대 첫 번째 서랍에 있는 잠자던 휴대폰을 깨우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키니 부재중 통화 0통, 광고 문자 2개, 남자친구와 동생으로부터 온 카톡, 그 외 SNS 알림 0

전혀 중요한 내용이 와있지도 않는데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나만의 규율을 배반한 건지

사실 이틀간의 짧은 단식을 쉽게 보고 책에 집중하는 뇌섹녀가 되길 바랬는데 모순적이게도 금세 스낵 컬처의 품으로 돌아왔다.


최근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로부터 휴대폰을 그만 만지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딱히 할 건 없는데 습관적으로 새로고침을 하고 있다. 불필요한 손놀림이 정확히 비생산적인 활동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왜 이러는 걸까.

 남의 소식을 기웃대는 변태 같은 행위에 스스로 도태의 길을 걷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무엇이든 씹는 게 중요한데 보는 것에 그치니 그 깊이가 한없이 얕아짐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당근케이크가 있는 카페에서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내가 쓰는 글에 집중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 각종 알림과 광고에 재깍 반응하면서 나의 하루 일정을 스스로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집착의 결말은 대부분 파멸이던데, 발전을 꿈꾸는 나에게 이 휴대폰은 좋은 동지가 될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의문을 품게 된다. 최대한 몰두해도 한 번에 성취하기 어려운 일들이 눈앞에 닥치면 나는 과연 과감하게 휴대폰의 전원을 끌 수 있을까.



  나는 영영 손 한가득 차는 이 휴대폰을 놓지 못할 것이다.

일말의 감정을 나눌 수도 없는 이 전자기기에 대한 나의 병적인 집착은 쉽사리 고쳐지지 못할 듯 싶다.

자제하자  마음먹으면서도 여전히 이 마음가짐을 배반하며 습관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나의 두뇌와 피드를 넘기는 매정한 엄지손가락을 원망하며 하루를 정리하게 된다.



  그래도 이번 전자파 단식을 통해 나의 습관이 부정적 측면이 더 많음을 깨달 았으니 차차 고쳐야지.

한 번에 모든 애플리케이션들을 지우고 딱 통신용으로만 사용하기에는 어렵지만, 정직하게 필요한 정보만 얻고 혹은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올리고 과감히 손을 떼고자 한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중용이겠지. 나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의 즐거움만 필요하니까

쉴 새 없이 새로고침만 눌렀던 킬링타임도 다른 방식으로 보내는 것이 제 1의 목표이다.

禮之用 和爲貴, 조화가 필요하다. 잠깐의 단식도 낯설지 않고 잘 이겨낼 만큼의 조화가

아직 정확히 무엇을 하고 어떻게 그 틈새 시간들을 활용할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휴대폰 없이도 재미있게 건설적인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비 오는 수요일을 얌전히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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