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 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받아 주는 것? 그러려니 하는 것?
수용의 개념은 주로 부모나 연인에게서 많이 나타납니다.
부모가 자녀를 수용해주거나
연인이 서로를 수용해주죠.
부모님들은 자녀의 짜증, 투정, 고민 등을 모두 받아줍니다.
연인 역시 서로의 부족한 부분, 감정 등을 다 받아주죠.
이걸 '수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용'은
그저 받아주고, 참아주고,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가면 '체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본인은 수용하며 견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게 되면 분노감, 서운함을 터뜨리게 됩니다.
과연 이게 진짜 수용이 맞을까요?
그저 '체념'하면서 받아들이는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체념과 수용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상담 장면에서 수용이라는 말은 정말 많이 사용됩니다.
인간중심상담이론의 등장 후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이라는 개념과 함께
수용이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후 수용의 개념을 상담의 핵심으로 활용한
이론이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수용 - 전념 치료(ACT)'입니다.
수용-전념 치료에선
수용을 '수용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행동은 능동적입니다.
체념은 그저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태도죠.
수용전념치료에선 수용을 고통스러운 생각, 감정에 대해
체념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이런 감정, 생각들이
나타났다 사라짐을 아는 과정입니다.
또한,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반응적인 행동을 선택하는 것까지 이야기를 합니다.
체념을 하는 것은
'내가 해도 안돼'라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난리를 칠 때
'얘는 내가 말을 해도 들어먹지를 않네
그냥 포기하고 놔두자'라는 생각은 체념입니다.
반면 '수용'은
'아이의 감정이나 행동을 내가 바꾸기는 어렵지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있을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념'의 개념을 함께 이해해야
수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념은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용과 전념은 함께 가지만 '맥락'이 다릅니다.
수용은 피부 안의 세상, 전념은 피부 밖의 세상입니다.
피부 안은 감정, 생각을 나타내고
피부 밖은 우리가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세상을 말합니다.
갑자기 떠오른 불안, 다른 사람의 행동은 통제할 수 없습니다.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통제하려고 하면
지치게 되고, 결국 '체념'하게 되어버립니다.
그렇기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발표할 때 불안감을 느낍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목소리가 떨릴 때도 있죠.
여기서 '불안'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억지로 누르려다 보면 오히려 발표에 집중을 하지 못하죠.
하지만 '발표'라는 행위는 내가 통제할 수 있습니다.
연습을 해볼 수도 있고,
긴장이 올라오면 심호흡을 하거나
잠깐 멈춰서 발표문을 확인하는 방법을 통해
발표의 속도를 조절하고
실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불안'은 어차피 피하지 못하는 것이고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것을 인식 후 수용하며
내가 할 '발표' 행동에 전념하는 것이죠.
결국 수용의 핵심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구별에서부터 수용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쟤는 잘못됐으니까 내가 고쳐줘야되는데
말을 안들으니까 그냥 내가 참는다'라고 생각하며
'수용'이라는 포장지를 덮어쓰고
'체념'하고 있지는 않나요?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바꾸려 할 때
'체념'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수용은 포기, 체념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한 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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