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2년 살이 중 벌써 두번째 코로나다. 처음엔 밴쿠버에 도착해 2주만에 걸렸다. 개강한지 일주일 된 어학원 수업에서 내가 걸렸는데 남편에게도 옮아 크게 아팠다. 그 때는 집을 구하지 못해 주택의 지하에 있는 방 하나에 한달 동안 살 때였다. 퀸 사이즈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가 있는 방에서 키가 180cm인 남편과 꼬박 앓으며 일주일을 갇혀 있는게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1년 반 후 또 다시 코로나에 걸렸다. 내가 먼저 목이 간질 간질하며 목감기가 온 것 같았는데, 이틀 후 남편이 극심한 목 통증을 호소했다. 1년 반 전에 캐나다 약국에서 무료로 받았던 진단 키트를 꺼내 확인해보니 또 다시 두줄이었다. 여기서 아프면 약도 없는데!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매월 75불의 의료보험비(2인 기준. 다른 경우에 대해선 모른다.)를 내면 모든 치료비가 무료이다. 모든 치료비가 무료여서 좋을까? 의사들은 미국으로 다른 나라로 떠나가서 의사가 너무 부족해 진료 자체를 받을 수가 없다. 정말 응급한 상황에서 응급실에 가도 대여섯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열이 39도를 넘어가면 응급실에라도 갈까 생각했는데 39도를 넘어도 수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의사를 만난다 한들 항생제 같은 약 처방 없이 타이레놀을 먹으라는 얘기만 듣는다니까 집에 있는 타이레놀을 먹으며 앓았다. 셋째날엔가 남편은 물조차 넘길 수 없었고, 나는 목이 따갑다 못해 귀까지 따가워서 항생제가 정말 간절했지만 별 수 없이 생강차나 타마시고 기운 없이 누워있을 뿐이었다. 아주 아파서 잠도 자기 힘들었던 3일, 조금쯤 나아져서 잠은 잤던 며칠까지 12월의 중후반 2주를 집에서 보냈다. 뭐 하면서 보낼까 했던 나의 방학이 사라졌다.
2주를 집 안에만 머물면서 남편과 나는 1년 반 전 방 한칸에서 코로나를 앓았던 때를 자꾸 떠올렸다. 12평 집에서 하루 종일 거의 2주를 보내는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방의 24평 신혼집에서 몇 년을 보내다가 캐나다에 와서 방 한칸에서 지내는 한 달은 꽤 힘들어서 자꾸만 밖에 나갔다. 마침 밤 10시까지 해가 떠 있는 여름이라 자기 전까지 잔디밭이나 벤치에라도 앉아 있었다. 그러다 20평의 2층집에서 8개월을 살았고 12평인 방 하나에 거실 겸 주방이 있는 이 집에서 9개월 째 사는 중인데 둘이 살기에 적당할 뿐만 아니라 둘이 2주를 집에서만 보내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이 아픈 동안에는 나는 방에 있는 침대에 있었고 남편은 거실에 캠핑용 자충매트를 깔고 쉬었다. 몸이 아파 힘들고 계속 기침을 하는 동안에 둘이 한 침대에서 앓지 않아도 되는게 너무 쾌적했다. 한 몸 편히 누울 공간이 있으면 되는구나 싶었다.
집이 좁아도 각자 누울 공간이 있어서 충분한 것 외에도 좋은 점이 있었다. 우리는 이 집에 캠핑용품, 고무 카약, 바베큐용 그릴, 귀국할 때 쓸 이민 가방에 큰 캐리어들까지 가지고 있어서 수납이 빽빽하고 모든 물건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정해진 자리에 물건을 놓지 않으면 아예 둘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운 없는 성인 2명이 두 끼 먹고 누워만 지내도 엉망 진창이 되지를 않았다. 옷을 아무데나 벗어놓고 싶어도 벗어놓을 아무데가 없다. 게다가 팔만 뻗으면 옷장이니 그 정도 수고는 할 수 있다. 기껏해야 정리가 되지 않을 곳은 정사각형 모양의 2인용 식탁 위, 한 칸 크기의 조리대 위 뿐인데 5분이면 정리가 끝난다. 집에서 지낸지 5일 정도 됐을 때 느릿 느릿 움직여서 집을 정돈하고 청소기를 돌리는데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학창 시절의 내 방처럼 정말로 모든 물건을 정해진 위치 같은 것은 없이 엉망 진창으로 널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활은 이미 본가를 떠나 자취를 시작하면서 청산했다.
일주일 째 됐을 때 몸이 좀 나아진 것 같고 먹을게 똑 떨어져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다녀왔는데 그 30분을 찬 바람 맞았다고 바로 기침이 심해져서 좀 더 오래 집 안에 머물며 생각했다. 우리는 좁은 집 생활에 적응했다. 이 크기가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정리 정돈 습관이 제대로 들었다. 넓은 집에서는 이곳 저곳을 널어두어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데 좁은 집에서는 곧바로 엉망이 되기 때문에 바로 바로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습관이 들었다. 2주차에는 안 입는 옷을 몇 벌 더 골라내어 처분했고, 겨울 동안에도 다 못 쓸 것 같은 향초도 두 개 더 처분했다. 침대 아래의 공간도 물건을 많이 비워 꽤 여유가 생겼고 각종 틈새 수납들도 비워졌다. 생활에 불편함은 전혀 없고 반 년 후 귀국 준비를 할 때 수월할 것이다. 어차피 지금 지닌 짐들은 꼭 필요한 것이니 배로 보내는 짐에 다 넣으면 되고, 캠핑이나 바베큐, 카약 같은 레저 용품은 새로 캐나다에 1~2년 살러 오는 한인 가족들에게 금방 처분할 수 있다. 작은 집에 산 덕에 군더더기 없는 생활을 배웠다.
내 동생이 올 해 여름에 결혼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내 귀국 이후로 날짜를 잡았던데 청년을 위한 주택 청약을 넣어놓았다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청약을 넣은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이 11평 정도인데 둘이 사는데 괴롭지 않냐고 했다. 본가는 32평 빌라이다. 20년 정도 그 집에 사는 동안 동생은 방 한 개가 오롯이 제 것이었다. 내가 쓰던 방은 10년 전 내가 독립할 때 중학생이 된 막내의 공간이 되었다. 자취 한번 한 적 없이 본가에 살고 있는 동생은 지난 여름 엄마랑 막내랑 함께 우리 집에서 일주일을 지냈다. 성인 다섯명이서 지내기에 12평 집은 무척이나 좁았지만 둘이 살기엔 딱 좋다는 걸 동생은 아직 모른다. 운 좋게 청약이 된다면 네 방에 있는 물건들을 열심히 정리하라고 했다. 옷이 너무 많아 서랍장과 수납장이 꽉 들어차 있는 동생의 방, 책상 한 켠 책장에는 인형이 가득한 동생의 방이 떠올랐다. 일단 빈 채로 들어가 신혼 생활을 해보면서 차츰 적응해 가라고, 그러면 둘이 살기에 나쁘지 않고 집안일에 들어가는 시간도 길지 않아서 괜찮을 거라고 했다. 나는 동생이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약속을 했다는게 기쁘고, 독립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살기 시작하는 설렘이 부럽다. 그 때만의 설렘과 재미는 정말로 즐거우니까.
그런데 그 시작에 집이 좁아서, 남들에 비해 돈이 없어서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 역시 2층집에서 이 집으로 8개월만에 이사오면서 집 크기에 비해 짐이 너무 많아서 화장실 바닥까지 짐을 늘어놔야 했을 때, 그리고 며칠 동안 잘 하지도 못하는 정리를 하느라고 각종 유투브 영상을 찾아보며 고생할 때는 잠깐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돈이 많았으면 월세 250만원 내고 그냥 2층 집 사는건데. 하지만 지금 사는 이 12평 집도 월세가 160만원이다. 우리 부부는 이 정도의 월세를 내고 캐나다에서 2년을 지낼 만큼의 돈을 모았다. 열심히 살았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충실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적으로 더 나은 생활은 언제나 눈에 보인다. 그 것에 집중하다보면 자꾸만 작아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 집에서 살아가는 감각을 몸에 새겼고, 캐나다에서 살며 물질이 아닌, 현재에 충실하며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의 기쁨을 깨달았다. 블랙프라이데이나 크리스마스 다음날의 대대적인 할인 행사인 박싱데이에도 갖고 싶은게 없어서 아무것도 사지를 않았다.
내 동생도 작은 집에서 알콩 달콩 살아가는 기쁨을 알아갔으면 좋겠다. 엄마랑 똑같은 이유들로 20년 동안 싸우면서 지내는 생활 말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 안 맞는 것을 맞춰가면서 싸우는 시간을 잘 보냈으면 좋겠다. 그렇게 행복했으면 좋겠다.