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누구인가?

199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시

by bact beat


그의 행복을 기도드리는

- 신동엽



그의 행복을 기도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의 파랑새처럼 여린 목숨이 애쓰지 않고 살아가도록


길을 도와주는 머슴이 되자.


그는 살아가고 싶어서 심장이 팔뜨닥거리고 눈이 눈물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의 그림자도 아니며 없어질 실재도 아닌 것이다.


그는 저기 태양을 우러러 따라가는 해바라기와 같이


독립된 하나의 어여쁘고 싶은 목숨인 것이다.


어여쁘고 싶은 그의 목숨에 끄나풀이 되어선 못쓴다.


당길 힘이 없으면 끊어 버리자.


그리하여 싶으도록 걸어가는 그의 검은 눈동자의 행복을


기도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는 다만 나와 인연이 있었던


어여쁘고 깨끗이 살아가고 싶어하는 정한 몸알일 따름.


그리하여 만에 혹 머언 훗날 나의 영역이 커져


그의 사는 세상까지 미치면 그땐


순리로 합칠 날 있을지도 모를 일일께며.



화자의 정서(이상)를 중심으로 이야기한 시이다.


그의 행복을 기도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의 ~ 길을 도와주는 머슴이 되자.


는 화자인 의 정서,

가 기도하는, 소망하는 이상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표현된 시구이다.


그는 누구인가?

시어로 시어를 독해해 보자.


그는 다만 나와 인연이 있었다,

나는 그의 행복을 기도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고 한다,

머언 훗날 나와 그가 순리로 합칠 날 있을지도 모른다는 시구에 집중하여


그를 독해하면,

나와 이별한 연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별 후에, 나는 그의 행복을 기도하며, 재회를 소망한다고 독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독해하면


그의 ~ 길을 도와주는 머슴이 되자.

그는 ~ 없어질 실재도 아닌 것이다.

를 독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연인은 주인-머슴,

머슴이 주인을 섬기는 주종관계일 수 없고,


이별한 연인은 지금 내 곁에 없을지라도 어딘가에 실재하며,

생로병사의 길을 가다가 언젠가는 없어질 실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를 나가 사랑하는 누군가, 타자라고 독해할 수 없다.




그는 ~ 독립된 하나의 어여쁘고 싶은 목숨인 것이다.

그는 ~ 어여쁘고 깨끗이 살아가고 싶어하는 정한 몸알일 따름.


~ 싶은, ~ 싶어하는으로

그의 행복을 독해하면,


그의 행복은

독립된 하나의 목숨으로 어여쁘고 깨끗이 살아가는 것이다.

저기 태양을 우러러 따라가는 해바라기처럼.


그의 행복은 해바라기의 태양과 같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우러러보며 따라간다.

태양은 해바라기의 이상이다.


그의 행복은

그의 태양에, 이상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의 ~ 길을 도와주는 머슴이 되자.

그의 길은 그의 이상에 도달하는 길이다.


그의 이상은

독립된 하나의 여린 목숨으로 어여쁘고 깨끗이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나의 이상적 자아이다.


그러므로

그는 나의 그림자도 아니며, 없어질 실재도 아닌 것이다.


그는 현실적 자아인 나가 꿈꾸는, 만든

나의 이상적 자아이므로 인연이 있는데


지금은

그가 사는 세상까지 나의 영역이 미치지 못하므로

그는 다만 나와 인연이 있었다고

그와 나 사이에 거리가, 괴리가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는 ~ 정한 몸알일 따름이다.

몸알은 국어사전에 없는 시어이다.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에 나오는

4월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는 시구로 몸알을 독해하면


몸의 알 = 몸의 알맹이,

알맹이는 사물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므로

몸알은 몸의 이상이라고,


정한 몸알

어여쁘고 깨끗한 이상적 자아라고 독해할 수 있다.


현실적 자아인 나는


독립된 하나의 목숨이며,

영조(靈鳥)로서 길조(吉兆)이고, 행복을 상징하는 파랑새처럼 여린 목숨이며,

심장이 팔뜨닥거리고,

검은 눈동자에 눈물이 빛나고 있다.


행복하고 싶다고,

어여쁘고 깨끗이 살아가고 싶다고 기도드린다.



나는 왜, 그의 ~ 유일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가?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는 1:1 관계이므로

나는 그의, 그는 나의 유일한 사람이다.


그에게는 오직 나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그의 행복을 기도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고 나는 말한다.



나는 왜,

그의 목숨에 끄나풀이 되어선 못쓴다고 말하는가?


이상에 도달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이상을 현실에 끌어당기는, 이상을 끌어내리는 길과

이상에 현실을 끌어올리는 길이 있다.


남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그의 목숨에 붙은 길지 아니한 끈의 나부랭이,

끄나풀이 되어선 못쓴다며,


당길 힘이 없으면 끊어 버리자

이상적 자아를 현실적 자아로 끌어당기는 길을 끊어 버리고,


나의 영역이 커져

끌어올리는 길, 현실적 자아의 영역이 커지는 길을 살아간다.


머언 훗날 ~ 그의 사는 세상까지 미치면

현실적 자아가 이상적 자아의 세상에 미치는 그땐,


순리로 합칠 날 있을지도 모를 일일께며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가

순리로 합쳐져 하나가 될지도, 일치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나와 그가 합쳐져, 나와 그의 괴리가 사라지는 것이 순리라고 말한다.


위의 시구들을 뜯어 모아 엮어


독립된 하나의 여린 목숨으로

그의 행복을 기도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고,

그의 행복을 도와주는 머슴이 되어

어여쁘고 깨끗이 살아가면

머언 훗날,

나와 그가 순리로 합칠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이 시의 중심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나는 독립된 하나의 여린 목숨으로 어여쁘고 깨끗이 살아가고 싶다.


라고 중심 내용을 압축하여 이 시의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자아 성찰이 중심 내용인 시들 중에는

성찰의 주체인 나가 성찰의 대상인 나를 그라고 부르는 시들이 있다.


거울 속의 나를 너라고 부르듯이

나를 대상화, 객관화, 타자화하여 시를 쓰기도 하므로


시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시어나 시구의 의미를 독해해야 한다.


특정 시어나 시구만 잘라내어 독해하면 오독할 수도 있다.



1960년 4·19 혁명과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겪으며

1960년대에 시를 쓴 신동엽의 삶을 반영하고


그는 다만 나와 인연이 있었던

머언 훗날 나의 영역이 커져

그의 사는 세상까지 미치면 그땐

순리로 합칠 날 있을지도 모를 일일께며에 집중하여,


그를 자유라고 독해하기도 한다.


4·19 혁명으로 회복했던 자유가

즉, 나와 인연이 있었던 그가

5·16 군사쿠데타로 자유가 억압된 세상을

나와 그의 인연이 끊어진 것으로,

나와 그가 합치는 날은

자유가 회복되는 날로 독해하기도 하는데


독립된 하나의 여린 목숨으로 어여쁘고 깨끗이 살아가고 싶다

나의 이상자유는 거리가 꽤 멀다.


또한, 순리로 합칠 날

남과 북이 통일이 되는 날로 독해하기도 하는데,


나를 남으로, 그를 북으로 독해할 수 있는 시어나 시구가 이 시에는 없다.


#신동엽 #그의 행복을 #기도드리는 #그의 행복 #유일한 사람 #여린 목숨 #머슴 #파랑새 #그림자 #실재 #태양 #해바라기 #목숨 # 끄나풀 #정한 몸알 #나의 영역 #순리 #합칠 날 #헌신 #사랑 #통일




작가의 이전글말에 마음을 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