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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Feb 09. 2024

입맛도 미니멀하게

맵고 짜고 단 것에서 멀어졌다

  매일 습관적으로 먹던 간식을 끊은지 한달이 넘었다. 냉동실엔 먹다 남은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조각 내 넣어둔 치즈케이크가 한달 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간식을 넣어두는 찬장에는 믹스커피가 한 개 남았고 메이플 쿠키나 감자칩 같은 과자도 이제 더는 없다. 지난 7월 식단 관리를 해보겠다고 입에 넣은 것을 일주일동안 기록해보던 나는 이게 식단 관리를 하겠다는건지 내가 얼마나 단 것을 달고 사는지를 확인하겠다는건지 스스로가 우스웠다. 식사량을 줄이거나 기름진 것을 덜 먹는 게 중요한게 아니라 간식을 줄여야 했다. 그것을 깨닫고는 먹은 것을 기록하는 것을 그만뒀다. 단 것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지난 12월 동기들하고 연말 모임을 했는데, 한인 마트에서 커피믹스를 100개씩 판다고 그건 어차피 다 못먹으니까 가족들이 밴쿠버에 놀러올 때 열 몇개정도만 가져다달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밴쿠버에 사는 1년 반동안 커피믹스를 세 박스 먹었다. 매일 모카포트로 내린 드립 커피도 마시지만 커피믹스는 다른 음식 아닌가? 수업에 갈 때 커피믹스를 두 개씩 보온병에 담아 가면 외국 친구들이 냄새가 너무 좋다면서 무슨 커피냐고 물었다. 한국의 커피믹스를 자랑스러워하며 한 봉씩 챙겨주기도 했다.


  요즘 한국음식을 수입해서 배달해주는 업체에 찐빵이 새로 들어왔는데 너무 맛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1시간 거리에 있는 대형 한인마트 앞에서 붕어빵을 파는데 진짜 맛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한국의 달달한 간식에 다들 심드렁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내 동기들이 어쩜 저렇게 날씬한지 늘 궁금했다. 모른 척 하고 싶었지만 사실 알았던 것도 같다. 7월부터 알았다. 나는 매일 단 것을 너무 자주 먹는다.

 

  그 날부터 습관적으로 단 것에 손이 가는 것을 멈췄다. 갑자기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갑자기이지만 사실 그렇게 갑작스럽지는 않다. 밴쿠버에 와서 외식비가 비싸 거의 집밥만 먹었다. 밴쿠버에 처음 왔던 1년 반 전엔 집밥만 먹는게 지겹기도 하고, 가끔 햄버거나 피자, 치킨, 매콤한 순대곱창전골을 사먹으면 그렇게나 맛있었다. 기름지고 맵고 짜고 느끼하고 달달한 바깥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 기분이 좋았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외식을 하며 스스로에게 상을 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바깥 음식을 먹어도 첫 입만 맛있지 특별히 너무 맛있거나 하지 않았다. 여행을 가면 어쩔 수 없이 밥을 다 사먹는데 3박 4일을 외식을 하고 나면 마지막에는 아무 것도 먹고 싶지가 않았다. 가장 최근에 갔던 12월 겨울의 밴프 여행 때는 정말로 먹고 싶은 게 없어서 마트에서 통밀빵과 과카몰리를 사서 끼니를 했다. 둘이서 8만원 넘게 썼던 라멘집에서의 식사보다 만족스러웠다. 그러니까, 1년 반 동안 집 밥만 먹다보니 입맛과 속이 변한 것이다. 집에서 요리를 하면 취향에 맞게 음식을 하게 되는데 우리는 유투브의 레시피에서 넣는 설탕의 반도 넣지 않는다. 제육볶음 같은 요리를 하면 버섯을 잔뜩 넣는다. 하루 두끼, 일주일, 한달 내내 집밥을 먹는데 매끼마다 맛있고 자극적인 것을 요리하는 것은 귀찮고 힘드니 회사 다니며 사람들과 점심 먹으러 나가고 회식할 때보다 자주 소박한 식사를 했다. 특히 채소를 많이 먹었다. 생당근에 후추나 레몬즙을 뿌려 먹고, 오이를 썰어 간장과 식초를 넣어 이자카야 반찬 식으로 먹고, 사 둔 로메인이 상하기 전에 먹느라고 매번 상에 올리고, 양배추를 채썰어 먹었다. 나물 반찬 같은 것은 손이 많이 가니까 엄두도 못내는데 남편과 내가 식탁에 올린게 아니면 우리 몸 안에 들어오는게 없으니 열심히 생채소를 먹었다.


  그렇게 1년 반을 보냈더니 우리의 입맛이 변한 것이다. 원랜 내 키보다 작은 냉장고로 살아가기에 너무 부족했다. 멀리 있는 대형 한인마트에 간 김에 순대볶음, 전골, 만두, 떡볶이 같은 냉동 조리음식을 사와 채워놓고 각종 고기류를 채워 넣고 아이스크림과 호떡, 찐빵까지 넣어놓느라 자리가 부족했던 냉동실은 이제 언제나 여유가 있다. 맵고 단 시판 음식들이 그다지 먹고 싶지가 않으니까. 우리는 일주일에 한 두번 장 보러 가서 닭가슴살이나 닭다리, 돼지고기 목살 같은 것을 조금씩 산다. 닭가슴살을 수비드해서 부드럽고 담백하게 먹는게 요즘 제일 맛있다. 들기름에 파를 송송 썰어 파기름을 내어 계란을 부치고, 접시에 간장 한스푼을 펴 계란을 그 위에 올리면 제일 맛있다. 소스가 많이 들어가지 않는 파스타를 먹는다. 최근엔 콩나물무침을 처음으로 해봤는데 정말 너무 맛있다. 한국에서는 어딜 가나 밑반찬으로 나오니까 귀한 줄을 몰랐던 콩나물 무침이 새콤 매콤 아삭하니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한 번에 두 봉씩 데쳐서 만들어 먹고 있다. 이웃으로부터 김장배추 한포기를 가져와 배추찜을 먹는다. 속도 편하고 맛있다.

배추찜과 오일파스타


  이렇게 끼니를 하다보니 단 것에 심드렁한 동기들의 얘기에 놀라 습관적으로 단 것에 손을 대던 것을 멈췄는데 괴롭지가 않았다. 금단현상 같은게 없었다. 아침으로 먹던 찐빵을 끊고 대신 0% 그릭요거트에 과일 조금 넣어 먹고, 3시 쯤 먹던 아이스크림, 케익 같은 것을 끊고 사과 한알을 먹었다. 믹스커피를 끊고 디카페인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한달하고도 2주가 지났다. 참다가 먹고 싶어지면 먹어야겠다고 남겨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성에 낀 치즈케이크는 이제 정리해도 될 것 같다.


  라면도, 짜파게티도 맛이 없는 요즘, 과자도, 단 것도 당기지 않는 요즘. 우리 부부가 단순한 입맛이 된 것이 반갑다. 처음엔 한국에 돌아가서 먹고 싶은 것을 신나게 먹으려고 했는데, 요즘은 한국에 돌아가도 배달 음식에 손 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맵고 짜고 기름지고 단 것에서 멀어진 지금, 미니멀한 입맛을 가지고 신선하고 여유 있는 냉장고를 유지하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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