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위에 피어난 그녀의 이야기

계란된장볶음

by 꿈꾸는 식탁

"음식에는 삶이 담깁니다.

그녀의 계란된장볶음에는 눈물과 눈부신 생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스물셋, 어린 나이에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왔다.


조선족이었지만, 중국에서도 한족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자라 한국어를 전혀 몰랐다.

낯선 땅에서 언어 장벽은 몸보다 마음을 옥죄었다.

한국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식당일 뿐, 말이 통하지 않아 우물쭈물 서 있기 일쑤였다.

밤마다 베개는 눈물로 젖었다.

무엇보다 친정어머니 손에 맡긴 아들이 떠올라 가슴이 더 아렸다.


세월이 흐르고, 어눌하게나마 한국말을 하게 되었고, 열심히 일한 덕에 전세지만 제법 괜찮은 집을 마련했다.

드디어 훌쩍 자란 아들과 홀로 계신 어머니를 한국으로 모실 수 있었다.

‘이제는 행복만 있겠지.’

그녀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한 달 하고 사흘째, 어머니는 샤워실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다치셨다.

겉으로 멀쩡해 보였기에 병원을 찾지 않았고, 이틀 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아직 일흔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그것도 너무나 갑작스럽게.


그녀는 충격 속에 정신을 놓고 살았다.

심지어 달려오는 버스에 몸을 던지려 했던 순간도 있었다.

얼마나 그리운 엄마였던가. 얼마나 맡고 싶었던 엄마 냄새였던가.


그녀를 붙잡아준 건 일하던 식당의 사모님이었다.

친엄마처럼 감싸주고 위로해 주었기에, 그녀는 겨우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3남 1녀 중 막내딸, 집안에서 공주처럼 자란 그녀였다.

하지만 ‘동포의 나라’라던 한국에서 손은 거칠어지고, 얼굴은 나이보다 늙어 보이도록 일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새로운 고통은 남편에게서 왔다.

술에 취해 폭력을 일삼던 그는 어느 날 칼을 휘둘러 그녀의 목을 다치게 했다.

조금만 깊었어도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이었다.

그 순간, 일찍 철든 아들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길로 두 사람, 모자 단둘이 집을 나와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안정을 찾았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큰 식당에서, 그녀는 묵묵히 일했다.

마치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처럼 참고 배우며 실력을 쌓았다.

글은 몰라도 눈썰미 하나는 타고났다.

찬모가 그녀의 성실함을 알아보고,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던 요리 비법을 전수해 주었다.

덕분에 이제는 못하는 한국 요리가 없을 만큼 실력자가 되었고, 손님들이 그녀를 찾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본인은 편식이 심해 자신이 만든 음식조차 간을 보지 않는다.


그녀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음식은 고향에서 어머니가 해주던 계란된장볶음.

고향에서는 그것을 ‘짜장’이라 불렀다.

한국에 와서 까만 짜장을 보고는 놀랐다고 했다.

고향의 짜장은 삶은 면 위에 된장으로 볶은 계란과 양배추김치를 올려 먹는 단출한 음식이었다.

많은 조선족들에게는 영혼의 음식, 소울푸드였다.


중국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한국에서는 이방인 취급을 받던 조선 족들.

정체성의 방황 속에서 흔들리는 이들이 많지만, 그녀는 오직 부지런히 살아왔다.

이제는 고향 음식을 먹으며 지난날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입맛이 까다롭던 자신을 위해 부모님이 맛있게 먹으라고 재료를 골라 요리하던 기억에, 가끔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녀는 말한다.


“앞으로도 열심히 살 거예요. 나이가 더 들면, 그때는 돈 쓰면서 행복하게 살 거예요.”


그녀의 앞날에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된장계란볶음 :

기름에 파, 마늘을 넣어 향을 낸 후 달걀물을 부어

볶다가 된장으로 간하고, 청양고추(선택)를 넣어

맵기를 조절한다

쌈장의 기능으로도 쓰이므로 염도가 있게 간을 한다.

작가의 이전글오징어 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