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후 이사간다고 생각하면 미니멀이 쉽다
외국살이 2년, 미니멀리스트가 되다
캐나다 2년 살이를 통해 미니멀 라이프가 습관이 되었다. 2년 전 24평 신혼집에 채워져있던 짐을 고생하며 처분하고, 10박스의 짐을 캐나다로 보냈다. 캐나다에서 집을 구하지 못해 네 번의 이사를 하면서 10박스에 담겨 있던 짐들도 자주 비웠다. 1년 전 12평의 지금 집으로 이사하면서는, 정말이지 많은 짐을 비웠다. 그 과정은 브런치에 모두 적었다. 매번 힘들었고, 매번 어떤 옷과 물건을 비워야하는지 고민하는게 어려웠는데 이 작은 집에서 1년을 살면서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스스로가 미니멀리스트가 되었음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하면, 물욕이 없어졌다. 어떤 물건이나 옷을 봤을 때 갖고 싶다거나 저 물건이 있으면 좀 편할 것 같고 좋을 것 같은 마음이 거의 들지 않는다. 이렇게 된데는 캐나다 환경이 큰 역할을 했다. 먼저는 방 하나 주방 겸 거실인 12평 집에 둘이 사니까 수납 공간이 여의치 않다. 그래서 가능한 한 물건을 들이지 않고 뭔가 필요하면 집에 있는 것을 활용하는 걸 고민했다. 그렇게 1년을 지내다보니 마치 과거의 아나바다 시절처럼 사는 습관이 들었다. 예를 들면, 임신을 해서 배가 불러오니 바지가 맞지 않는다. 한국이었으면 예쁜 임부복이 하루면 집으로 배송이 오니 고민 없이 청바지나 레깅스 같은걸 샀을텐데 사고 싶지가 않다. 이미 낡은 옷을 많이 비워 옷 몇벌 새로 살 공간은 충분하지만 굳이 임신 기간에만 입을 옷을 갖고 싶지가 않았다. 허리 지퍼와 단추 부분에 연결해서 허리를 늘릴 수 있는 임산부용 고무 밴드도 팔던데 사고 싶지가 않았다. 캐나다에서는 비싸기도 하고 주문하면 10일도 더 기다려야 하니까 방법을 고민하다 버리려고 빼놓은 추리닝 바지의 허리 고무줄을 잘랐다. 파는 고무 밴드랑 차이 없이 기능해서 만삭이 되기 전엔 얼마든지 입던 바지를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방법으로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해서 필요를 충족하다보니 뭔가를 더 살 일이 아주 아주 줄었다.
그럼에도 뭔가를 사고 싶을 땐 6월에 귀국해야 한다는걸 생각했다. 이 모든 짐을 또 다시 정리해서 버리고, 나눔하고, 중고 거래 하고, 배 편으로 보낼 박스를 구해서 넣고 비용을 들여 옮기는 것. 그리고 또 한국의 집에서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소비하고 싶은 욕구가 뚝 떨어졌다. 여태 없이 잘 살았으니까. 그 모든 수고를 감수하면서 살 이유가 없다.
다시 이사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물건을 들이지 않은지도 몇 달, 옷이며 신발이 닳아서 비우고,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비우고, 쓰지 않는 물건들을 비우다보니 12평 집의 수납은 너무도 충분하고 둘이 살기에 너무도 쾌적하다. 캠핑 장비와 취미 생활을 위한 장비를 모두 가지고 있는데도 그렇다. 1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와서 화장실 바닥까지 물건을 늘어놓아야 했던게 마치 10년 전 같다.
미니멀리즘이나 미니멀라이프를 생각하면 으레 떠올리는 새하얀 가구나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은 가구들, 여백이 느껴지는 집은 우리집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12평 집에 캠핑장비와 음악을 위한 장비가 모두 갖춰진 집을, 취향에 맞는 패브릭이 이곳 저곳에 걸려 알록달록한 우리집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니멀한 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나는 이게 내게 맞는 미니멀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캠핑과 음악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정말로 꼭 필요한 장비들만 갖고 있다. 미니멀하게 살겠다고 해서 취향이나 취미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안 입는 옷이 하나도 없는, 자주 손이 가는 옷과 신발만 가지고 있다. 거의 매일 쓰는 주방도구들만 가지고 있다. 매일 쓰는 생활용품들만 가지고 있다.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를 모두 알고 그 물건들이 제 쓰임을 언제나 다 하고 있는 생활. 캐나다에 와서 만든 이 생활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시간과 비용을 아껴주는 미니멀리즘을 체득하게 되어 기쁘다.
6월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몇달 후 3인 가구가 된다. 한국은 캐나다에서와는 달리 물건이 발전하는 속도도 아주 빠르고 유행하는 물건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는 물건도 아주 아주 많다. 특히 육아용품이 그렇다고 친구들이 그랬다. 벌써 아기용품을 물려주겠다는 친구들이 있다. 웬만한 물건은 다 있다고들 한다. 뜯지도 않은 새것들도 많다고.
나는 여기서 쇼핑이 너무도 재미없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는데 이제 엄마가 되니까 다시 달라지겠지? 그렇지만 친구들이 물려주는 물건들 속에서 필요를 고르고 적당히 소유하고, 물건이 쓰임을 다하면 바로 바로 정리하는 생활을 이어갈 생각이다. 조금만 소유했을 때의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너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